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통일·외교·안보

[日 고미요지, 北 김정은을 말하다] <2>어려서부터 정치에 관심 많았던 정은, 여정

장남 정남을 밀어뜨리다

김정일, 집단지도체제도 고려?

"후계 후보는 둘"이라는 김정일

고미요지컷


[日 고미요지, 北 김정은을 말하다]

<2> 어려서부터 정치에 관심 많았던 정남과 여정


장남 김정남을 밀어뜨리다

김정일의 장남 정남이 2001년 5월 도미니카 공화국 여권으로 일본 밀입국을 시도해, 구속된 것도 후계경쟁과 관련이 있다. 북한 내 일부에선 정남을 배제시키기 위해 고용희 세력이 영국과 미국 정보기관에 방일 정보를 흘렸다고 믿고 있다.

당초 김정일은 3대 세습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정남은 2011년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원래 아버지는 3대 세습은 없다고 말했고, 내가 직접 들은 기억이 있다. 동생들도 그 얘기를 들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절대권력을 자랑한 김정일도 세습 지속에 부담을 느꼈을까. 단지 가족 이외 타인에게 권력을 넘길 경우, 자기 죄상이 드러나 가족에게 누가 미칠 것을 두려워했다. 결국 정일은 자기의 명예와 권위 유지를 위해 세습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불의 약속

고용희의 2남 정은이 정식으로 3대 세습을 한 2012년 이후, 고용희의 우상화 작업은 이뤄지지 않았다.

때때로 소설에 등장하는 정도. 예를 들어 ‘불의 약속’(문학예술출판사 2014년 출간) 중에서 김정은이 부하가 보여준 장갑을 보고, 말문이 막히는 장면이 있다. 장군님(정일)이 끼고 계셨던 장갑은 김정은 동지에게는 오래전부터 익숙한 수수한 것이었다. 어머니가 새 것을 준비해줬지만 언제나 “아직 누비면 몇 년이라도 쓸 수 있어요. 지금 입고 있는 면 야전복도 그렇고, 이 장갑에도 애착이 강해요”라고 말했던 장군님의 목소리가 다시 귀에 울린다.

김정일과 김정일의 네번째 부인이며 김정은의 생모인 고용희. (출처:연합뉴스)김정일과 김정일의 네번째 부인이며 김정은의 생모인 고용희. (출처:연합뉴스)


아버지 유품에 얽혀, 어머니를 떠올리는 장면

정은이 자기 어머니를 떠올리는 발언이 공개된 적이 있다. 조선중앙TV는 2012년 1월8일 김정은 생일을 맞아 ‘백두의 선군혁명 위업을 이어받으며’라는 기록영화를 방영했는데 여기서 첫 언급이 나온다. “언제였던가. 2월16일(김정일 생일)에도 현지지도에서 돌아오지 못한 장군님을 어머니와 함께 밤중에 기다린 적이 있다.” 정은이 2009년 9월 노동당대표자회에 등장한 이후 북한 매체가 그의 모친을 공식 언급하게 됐다. 우상화가 시작된다는 관측도 있지만, 그 후 언급은 자취를 감췄다. 여러 배경을 가진 모친 우상화를 체념한 것일까.

집단지도체제도 고려한 김정일


3대 세습 프로세스는 지금도 베일 속이다. 나종일 한양대 국제학부 객원교수는 저서 ‘장성택의 길 : 신정(神政)의 불온한 경계인’에서 세습 과정을 구체적으로 적어 관심을 끈다. 그는 국가정보원의 해외·북한담당 1차장과 대통령안보보좌관으로 일했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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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자에 따르면 김일성 주석은 자기 사후에 후계자가 주체노선에서 벗어날 경우 권총사살하도록 측근에게 명령했다. 그리고 김정일은 후계구도에 관해 주변에 “내 뒤에 권력세습은 없다. 김씨 일족은 이후 국가 정통성과 아이덴티티를 담보하는 상징으로 인민의 충성 대상으로만 남는다”고 이야기했다. 발언 시기는 특정할 수 없지만, 김정일은 측근 10명에게 “국가 운영은 당신들이 함께 맡아야 한다”며 집단지도체제를 염두에 뒀다.

