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셋플러스자산운용의 간판 펀드 성과가 과거에 비해 저조한 게 사실이지만 기업의 가치를 중심으로 투자하는 현재의 투자 스타일은 흔들리지 않고 지켜나갈 것입니다. 주가가 떨어지고 수익률이 낮다는 이유로 투자전략을 바꾼다면 가치투자가 아닙니다.”
국내 금융투자 업계에서 ‘가치투자 1세대’로 꼽히는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이 자본시장의 ‘쓴소리 형님’으로 변신했다. 상대는 연기금이다. 그는 “연기금 자금이 2년 사이 액티브펀드에서 패시브펀드로 대거 이동했다”며 “자본시장의 역동성과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원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에셋플러스자산운용 설립자인 강 회장은 지난 1990년대 후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1억원을 156억원으로 늘리며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덕분에 2013년 스웨덴 자산운용 업체 맨티코어캐피털이 선정하는 ‘세계의 위대한 투자가 99인’에 포함되기도 했다. 156억원은 1999년 에셋플러스투자자문을 설립한 후 운용사로 업그레이드하는 시드머니가 됐다.
강 회장은 ‘일시적 주가 변동이 아닌 기업의 가치에 베팅한다’는 투자철학을 20년 넘게 지켜왔다. 그는 “경제활동에서 수많은 가격이 시장에서 결정되지만 가격을 결정하는 핵심요소가 있다”며 “펀드운용사는 확고한 신념으로 기업의 가격을 결정하는 가치를 찾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의 가치를 측정할 때 시장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투자신념을 바탕으로 최근 에셋플러스자산운용은 펀드에서 삼성전자 투자를 철수했다. 강 회장은 올해 초 180만원대 후반에서 삼성전자 지분을 모두 정리했다. 삼성전자를 여전히 가치주로 평가하지만 지속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한 것. 그는 “펀드매니저가 투자를 결정할 때는 기업의 지속 가능성, 이익의 예측 가능성, 확장 가능성, 비변동성 등 네 가지 요인을 두루 고려해야 한다”며 “삼성전자는 비즈니스 모델 측면에서 여전히 가치가 있지만 이익이 예측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270만원대까지 오른 주가는 사실상 삼성전자의 영업이익 확대 때문인데 이 성장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예측하기 어렵다”며 “중국 시장이 커질수록 이익의 근원인 반도체 사업의 성장을 확신하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시장은 강 회장의 결정에 ‘소신’과 ‘자만’이라는 엇갈린 평가를 내놓았다. 강 회장은 “펀드의 성과를 수익률로 답한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에셋플러스자산운용의 경영에서도 강 회장의 고집스러운 투자철학이 그대로 드러난다. 펀드매니저가 떠나며 자금이탈이 심화했지만 섣불리 인력을 충원하지 않았다. 단기성과를 추구하기보다는 가치투자 신념을 이어갈 만한 매니저를 찾기 위해 심사숙고하고 있다고 강 회장은 말한다.
하지만 강 회장의 투자철학이 늘 펀드에 ‘장밋빛 수익률’을 안겨주지는 않았다. 에셋플러스자산운용의 대표 가치주 펀드인 ‘에셋플러스코리아리치투게더’ 펀드는 최근 수익률이 -0.18%로 저조한 편이다. 물론 여타 대표 가치주 펀드들의 수익률도 높지 않다. 신영자산운용의 ‘신영마라톤증권투자신탁’은 삼성전자를 11% 담고도 3개월 수익률 -1.63%를 기록했으며 ‘한국밸류10년투자밸런스증권투자신탁’은 1.54%를 기록했다. 일각에서는 가치투자 모델이 시장의 변화를 쫓아가지 못한다는 평가도 내린다.
강 회장은 최근 가치주 펀드가 고전하는 것은 ‘연기금의 투자 방식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에셋플러스는 연기금의 자금이탈로 6조원대에 육박하던 일임수탁액이 1조원대 밑으로 떨어져 타격을 입었다. 그는 “투자하던 기업의 주가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투자를 철회하는 건 액티브펀드의 원칙을 깬 것”이라며 “최근 수년간 연기금이 수익률을 좇아 액티브펀드를 포기하고 패시브펀드에 투자하기 시작하면서 가치주 펀드 운용사가 고전 중”이라고 말했다. 액티브펀드란 종목을 적극적으로 과감하게 선정해 시장 초과수익률을 추구한다. 펀드매니저는 예측을 통해 탄력적으로 자산을 배분하고 좋은 종목 및 매매 시점을 찾아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반면 패시브펀드는 코스피·코스피200 등 주가지수 흐름에 가까운 종목을 선택해 주가지수 상승률 수준의 수익률을 추구하는 소극적인 방식으로 운용된다. 강 회장은 “일본 등 세계 최대 규모의 연기금은 최근 패시브 투자를 철회하고 액티브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며 “국내 연기금은 소극적으로 패시브펀드에만 투자하면서 액티브 자금운용을 위축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외신에 따르면 약 150조엔을 운용하는 세계 최대 연기금 일본공적연금(GPIF)은 최근 상장지수펀드(ETF) 등 패시브 상품에 추가로 투자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반면 국내 연기금은 2012~2015년 사이 액티브펀드가 상승하면서 패시브펀드로 자금을 대거 옮겼다. 패시브 상품에 투자할 경우 실적이 안 좋거나 악재가 있는 기업에도 지수개발자가 사전에 정한 비율대로 투자금이 유입될 뿐 아니라 성장 가능성이 큰 기업에 투자자금을 늘리는 것도 어렵다. 다만 평균 정도의 수익률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강 회장은 “자본시장이 패시브 투자에만 매몰되면 좋은 기업을 발굴하고 투자하려는 힘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자본시장을 망치는 길”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패시브펀드 투자는 시장의 평균을 손쉽게 사려는 것인 만큼 펀드매니저는 필연적으로 게을러질 수밖에 없다”며 “투자의 책임을 회피하고 다음 세대에 떠넘기는 꼴”이라고 덧붙였다.
