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베지밀 아버지’ 정재원 정식품 명예회장 별세

의사·연구자·기업인…50년 콩 연구 매진

모유 소화 못하는 아기 치료식 두유 개발





국내 최초의 두유 ‘베지밀’을 개발한 정식품 창업주 정재원(사진) 명예회장이 9일 향년 10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정 명예회장은 선천성 유당불내증 환자를 위한 치료식으로 두유를 개발해 상품화에 성공했다. 인류 건강 문화에 공헌하겠다는 신념하에 50년 이상을 콩 연구에만 몰두한 인물이다.

그는 1917년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나 19세에 최연소로 의사 검정고시에 합격한 후 1937년 명동 성모병원 소아과에서 의사로 일하며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병원에서 모유나 우유를 소화시키지 못하고 원인 모를 영양실조와 합병증으로 죽어가는 어린이들을 많이 접했다. 이를 치료할 방법을 찾고자 적지 않은 나이인 44세에 유학을 떠났다.

1015A02 베지밀



고인은 영국과 미국에서 유학하며 모유나 우유에 함유된 유당 성분을 정상적으로 소화시키지 못하는 ‘유당불내증’이 문제임을 알게 됐다. 이후 1966년에 유당은 없으면서도 단백질·탄수화물·지방 등 3대 영양소가 풍부한 콩을 이용한 치료식으로서 두유를 개발했다. 명칭은 ‘식물성 밀크 (Vegetable + Milk)’라는 뜻의 ‘베지밀(vegemil)’로 정했다. 그는 이 공로로 1966년 제1회 발명의 날 대법원장상을 수상했으며 국제적으로도 공로를 인정받아 1999년 ‘국제대두학회’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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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명예회장은 베지밀을 바탕으로 1973년 정식품을 창업했다. 베지밀을 찾는 수요는 많았지만 공급량이 부족해 대량생산을 할 수 있는 공장까지 짓게 된 것. 1984년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시설을 갖춘 청주 공장을 준공하기도 했다.

그는 정식품을 지난해 연 매출 1,873억원에 국내 두유 시장 점유율 50%를 웃도는 기업으로 키웠다. 그럼에도 고인은 평소 “두유를 만드는 데 인생을 걸었다”며 기업의 이윤 추구보다는 소비자에게 건강하고 안전한 제품을 개발하고 공급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고 정식품은 전했다. 또 경쟁 기업들도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만든 두유를 공급할 수 있도록 하자는 차원에서 OEM 전문회사 ‘자연과 사람들’을 설립해 이목을 끌기도 했다. 당시 두유 시장 1위 브랜드를 보유한 업체로서는 이례적 행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또 누구든 공부에 대해 가슴앓이를 하지 않게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1984년 ‘혜춘장학회’를 설립해 사회공헌활동도 활발히 벌였다. 혜춘장학회는 지난 33년간 약 21억원의 장학금을 지급했으며 혜택을 받은 사람만 약 2,350명에 이른다. 최근까지도 장학금 수여식에 참석할 정도로 후학 양성에 관심을 놓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고인은 2010년 아들인 정성수 정식품 회장에게 경영권을 물려준 뒤에도 콩에 관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 2015년 경북 영주에 국내 최초로 ‘콩세계과학관’이 문을 열었을 때도 직접 내려가 행사에 참석하기도 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이며 발인은 12일 오전8시, 장지는 용인천주교묘지에 마련됐다.

박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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