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수국 꽃 수의

김왕노 作

1015A38 시로여는 수욜




큰형 동생네 식구 우리 식구가 모여


어머니 수의를

좋은 삼베로 미리 장만하자 상의하였다.

다소 시적인 어머니 그 말씀 듣고는

그 마음 다 알지만

세상이 다 수읜데 그럴 필요 없단다.

아침에 새소리가 수의였고


어젯밤 아버지가 다녀가신 어머니 꿈이 수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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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까짓 죽은 몸이 입고 가는 옷 한 벌보다

헐벗은 마음이 곱게 입고 가는

세상의 아름다운 기억 한 벌이

세상 그 어떤 수의보다 좋은 수의라며

여유가 있다면 마당에 꽃이나 더 심으로 하셨다.

그 말씀 후 철마다 여름 마당에 수국 꽃 환한 수의가

어머니 잠든 머리 곁에 곱게 놓여 있다.

아름답다, 꽃피는 수의. 주검을 덮는 게 수의라면 수의 아닌 것이 어디 있으랴. 흙이란 본디 생명의 몸이었던 것이니 그 위에 나부끼는 풀과 나무가 모두 수의다. 누가 주검을 비좁은 무덤에 가두는가. 몽골 초원의 들짐승들은 지평선을 널로, 바람을 수의로, 하늘을 관 뚜껑으로 덮는다. 봄 연두, 여름 초록, 가을 단풍, 겨울 백설. 수의 패션쇼 눈부시다. 삶은 죽음 위에 피는 꽃이요, 죽음은 삶을 피우는 뿌리. 삶과 죽음은 영원한 숨바꼭질이다. 삶은 죽음으로 숨고, 죽음은 삶으로 까꿍 나타난다.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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