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CEO&Story] 설도권 "2030 女관객 의존도 낮추려면 가족뮤지컬 더 많이 선보여야"

설도권 클립서비스 대표

비슷비슷한 작품 우후죽순 남발

결국 업계 제 살 깎아먹기 될 것

새로운 관객층 발굴 적극 나서야

기업 임직원 대상 티켓 서비스

공연시장 획기적 성장 계기 돼

부산 뮤지컬 전용극장 내년 완공

지방서도 좋은 작품 즐길수 있어

설도권 클립서비스 대표/권욱기자


혹자는 애플의 성공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상상력과 직관이 뛰어난 스티브 잡스만 있었다면 애플은 성공하지 못했다. 다행히도 그에게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팀 쿡(현 애플 최고경영자)이 있었다.”

엄격함과 효율성의 상징인 쿡은 잡스와 정반대의 성향이지만 잡스는 그를 뽑은 후 “내 생애 최고의 채용이었다”고 평했다고 한다. 입사 후 잡스의 오른팔이 된 쿡은 재고관리부터 구매 프로세스 혁신, 수요예측 등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며 애플의 안방마님 역할을 톡톡히 했고 두 사람은 13년간 아이팟과 아이폰·아이패드로 세상을 놀라게 하며 애플을 세계 최고 기업으로 키웠다.


아직은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점쳐지는 한국 공연 시장. 여기 한국 공연계의 팀 쿡과 같은 역할을 도맡은 인물이 있다. 바로 공연 서비스 전문기업 클립서비스를 이끌고 있는 설도권(54) 대표다. 지난 1990년대, 시장이나 산업이라는 단어조차 무색할 정도로 국내 공연 업계가 척박했던 시절에 길도 없는 황무지에 길을 내고 이정표를 세웠던 1세대 뮤지컬 프로듀서들이 대부분 연출가 출신의, 소위 예술인이었던 반면 경영학도인 설 대표는 일찌감치 살림살이를 전문으로 하는 경영 전문 프로듀서로 전공을 확실히 했다. 1세대 프로듀서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그의 형 설도윤 설앤컴퍼니 대표의 뒤에서 살림을 도맡았던 그는 이제 홍보·마케팅과 투자·유통, 공연장 운영까지 공연 서비스 전반을 책임지는 업계 최고의 최고운영책임자(COO)를 자처하며 한국 공연 시장의 도약을 이끌고 있다.

30일 서울 강남 논현동 클립서비스 본사에서 만난 설 대표는 국내 공연 산업 선진화를 위한 선결 과제부터 사업적 포부까지 두 시간 반에 걸쳐 열변을 토해냈다. 이 중 거듭 강조했던 것이 공연 시장 저변 확대를 위한 과제였다.

클립서비스의 사업모델 역시 공연 시장의 저변을 넓히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공연 업계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클립서비스’라는 회사의 이름을 모르고 지나치기가 쉽지 않다. 공연 마케팅이나 홍보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인 동시에 ‘캣츠’ ‘오페라의 유령’ 등 내로라하는 라이선스 뮤지컬 기획사로도, 티켓 예매처이자 공연장 운영 대행사로, 공연업 전반의 서비스 영역에서 클립서비스는 ‘무엇이든 다 하는 회사’다. 그렇다고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선입견은 곤란하다. 특히 클립서비스의 주력 사업으로 기업체 임직원을 대상으로 공연을 판매하는 채널서비스는 초창기 척박했던 국내 공연 시장을 키우는 데 톡톡한 역할을 했다.

“모든 시장에는 도매와 소매가 있는데 공연도 도매 시장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고안한 기업 임직원 대상 티켓 서비스는 기업이 거래 상대방이지만 실수요자는 기업의 임직원이라는 점에서 ‘B2C of B(법인 간 거래의 성격을 띠지만 실제 고객은 개인이라는 의미)’에 해당하는 독특한 모델이죠. 회사의 복지 혜택으로 공연 티켓을 제공하면서 공연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까지 공연 시장에 본격 유입됐으니 한국 공연 시장이 획기적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합니다.”

설 대표에 따르면 경험을 판매하는 공연 사업의 특성상 공연을 즐기는 습관을 만들어 충성 관객층을 개발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체 공연 관객의 약 80%를 차지하는 20·30대 여성, 특히 같은 공연을 여러 번 관람하는 ‘회전문 관객’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공연 보는 습관을 갖게 된 충성 관객층으로 한국 공연 시장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그러나 특정 연령·성별 관객층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것이 설 대표의 지론이다. 설 대표는 “요즘은 20·30대 여성 관객의 취향에 맞춘 비슷비슷한 뮤지컬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지고 있는데 결국 ‘제 살 깎아 먹기’가 될 것”이라며 “새로운 관객층을 발굴할 수 있는 ‘캣츠’ ‘위키드’ 등 가족 뮤지컬을 더 많이 선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설도권 클립서비스 대표/권욱기자


