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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프라이싱: 가격이 모든 것이다] 고가전략...박리다매...제품 가격 결정에 숨겨진 비밀

■헤르만 지몬 지음, 쌤앤파커스 펴냄

포르쉐·페라리·질레트 등

소비자들 '차별화 욕망' 자극

프리미엄 전략으로 승승장구

스웨덴 가구회사 이케아는

저가 전략으로 시장 제패

실제 사례·학문 이론 총동원

가격결정 과정·변수 파헤쳐



기업들은 제품의 가격을 어떻게 책정하는 것이 유리할까. 큰 수익을 노리고 무작정 값을 올리는 게 능사일까, 아니면 가격을 확 낮춰 소비자의 마음을 유혹하는 편이 나을까. 반대로 소비자들은 값이 싸다고 무조건 지갑을 여는 단순한 존재일까, 아니면 비싸지도 저렴하지도 않은 ‘적정 가격’이야말로 제품 가치를 담보해준다고 믿는 경제주체일까.

올해 2월 국내에 출시된 페라리 ‘GTC4루쏘 T’. 페라리와 포르쉐, 밀레 등은 고가 전략으로 세계 시장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프리미엄·럭셔리 브랜드다. /사진제공=FMK올해 2월 국내에 출시된 페라리 ‘GTC4루쏘 T’. 페라리와 포르쉐, 밀레 등은 고가 전략으로 세계 시장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프리미엄·럭셔리 브랜드다. /사진제공=FMK


‘프라이싱: 가격이 모든 것이다’는 실제 사례와 학문 이론을 총동원해 이 단순하고 일상적인 물음에 해답을 찾아가는 책이다. 저자는 알짜 우량기업의 영업비밀을 파헤친 ‘히든 챔피언’으로 유명한 헤르만 지몬이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가르치던 지몬은 교수직을 던지고 지난 1985년 동업자와 함께 컨설팅 회사(지몬-쿠허&파트너스)를 설립했다. 20년이 넘게 흐른 현재 이 회사는 전 세계에 35개 지사를 두고 2억5,000만달러(약 2,833억)의 매출을 올리는 일류 기업으로 성장했다.

‘프라이싱’에는 사랑하는 분야를 업(業)으로 택해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쥔 자의 행복감이 갈피마다 스며 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성공을 이룩한 이들이 흔히 그렇듯 지몬은 흘러넘치는 자신감을 구태여 숨기지 않는다. 그는 ‘고백’이라는 제목이 붙은 서문에서 자신의 저서를 일컬어 “(가격결정이라는) 보물창고로 들어가는 열쇠”라고 소개하는가 하면 “수천 개의 기업들이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일조해 왔다”고 당당하게 선언하기도 한다. 겸손을 모르는 자부심이 밉지 않은 것은 오랜 기간 연구를 통해 축적한 데이터와 그래프, 각종 이론과 케이스를 무기 삼아 독자를 설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 경영인이 아닌 일반 독자에게는 무엇보다 실제 기업들의 사례가 재미나다.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이케아’에 세팅된 가구들. 이케아는 포르쉐·밀레 등과 달리 저가 정책으로 소비자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회사다. /사진제공=이케아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이케아’에 세팅된 가구들. 이케아는 포르쉐·밀레 등과 달리 저가 정책으로 소비자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회사다. /사진제공=이케아


포르쉐 경영진은 ‘박스터 컨버터블’의 쿠페형 차종인 ‘카이멘S’를 출시하며 컨버터블보다 가격을 대략 10% 낮게 책정하려고 했다. 그게 업계의 일반적인 관습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회장이었던 벤델린 비데킹은 경영진을 설득해 이 공식을 깬다. 카이멘S는 오히려 10% 비싼 가격에 출시됐고 대성공을 거뒀다. 포르쉐와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는 함부로 가격을 낮춤으로써 스스로 격을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는 철칙을 멋지게 증명한 사례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식으로 말하자면, 타인과 ‘구별’되고 싶어하는 소비자의 ‘차별화 욕망’에 철저히 부응할 때만이 프리미엄 기업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페라리와 밀레, 질레트 등은 모두 이런 전략으로 세계 시장을 호령하고 있는 기업들이다.


이와 달리 스웨덴의 가구 회사인 이케아는 저가 전략으로 승승장구하는 브랜드다. 그렇지 않아도 저렴한 제품을 공급하는 이케아는 2011년 평균 가격을 2.6% 인하한 데 이어 2013년에도 값을 0.2% 떨어뜨렸다. 그해 이케아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공히 3.1% 올랐다. 영업이익률도 소매기업치고는 매우 높은 11.6%를 기록했다. 지몬은 저가 전략의 성공 요건으로 △회사 창립과 동시에 저가 정책을 시행할 것 △적당한 수준 이상의 품질을 반드시 갖출 것 △부채가 많지 않을 것 등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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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두 번째 몸통이라고 할 수 있는 5~7장은 내용이 쉽지 않다. 면밀한 시뮬레이션을 거친 실험 데이터들이 페이지마다 숨차게 전시되면서 가격결정 과정의 여러 변수와 역학관계를 고찰한다. 제목만 보고 가볍게 덤빌 책은 아니라는 뜻이다. 기업의 성공 스토리 혹은 실패담과 학문적 고찰을 버무리는 ‘프라이싱’의 재주는 왜 전문가들이 지몬을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초일류 경영인”이라고 치켜세우는지 입증한다.

기업인 독자라면 각설하고 이 책이 인용한 러시아 속담, 즉 “모든 시장에는 두 종류의 바보가 있다. 하나는 가격을 너무 높게 부르는 바보고, 다른 하나는 가격을 너무 낮게 부르는 바보다”라는 경구를 잊지 말지어다. 머리카락이 새하얗게 변할 만큼의 치열한 고민이 없다면 정글과도 같은 시장에서 결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니. 2만5,000원

나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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