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회·정당·정책

[환란 20년, 한국경제 다시 비상벨] 포퓰리즘·선거 거꾸로 가는 금융

은행서 곶감 빼먹듯 금융정책

구조조정은 정치바람에 지연

새 정부 들어 신용카드 수수료, 법정 최고금리, 실손보험료 인하 등의 조치가 줄줄이 현실화됐다. 금융회사들은 설마 했지만 추진속도는 전광석화였다. ‘큰 힘 들이지 않고 우호적 여론을 얻는 데는 금융회사의 팔을 비트는 것 만한 게 없다’는 통설을 증명한 셈이다.

이처럼 정부가 금융산업을 성장산업이 아닌 소비자에게 이익 몇 푼을 안겨주는 ‘구휼’의 관점으로 접근하다 보니 포퓰리즘 성격의 금융정책이 늘고 있다. 돈을 벌어야 하는 금융사들은 눈치만 보는 실정이다. 시중은행의 한 고위관계자는 “은행이 돈을 벌 수 있을 때 벌도록 해야 나중에 경기가 악화되면 충당금 등으로 완충 역할을 할 수 있다”며 “현재로서는 은행이 돈을 벌면 사악한 것으로 매도당하다 보니 실제 충격이 왔을 때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물론 은행이 당장은 이익을 많이 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경기가 악화될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대출이 부실화되면 대규모 충당금을 쌓게 되고 이는 곧바로 실물경기로 전이된다. 은행이 막대한 대손충당금을 쌓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인데 선을 넘어설 경우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때처럼 천문학적 규모의 혈세 투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와 정치권이 은행 등을 호주머니의 곶감 빼 먹는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되는 이유다.


더구나 구조조정의 핵심축이 돼야 하는 시중은행 등 채권단은 내년 지방선거 등 정치 바람에 휩싸여 구조조정 일정의 차질도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매각이 불발된 금호타이어도 채권단 자율협약을 맺었지만 신규 자금 지원 등의 난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는 미지수다. 시급한 성동조선 등 중소조선사 구조조정도 이미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사모펀드(PEF) 등 민간 중심의 구조조정도 금융회사 경영진이 정부의 일자리 창출 기조에 코드를 맞추느라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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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금융당국은 ‘일자리는 유지하면서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논리로 뒷짐을 지고 있다. 관료들 역시 구조조정 앞에서 몸을 사리는 실정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구조조정은 원래 감원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어떻게 일자리를 그대로 유지한 채 진행할 수 있느냐”며 고대 중국의 명의를 빗대 “(당국이) 구조조정계의 ‘화타’라도 되느냐”고 지적했다.

굵직한 구조조정이 마무리됐다고 한숨을 돌릴 게 아니라 중일 간 넛크래커 신세를 벗어나고 산업 고도화를 위해서라도 더 신속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한 전직 고위관료는 “구조조정 분야에도 20년 전 환란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데 당국은 아직 절박한 위기의식이 부족한 것 같다”고 우려했다. /김홍길 금융부장 what@sedaily.com

김홍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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