강 회장의 가치투자 철학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6월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물려줄 수 있는 펀드를 만들겠다”며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운용되는 ‘알파로보펀드’를 선보였다. 10년 만에 내놓은 새 펀드다. 알파로보펀드는 ‘좋은 기업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판다’는 기존 투자철학에 오차 없이 합리적인 시스템을 결합했다. 기존의 가치투자에 대한 신념은 굳건하지만 산업구조의 변화를 받아들이겠다는 융통성 있는 선택이다.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자신감은 넘친다. 그는 “알파로보는 확인된 가치, 현재의 가치에 더 집중한다”며 “최근 2~3개월간 수익률은 기대 이하인 게 사실이지만 수익과 관계없이 완성도를 높이는 일을 끊임없이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말 이후에는 신재생에너지에 주목한 사모펀드를 선보일 계획이다. 그는 “태양광 사업 진출을 위한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하고 펀드를 조성해 투자자들에게 좀 더 안정적인 포트폴리오를 제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기금이 빠져나가며 흔들리는 에셋플러스의 신규 먹거리를 찾아 나선 것. 강 회장은 “신재생에너지는 회사가 가치투자 영역에서 눈여겨보는 업종으로 향후 10~20년간 큰 수익을 안겨줄 것”이라고 말했다. 에셋플러스는 올해 안으로 태양광 관련 업체를 선정해 SPC를 세우고 부지 매입과 시공 등 태양광 개발 사업을 맡길 계획이다. 에셋플러스는 연기금·기관투자가를 중심으로 한 사모펀드를 조성하는 역할을 한다.
20년 가까이 자본시장에서 ‘가치투자’ 신념만으로 성장해왔지만 에셋플러스의 꿈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강 회장은 “미래가치와 수익가치를 기반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찾는 펀드매니저는 미래 기업환경이 어떻게 바뀔까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며 “빅데이터·신재생에너지·헬스케어 등이 새로운 세상을 지배할 화두”라고 설명했다. 또한 “미래 기업 성장의 꿈을 담아내는 액티브펀드의 명가로 오래도록 남기 위해 알파로보, 신재생에너지 등 혁신을 가능케 할 새로운 시도를 이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코스피 4분기 후 상승 멈출것” 회의론 제기하는 ‘가치투자 1세대’
“이익증가 여지없어 AI등 시장 이끌 신산업 찾아야”
올해 코스피지수는 주식시장 개장 이후 사상 최고 기록을 연이어 경신하고 있다. 코스피지수는 연초 이후 22% 올라 2,500선에 도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1년 사이 주가가 2배 가까이 상승해 현재 270만원을 넘어섰다. 시장 대부분의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의 300만원 돌파를 전망하며 올해 말까지 증시가 ‘더 오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가치투자 1세대인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은 회의적이다. 그는 “국내 증시는 올해 2,500~2,600 정도까지 오르다 4·4분기 이후 상승을 멈출 것”이라고 말했다.
강 회장이 증시 ‘장밋빛 전망’에 제동을 건 이유는 현재 국내 기업의 시가총액 수준이다. 강 회장은 “기업의 가격(시가총액)을 만드는 힘은 가치”라며 “올해 국내 기업의 가격을 올린 가치는 영업이익”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1~2년간 국내 증시를 끌어올린 업종은 은행업·반도체 등으로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성장했다”며 “기타 다른 업종의 규모는 그다지 성장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스권에 머물던 코스피지수가 올해 상승한 것은 금융 기업과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의 실적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강 회장은 ‘향후 해당 기업의 이익이 지금까지처럼 성장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했다. ‘창조적 파괴자’의 등장 때문이다. 강 회장은 인터넷뱅킹과 중국 반도체 기업을 국내 증시를 위협하는 ‘창조적 파괴자’로 언급했다. 그는 “은행업은 가계대출·순이자마진으로 성장해왔는데 금융시장이 6대 금융지주 독점체제인 만큼 순이자마진, 수수료 증가를 통제할 권력이 없었다”며 “카카오뱅크·케이뱅크 등 인터넷뱅크의 등장으로 이런 구도는 깨지고 은행업의 이익은 더 이상 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정보기술(IT)·반도체 업종은 새로운 시장 플레이어의 등장에 주목했다. 강 회장은 “수요가 늘어나면 이익도 커지지만 반도체가 미래 가장 강력한 먹거리가 되면서 공급도 함께 늘어나는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존 사업자가 설비투자를 확대하고 중국 기업이 내년부터 반도체 시장에 뛰어드는 등 공급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올해 4·4분기를 정점으로 기존 시장을 주도하던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이익이 크게 훼손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 회장은 “은행·IT 업종 외에 내년 이익을 견인할 산업이 없다”고 단언하면서도 “향후 시장을 이끌 새로운 시장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인공지능(AI)·신재생에너지·헬스케어 등이 그가 주목하는 새로운 먹거리다. 그는 “인구 변화, 새로운 에너지 개발 등은 한국의 과제임과 동시에 세계적 문제”라며 “미래가치를 얻기 위해서는 세계가 10~20년간 어떻게 바뀌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혜안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