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회·정당·정책

[오늘부터 국감, 이것부터 고쳐라] 습관화된 기업인 무더기 소환..지역구 민원 카드로 악용

12일부터 이달 말까지 20일간 국정감사가 진행된다. 하지만 정쟁만 있고 알맹이는 빠진 부실 국감이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추미애(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대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주호영 바른정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이날 최고위원 회의 등에서 국감 관련 발언과 행보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12일부터 이달 말까지 20일간 국정감사가 진행된다. 하지만 정쟁만 있고 알맹이는 빠진 부실 국감이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추미애(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대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주호영 바른정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이날 최고위원 회의 등에서 국감 관련 발언과 행보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정감사는 ‘국회의 꽃’으로 불린다. 민생을 위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12일부터 이달 말까지 20일 동안 진행되는 국감은 향기가 아니라 정쟁만 난무하는 썩은 내가 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감을 통해 정부의 잘못된 관행과 비리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개선책을 제시하는 순기능을 해야 하지만 벌써부터 ‘모든 것이 네 탓’이라며 삿대질을 하고 있다. 국감이 달라져야 한다. 이것부터 고쳐야 한다.


◇정책은 없고 정략만 난무=민주당은 보수야당을 겨냥해 ‘적폐청산’을 부르짖고 있고 이에 맞서 야당은 ‘정치보복’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국감을 정치공세로 활용하는 전형적인 구태가 이어지고 있다. 11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에서 “국정감사를 앞두고 적폐청산을 정치보복으로 호도하는 자유한국당의 정쟁 만들기가 도를 넘고 있다”며 날을 세웠다. 한국당은 정부 여당의 적폐청산 드라이브에 맞서 ‘정치보복대책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또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의 각종 의혹 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요구하기로 했다. 그야말로 맞불작전이다. 국민들은 서로에 대한 험담과 고성만 오가는 국정감사를 지켜봐야 한다. 국회에서 북한 도발에 대한 대응방안, 경제 살리기 정책 등 현안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협력이 있어야 하는데 시간만 흘러가는 형국이다.

◇기업인 무차별 호출=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기업인에 대한 무차별 호출 관행이 재연됐다. 일감 몰아주기, 지배구조, 하도급, 담합 등의 이유로 불러냈다. 정무위원회·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환경노동위원회 등 상임위원회를 불문했다.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국감 증인으로 선정된 기업인 수는 17대 국회 당시 연평균 52명에서 19대 국회 때는 120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국정감사가 아니라 ‘기업감사’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담당 임원이나 실무자가 나와도 될 사안에 일단 총수나 전문경영인(CEO)을 불러놓고 오랜 시간 대기시킨 뒤 짧은 답변만 듣는 식이다. 국회 내부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최운열 민주당 의원은 “기업 경영에 관한 사항으로 국감 증인을 불러서는 안 된다”면서 “법의 테두리 내에서 기업을 운영한다면 국감에 나올 이유가 없다”는 소신 발언을 해 눈길을 끈 바 있다.


기업인은 의원들의 지역구 민원 창구가 된다. 증인 명단에 넣었다가 지역구 민원 사업 제공 등을 대가로 빼주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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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중진 의원은 “간사 협의 과정에서 특정인을 꼭 소환하겠다고 주장하다가 갑자기 빼달라는 의원이 많다”면서 “지역구 민원 창구로 활용하고 있다는 의심을 지우기 힘들다”고 꼬집었다.

◇‘존재감’ 욕심에 막말·호통=스타 탄생의 등용문으로 여겨지는 국감. 특히 초선 의원들에게 국감은 인지도를 높여 재선 고지로 가는 지름길을 확보하고 존재감을 뽐낼 수 있는 통로로 인식된다. 한정된 시간에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위해 막말·호통과 같은 ‘악수’를 두거나 자극적 이슈를 찾는 이유다. 우수 국감 의원을 선정하는 포상 절차도 보여주기식 국감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각종 단체와 정당은 회의 참석률, 언론 보도 및 질의 횟수 등을 기준으로 우수 의원을 선정한다. 정당의 경우도 원내 차원에서 상임위별로 우수 국감 의원을 선정하는데 보도매체 종류, 기사 분량, 보도자료 개수 등을 기준으로 점수를 매긴다. 이번 국감에서는 증인 앞에서 호통을 치고 창피를 주는 악습이 없어져야 하고 정당도 이 같은 방향으로 자정노력을 해야 한다.

◇시정조치 강제할 수단 없어=현행 국감제도의 문제점은 피감기관에 시정조치 이행을 강제할 구속력이 사실상 없다는 점이다.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정부는 국회의 시정 요구를 지체 없이 처리하고 결과를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지체 없이’의 기준이 없어 기약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속력이 없기에 정부 측도 형식적 보고로 면피하는 경우가 많다.

국회사무처 선례집에 따르면 20대 국회 개원 이후 자료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아 고발 또는 제재를 받은 사례는 없다. 국회 관계자는 “보통 집권여당 측에서 엄호해주기 때문에 행정부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국회 차원의 노력도 부족하기는 매한가지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일단 국감이 끝나면 의원들이 사후조치에 소홀해지는 게 사실”이라며 “그러다 보니 피감기관도 ‘한 번 매 맞고 말자’는 식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하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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