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환란 20년, 한국경제 다시 비상벨]여신 남발로 외환위기때 16개 은행 사라졌는데...여전히 전당포식 장사

<3>거꾸로 가는 금융산업

손쉽게 돈벌수 있는 주택담보대출·중기대출 영역에만 몰려

건전성·수익성 높아졌지만 해외시장 개척·新사업 확대 외면

금리 상승기때 가계부채는 내수기반 무너뜨리는 시한폭탄

선제적 안전망 구축하고 정교한 금융감독시스템 마련해야









외환위기가 발발한 지난 1997년, 대기업들이 하나둘 쓰러지면서 부실은 은행으로 전이됐다. 동남·동화·충청·경기·대동은행 퇴출을 시작으로 은행들은 처절한 인수합병(M&A) 전선에 내몰렸다. 관록의 ‘조상제한서(조흥ㆍ상업ㆍ제일ㆍ한일ㆍ서울)’는 간판을 내려야 했고 당시 33개 은행 중 절반인 16개사가 구조조정됐다. 여신 남발에 따른 씁쓸한 결과물이다.

대규모 공적자금이 투입되고 구조조정 작업이 마무리되면서 은행들은 취약했던 부실기업 리스크 관리와 위기관리 경영기법에 매진했다. 그 결과 은행의 건전성과 수익성은 크게 높아졌다. 은행 건전성의 종합지표인 BIS 자기자본 비율은 1997년 말 당시 7.04%로 국제기준(8%)에 미달했지만 2017년 6월 현재 15.37%로 상승했다. 수익성 지표인 총자산순이익률(ROA)도 1997년 -0.90%에서 2017년 6월 현재 0.62%로 높아졌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금융권이 주택담보대출 등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영역으로만 몰려다녔다는 점을 금방 알 수 있다. 대출을 늘려 덩치만 키워놓으면 예대마진으로 돈이 쉽게 불어났다. 예금이 꼬박꼬박 들어오니 자금조달도 문제 될 게 없었다. ‘글로벌 시장 개척’과 ‘비이자수익 증대’는 아직 구호일 뿐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는 “외환위기 당시 금융 산업이 방만했고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나갔다가 위기를 겪으며 황급히 철수해 세계화 시점을 놓쳤다”면서 “우리 금융은 경쟁이 격화되는 내수에 집중하는 우물 안 개구리”라고 꼬집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7월 취임과 동시에 “주택담보대출을 늘리는 식의 전당포식 은행 영업 행태는 금융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고 일갈했다. 실제 신한은행·우리은행·KEB하나은행 등의 기업대출 비중은 1999년 70~90% 수준이었으나 최근 40%대로 떨어졌다. 은행 총대출 중 가계대출 비중도 외환위기 당시 30%가 채 되지 않았지만 지난해 말 기준 43%까지 올라갔다. 중소기업대출은 여전히 담보나 보증 위주이고 은행들이 손쉽게 수익을 올리는 데만 몰두하다 보니 가계부채가 급증하는 데 한몫한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20년이 지나 기업들의 부채비율은 많이 낮아졌으나 당장 1,4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는 위기 촉발의 뇌관이다. 1999년 200조원대에서 2009년 700조원대로 3배 넘게 증가하더니 불과 7년여 만에 다시 2배 규모로 치솟았다. 2014년 완화한 총부채상환비율(DTI) 및 주택담보인정비율(LTV) 규제가 가계부채 증가의 촉매제가 됐음에도 당국은 비상벨을 누르기는커녕 “저금리 기조와 시중 유동성 증가, 주택시장 호조 같은 복합적인 요인이 있다”는 식의 답변으로 사실상 방치했다는 비판을 외면해왔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가계부채 진단과 처방을 잘못하는 바람에 계속 실패하고 있으며 이것 때문에 장기불황으로 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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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금리 인상기를 맞아 가계부채는 시한폭탄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정책금리의 추가 인상을 예고하면서 국내 시장금리는 벌써 상승세를 보인다. 이렇게 되면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빚 부담이 늘고 소비 제약, 그리고 내수 부진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당장 소득 대비 가계빚 부담은 역대 최고 수준으로 가계부채 부실 가능성은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올 1·4분기 한국 가계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12.5%로 BIS가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99년 1·4분기 이후 최대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2·4분기 말 기준 취약차주 대출 규모는 80조4,000억원을 기록, 1년 사이 5조원이나 증가했다. 취약차주는 3개 이상의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은 다중채무자이면서 저신용(7∼10등급) 또는 저소득(하위 30%)인 사람들을 뜻한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2금융권에서 주로 대출을 받은 상황이라 문제의 심각성이 더 크다.

권혁세 전 금융감독원장은 “저성장 국면에서 2금융권 고금리 부채가 문제”라며 “변동금리대출 비중이 높다는 점도 장기적으로 금리 변동에 취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잔액 기준 고정금리 가계대출 비중은 34% 수준에 그친다.

특히 저성장 구조 속에 부동산 가격이 영향을 받고 금리 인상이 본격화되면 은행 건전성에도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다시 실물 위기→시중은행 부실→자금경색→경제 전체 위기라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익명의 한 전문가는 “미국의 금리 인상과 국내 금리의 동반 상승, 부동산 가격 하락, 가계부채 문제, 지정학적 리스크가 겹치면 금융사 부실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며 “또다시 실물에서 금융으로 전이돼 부실화되면 국가 경제 전체가 무너질 정도로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정책 당국이 관치금융에서 벗어나 금융감독 시스템을 정교하게 마련하고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해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얘기다.

/황정원·조권형·김기혁기자 garden@sedaily.com

황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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