이에 대해 나교수는 “아들에게 권력 이양은 무리가 있었지만 자기 병세를 고민하고 시간에 쫓겨 3대 세습을 추진하는 것 외엔 방법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내가 직접 인터뷰 한 김정남도 “아버지는 세습을 생각지 않았다”고 답했다. 3대 세습으로는 주민 이해를 얻기 힘들다고 직감적으로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후계 후보는 둘”이라는 김정일

원래 후계자에 대해 누구를 생각했던 것일까. 그 힌트는 2002년에 김정일의 러시아 열차방문 때 극동지역전권대표 콘스탄틴 풀리코후스키의 증언에서 찾을수 있다. 그는 24일간(7.26~8.18) 같은 열차에 동행했다.

그때 시베리아 철도 경비는 최고로 삼엄했다. 정일이 탄 열차 전후로 고의 추돌을 막으려 ‘정찰 열차’가 7분 간격으로 운행하고 폭발물을 점검했다. 열차 앞에 러시아측 저격수 2명을 배치했다. 북한에서 온 25명을 포함해 저격수는 모두 50여명.

완벽한 보호 속에 풀리코후스키는 후계자에 관해 김정일에게 물었다. 긴 열차여행에 긴장이 풀렸던 걸까. 정일이 “후보는 2명”이라고 털어놨다. 김정일은 “세째 아들 정은과 막내딸 여정이 정치에 관심이 많다. 위의 둘 정남과 정철은 비즈니스에 열중이라 정치에 관심을 안보였다. 밑의 둘을 교육시켜 하나를 후계자로 삼겠다”고 말했다.(풀리코후스키 NHK 인터뷰)

/고계연기자 kogy2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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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용희 : 高容姬 1953년 6월 생.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조선계 무용수로 고영희(高英姬)라고도 하고 본명은 고영자(高英子)로 알려져 있다. 1962년 재일조선인 북송사업 때 가족과 함께 북한으로 건너가 만수대예술단에서 활동하다 1970년대 중반 김정일의 네 번째 아내가 됐고 정철, 정은, 여정을 낳았다. 북한에서는 그녀의 출생지를 제주도 북제주군으로 주장한다. 2004년 프랑스 파리의 한 병원에서 암 투병 끝에 사망.

주:

최근 한반도 정세(외교 안보 등)를 좌지우지하는 핵심인물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이라 하겠다. 잇단 탄도미사일 발사와 6차 핵실험, 그리고 섬뜩한 말 폭탄 주고받기로 긴장과 전쟁 위기감을 키우는 두 사람. 이제는 ‘선전포고 주장’까지 나오는 일촉즉발 험악한 형국이다.

트럼프에 맞서는, 30대 초반의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은 도대체 어떤 인물인가. 미치광이인가? 전략가인가? 그의 성장 과정과 인성 등을 들여다보고 북한의 과거 현재 미래 전반을 분석·예측해보는 일본 언론인 고미요지(도쿄신문 편집위원)의 원고를 입수했다. 국내 판권을 가진 서교출판사 김정동 사장이 번역서 출간에 앞서 콘텐츠 사용에 대해 양해를 해줬다. 일부 수정을 거쳐 정기적으로 옮겨 싣는다.

* 고미 요지(五味 洋治) :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쥬니치신문 서울지국에서,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중국총국에서 근무하며 북한 뉴스를 쫓아왔다. 올 2월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된 김정남과 7년 동안 주고받은 전자우편 대화록이 ‘안녕하세요, 김정남입니다’으로 지난 2013년 번역 소개되기도 했다. 현재 도쿄신문 편집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60세.

고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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