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에 착용하면 춤을 추게 만들어 주는 로봇이라고 했다. 몸치, 박치도 이 로봇의 힘을 빌리면 세련되게 춤 출 수 있다. 20㎏ 조금 넘는 로봇을 착용한 12명은 일사불란한 춤을 선보였다. 그러나 사람이 숨가쁘고 힘들어도 춤은 끝나지 않았다. 어느새 인간은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외력에 의해 ‘강제’로 움직이고 있었다. 안데르센의 동화 속 ‘빨간 구두’를 신은 카렌처럼.
로봇과 함께하는 인간의 미래는 과연 행복일까 불행일까를 묻는 미디어아트 특별전 ‘다빈치 크리에이티브 2017’이 서울 금천구 금천예술공장에서 다음 달 5일까지 열린다.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금천예술공장은 지난 2010년 예술과 기술의 접목을 시도한 ‘다빈치…’ 행사를 처음 시작해 격년제로 미디어아트 특화한 전시를 선보이며 약 60여 작가의 아이디어를 실제 작품으로 구현하게 이끌었다. 올해는 미디어아트 신작 7점과 해외초청작 5점, 4개의 퍼포먼스와 콘서트 등을 마련했다.
앞서 본 로보틱 퍼포먼스 작품은 캐나다 작가 빌 본&루이-필립 데메르의 ‘인페르노(Inferno)’. 단테의 신곡 중 ‘지옥편’에 등장하는 ‘지옥의 원’에서 영감을 받아 미래를 나타내는 통제의 본질에 대해 묻는다.
가상현실(VR)을 통하면 남의 몸에 들어가 보는 듯한 체험도 할 수 있다. 작가 JF 말루앵의 작품 ‘미의 세 여신’은 VR기기 오큘러스를 써야 볼 수 있다. 라파엘로의 ‘삼미신(三美神)’을 닮은 여성들이 눈 앞에 나타나는데 관객은 조이스틱을 움직여 이들 사이에 끼어들 수도 있고 몸을 만지거나 이들 중 한둘을 밖으로 빼낼 수도 있다. 반대로 이성은·이승민 작가의 ‘에테리얼’은 유체이탈을 경험하게 한다. 의자에 앉아 고글을 쓰면 관객은 자신의 뒤쪽 3m 크기 로봇이 된다. 로봇의 눈으로 나를 보고 로봇의 손으로 내 등을 만지고 어깨를 주무를 수 있다. “우리의 신체란 타자의 시선으로 인지되고 우리는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자신의 존재가 인지된다”는 게 작가들의 얘기다.
해파리의 형광 유전자를 흰 토끼에 주입해 형광토끼를 만든 논란의 ‘바이오아트’ 예술가 에두아르도 카츠는 우주에서 제작한 ‘스페이스아트’를 시도했고 국내에 첫 선을 보였다. 작가가 프랑스 우주인에게 지시해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제작된 영상작품에는 불어로 나(Moi)를 뜻하는 듯한 동시에 탯줄 잘린 인간형상으로 보이는 물체가 둥둥 떠다닌다. 유전자 조작, 중력으로부터의 해방 등 신(神)의 영역을 넘보는 인간의 도전을 은유한다.
예술과 기술 모두에 능했던 다빈치처럼 참여작가 상당수는 이공계 출신이다. 산업용 로봇인 로봇암(arm)을 이용해 아름다운 화면을 창조한 공학도 그룹 ‘팀보이드’의 ‘빛결 연작’은 반짝이며 움직이는 모습이 디지털 아트로 보이지만 실제는 프로그래밍 된 고무줄을 움직이게 한 ‘아날로그적 시도’라 이채롭다. 박테리아를 프로그래밍 해 예술적으로 활용한 생물학자 탈 다니노의 작품은 파스텔로 그린 듯 곱다. 공학을 전공했으나 미술로 전향한 닥드정은 우주선 연결에는 필수적이나 지구에서는 쓸모없는 자성유체를 이용해 생명체가 꿈틀대는 것 같은 기묘한 장면을 연출한다.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주제는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 로봇이 사람의 외양을 닮아갈수록 호감도가 증가하다가 어느 정도가 되면 갑자기 강한 거부감으로 바뀌는 ‘불쾌함의 골짜기’가 생긴다는 이론에서 차용했다. 이후 더욱 인간과 흡사해지면 다시 호감이 급등한다고 알려져 있다. 전시를 이끈 최두은 예술감독은 “로보틱스,인공지능,증강현실,합성 바이올로지,우주기술 등의 발달로 인간의 삶이 증강(augmented)돼 인간과 기계의 구별이 점점 불가능해지고 있다”며 “아직은 인간과 기계를 구분할 수 있는 ‘언캐니 밸리’의 마지막 지점에서 ‘인간다움’을 생각해볼 기회“라고 소개했다. 무료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