이 같은 고민에서 그가 내놓은 마케팅 솔루션이 바로 ‘1565캠페인’이다. 지난해 위키드에 이어 올해 캣츠에서도 선보인 1565캠페인은 15세 이하 유소년과 65세 이상 노년층 관객의 티켓 가격을 절반으로 낮춘 것으로 동반 관객에게도 최대 20%의 혜택을 제공하며 가족 단위 관람객을 늘리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삶의 질에 대한 고민 없이 사는 데 급급했던 시니어층, 너무 많은 엔터테인먼트에 노출돼 있는 청소년층은 우리 공연계가 시장 저변 확대를 위해 포섭해야 할 제일의 고객군”이라는 설 대표의 주장대로였다. 1565 캠페인이 진행된 기간(7~8월)만 놓고 보면 일반 예매자에서는 20·30대 고객 비중이 60% 이상으로 압도적 비중을 차지한 반면 ‘1565티켓’의 경우 40대 구매자 비중이 판매처별로 60~80%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설 대표는 “40대 관객들이 부모님 내지는 자녀들의 티켓을 예매한 것, 즉 가족 단위 동반 관람 비중이 늘어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1565티켓의 마케팅 효과가 장기적으로 입증된다면 클립서비스가 프로듀싱하는 공연 외에도 마케팅·홍보 서비스를 지원하는 다른 공연에도 1565캠페인에 동참하도록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보다 인구 구조상 악조건에 있지만 꾸준한 성장을 거듭하는 시장이 호주 뮤지컬 시장이다. 설 대표는 “인구가 2,000만명에 불과한 호주에서 5년 이상의 장기 공연이 흔하다는 사실은 한국 시장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호주 뮤지컬 시장을 벤치마킹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업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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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대표는 창립 15주년을 맞은 2015년 ‘클립서비스의 제2막 개막’을 선포했다. 현재까지 전문성을 쌓아온 공연 매니지먼트에서 나아가 해외 진출과 투자를 본격화하고 공연장 운영을 포함한 유통과 투자·제작으로 클립서비스만의 밸류체인을 완성한다는 복안이다.

설 대표는 “한국 뮤지컬 시장의 수준이 상당히 올라왔지만 여전히 한국도 뮤지컬을 만드냐고 묻는 해외 프로듀서들이 많다”며 “한국 시장의 인지도를 끌어올리려면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유통·배급할 수 있는 회사가 필요한데 시장 규모가 작은 한국의 특성상 작품 한 편을 한국 시장에만 수입하는 게 아니라 주변국까지 투어를 진행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적어도 오는 2020년까지 클립서비스가 전 세계 톱5 공연기획사와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주요 작품의 글로벌 투어까지 진행할 수 있는 회사가 되도록 경쟁력을 갖춘다는 게 설 대표의 목표다.

특히 공연장 사업은 “클립서비스의 밸류체인을 완성하는 화룡정점”이라는 게 설 대표의 설명이다. 현재 클립서비스는 부산 KB아트홀 용역사로서 기획 공연 운영을 맡고 있고 내년 말 완공을 목표로 설도윤 대표가 부산 국제금융센터에 개발 중인 뮤지컬 전용극장의 운영 역시 클립서비스가 맡게 된다. 설 대표는 “클립서비스가 위탁 운영하는 사업장들과 유사 공연장 시설을 갖춘 기업들의 지방 사업장들이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되면 지방에서도 경쟁력 있는 작품을 선보일 수 있게 될 것”이라며 “대학로 아티스트나 뮤지션들 입장에서는 구매력을 갖춘 직장인들이 밀집된 곳에서 다양한 공연 기회를 가질 수 있고 직장인들은 문화소외 지역에서 수준 높은 문화상품을 즐길 수 있으니 윈윈”이라고 말했다.

3년 후 클립서비스의 미래 비전을 다지기 위해 지난 6개월간 설 대표가 공들인 것이 또 있다. 바로 최근 70억원 규모로 결성된 클립 공연 인프라 펀드다. BC카드를 포함해 4개사가 출자자로 참여한 이 펀드는 국내 공연장과 무대, 라이선스 등 공연 서비스 전반에 투자하는 펀드로 40%는 개발 과정에 있는 콘텐츠에 순환 투자할 계획이다. 설 대표는 “내년에는 2~3호 펀드 결성을 추진할 것”이라며 “펀드마다 투자처를 달리해 공연 전반에 골고루 투자할 수 있도록 운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설 대표가 클립서비스 설립 당시부터 뚝심 있게 밀어붙이고 있는 또 한 가지 사업 영역이 뮤지컬 전문잡지 ‘더뮤지컬’ 발행이다. 설 대표는 “공연 마케팅의 핵심은 공연과 관객의 만남을 주선하는 것인데 그러려면 꾸준히 작품과 배우를 알리는 공간이 필요하다”며 “한국 뮤지컬 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해외 제작사들을 설득할 때도 ‘더뮤지컬’이라는 잡지를 발행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신뢰를 얻을 때가 많았다”며 웃었다.

, 사진=권욱기자

서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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