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평창올림픽, 길만 뚫으면 성공할까

정두환 논설위원

통일전망대 주먹구구식 운영에

30분 거리 관람, 반나절이나 걸려

불친절 식당·무질서 주차도 눈살

강원 관광인프라 내실부터 다져야

정두환 부장 사진




강원도 고성의 통일전망대를 방문하려면 사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장소가 있다. 통일전망대에서 10㎞쯤 못 미친 곳에 마련된 ‘출입신고소’다.


지난 추석 연휴. 열흘간의 긴 휴일 덕에 2박3일 일정으로 강원도행 여행 중 기자 가족도 통일전망대를 방문했다. 연휴를 즐기기 위해 몰려든 관광객 차량 정체 속에 겨우 출입신고소 앞에 도착한 기자는 순간 지난 1980년대 시외버스 터미널에 온 듯한 착각에 빠졌다. 방문객들은 이리저리 뒤엉킨 줄 속에서 제대로 된 안내를 받지도 못한 채 아우성이었다. 기자 역시 30여 분간 이 줄 저 줄을 오가며 우왕좌왕한 끝에야 겨우 빨간 도장이 찍힌 신고서를 손에 쥘 수 있었다. 곳곳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웃지 못할 상황은 계속됐다. 바로 옆 강당에서 ‘안보교육’이라는 것을 받아야 하는데 다만 “일행 중 한 명만 대표로 받으면 된다”는 창구 직원의 이상한 설명이 이어졌다. 교육이라는 것도 엉성했다. 5분 남짓한 시청각 영상이 전부인데다 교육 참석 여부 확인조차 없다.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인 교육인 셈이다.

이해 못할 일은 민통선 입구에 설치된 검문소에서도 벌어졌다. 차내에 설치된 블랙박스를 꺼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군사시설 촬영에 따른 기밀 누출을 막기 위한 것이라지만 듣는 순간 쓴웃음이 나왔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가. 가족들 손에 쥐어진 스마트폰으로 사진은 물론 동영상도 촬영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


결국 불과 30~40분 거리의 통일전망대 관람을 위해 오전11시에 속초를 나섰던 기자는 해 질 녘에야 파김치가 된 채 숙소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한국어에 ‘유창’한 기자도 통일전망대 한 번 가려면 이처럼 진이 빠지는데 만약 내년 2월에 개막하는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동안 한국에 온 외국인 관광객이 가이드 없이 용감하게 이곳을 방문한다면, 손사래를 치며 말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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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집 나서면 고생이라지만 정작 여행의 즐거움을 앗아버린 것은 길이 아니라 여행지에서의 유쾌하지 못한 경험들이었다. 통일전망대만이 아니다. 바가지 상흔과 식당 주인이 왕이라는 식의 불친절, 무질서한 주차, 호객행위 등 불쾌감만 쌓이는 일정의 연속이었다.

내년 2월9일 개막하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불과 넉 달 앞둔 현재 강원도 일대는 거대한 공사장이다. 6월 말 동서고속도로 중 미개통 구간이던 동홍천~양양 구간 공사가 마무리된 데 이어 최근에는 광주~원주 간 제2영동고속도로, 안양~성남 고속도로까지 연결됐다. 여기에 국도6·59호선 등 주요 연결국도 개량·확장공사도 올림픽 개막 전 완공을 목표로 공사가 한창이다.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인천~강릉 간 KTX 건설에 3조7,000억원, 고속도로·국도 연결에만 7조7,600억원이 넘는 재정이 투입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리조트·호텔 신축을 통해 6,000실 규모의 숙박시설을 공급할 계획이다.

대규모 인프라 구축에 수혜 지역의 땅값도 급등하고 있다. 동서고속도로 동홍천~양양 구간의 나들목 근처만 해도 개통을 전후해 땅값이 20% 이상 뛰었다는 후문이다. 땅값 상승의 영향으로 강원도의 올해 개별공시지가 평균 상승률은 4.89%로 수도권(4.36%)보다 높았다.

하지만 상전벽해 수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원도 관광 인프라의 속살은 민망한 수준이다. 강원도의 대표적인 관광명소 중 한 곳이자 올림픽 기간 많은 외국인들의 방문이 예상되는 곳으로 꼽히는 통일전망대의 운영 실태만 봐도 그렇다.

평창올림픽 지원을 위해 정부가 올 한 해 편성한 예산만 해도 9,372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하지만 길을 새로 깔고 넓히며 ‘어서 오라’는 구애는 넘쳐나지만 정작 편히 즐길 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이 평창올림픽을 앞둔 관광 한국의 현주소다. 아무리 길이 좋아지고 깨끗한 숙박시설이 넘쳐난들 찾아올 사람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평창올림픽보다 그 후가 더 걱정되는 것은 기자만의 기우는 아닐 것 같다.

/dhchung@sedaily.com

정두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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