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학원에서 문자가 왔다. 올해 고등학생이 된 큰 아이가 입학 전 한 달간 다녔던 학원이다. ‘최상위권 대학진학을 위한 겨울방학 집중 학습’ 안내 문자였다. 학부모 요청으로 지난 9월에 이어 10월에도 설명회를 연다는 내용이다. 이 학원은 방학 때 자체 독서실을 운영한다. 조교 선생님이 출결과 학습진도 등을 살펴주고 영어단어 시험도 낸다. 독서실을 무료로 이용하려면 한 달에 180만원가량을 내고 5과목을 들어야 한다. 교재비에다 식당을 이용하면 비용이 200만원을 훌쩍 웃돌지만 일찌감치 등록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다고 한다.
문자를 확인하면서 문득 최근 한 공중파 TV에서 방송한 시사프로그램이 떠올랐다. 우리나라 사교육 실태를 다룬 다큐멘터리였다. 방송 당시 인터넷을 후끈 달구며 학부모들 사이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방송에서도 이제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사라졌고 ‘통장에서 용 난다’는 교육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인상 깊었던 대목은 사교육에 올인하던 한 어머니의 말이다. “모든 부모가 사교육을 멈춘다면 나도 멈추겠다”였다. 이 한마디는 한국 학부모들이 모두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외치는 것처럼 들렸다. 물론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대부분 부모가 똑같은 심정일 것이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추정한 한국 사교육비 규모는 30조원. 3월 통계청이 발표한 18조1,000억원의 1.5배를 웃돈다. 올해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올해 월평균 사교육비로 100만원 이상을 쓰는 중3 학생은 광역단위 자사고 진학희망자의 43.0%를 차지했다. 이어 전국단위 자사고 40.5%, 과학고·영재고 31.6%, 외고·국제고 20.6% 등이었다. 일반고 진학희망자는 8.7%에 머물렀다. 이러한 조사는 2015년에도 이뤄져 반향을 일으켰다. 2년 전과 비교하면 과학고·영재고를 제외한 모든 유형의 고교에서 고액 사교육을 받는 중3 학생의 비중이 최대 2배 이상 늘었다. 그만큼 사교육비 부담이 커진 셈이다.
사교육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선행학습도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2015년 조사에서 진학희망 고교별로 중3 학생이 ‘선행학습이 필요하다’고 답변한 비율은 광역단위 자사고 92.8%, 전국단위 자사고 92.7%, 과학고·영재학교 83.3% 등이었다. 초등학생은 중학교 과정을, 중학생은 고등학교 과정을 미리 떼야만 이들 학교에 들어갈 수 있다는 얘기를 증명한 셈이다. 이는 선행학습 금지법(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구제에 관한 특별법)을 완전히 무력화하는 답변이기도 했다. 3년 전부터 시행된 선행학습 금지법은 선행학습 유발 행위를 막아 교육은 정규 과정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선행학습 시기는 더 빨라지고 범위는 더 넓어졌다는 게 교육현장의 공통된 목소리다.
뉴질랜드에 사는 한 지인은 아이의 수학공부를 봐주다가 담임선생님에게 불려갔다고 한다. 선행학습을 했다는 이유였다. 그는 아이의 장래를 위해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선생님의 충고를 들으며 진땀을 흘렸다. 뉴질랜드 교육시스템이 한국보다 월등히 우수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학교가 선행 학습의 폐해를 엄중하게 경고했다는 점에서 교육 선진국의 면모를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진보 교육감 출신인 김상곤 교육부 장관은 경기도 교육감 시절 사교육비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그랬던 그가 취임한 지 100일이 지났지만 아무런 말이 없다. 문재인 정부 들어 장관이 안 보인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김 장관도 보이지 않는 장관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사교육이 ‘기회의 재분배’를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건만 묵묵부답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교육혁신은 국가의 미래가 달린 일이다. 명문대를 나와도 취업이 어려운 이때 사교육만 부추기는 교육을 언제까지 받아야 하는지 대한민국과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이다. ssk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