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벳(구글 지주회사)과 페이스북은 지난해 각각 903억달러(약 102조원)와 276억달러(약 31조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국내 1위 포털인 네이버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업계 1위인 카카오는 지난해 각각 4조원과 1조5,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구글 매출은 네이버의 25배, 페이스북은 카카오의 20배에 이른다. 구글과 페이스북의 시가총액은 지난 27일(현지시간) 기준으로 806조원과 581조원에 달한다. 네이버(29조원)는 구글의 3.6%, 카카오(9조원)는 페이스북의 1.6%에 불과하다. 사업 무대가 다르고 가입자 수가 다르다고는 해도 덩치에서는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다. 인수합병(M&A)과 연구개발(R&D) 규모에서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글로벌 정보기술(IT) 시장에서 이들 ‘공룡 기업’과 버거운 싸움을 해야 하는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은 내수 시장에서도 불공정한 법·제도와 불합리한 규제로 인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역차별을 받으면서 뛰고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한다. 임지훈 카카오 대표는 지난달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글로벌 기업과의 역차별 문제가 있다. 왜 국내 업체인 카카오와 네이버만 강한 압박을 받아야 하느냐”며 “똑같이 규제해달라는 게 아니다. 글로벌 IT 기업들과 같은 운동장에서 똑같이 뛸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한국 기업은 제 돈 내는데 해외 사업자는 무임승차=국내 ICT 기업들이 ‘트리플A(알파벳·애플·아마존)’를 비롯한 해외 기업들에 비해 역차별을 받고 있는 규제 분야는 열 손가락으로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대표적인 것이 통신망 이용료 역차별이다.
통신 분야 시장조사기관인 텔레지오그래피에 따르면 망 사용료는 전 세계적으로 하락하는 추세지만 한국만 유독 상승 기조다. 한국의 망 사용료는 미국·유럽 대비 15배나 높다. 문제는 국내 콘텐츠사업자(CP)들의 경우 매년 수십억~수백억원의 망 사용료를 내고 있지만 구글(유튜브)·페이스북은 거의 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구글은 지난 2008년부터 유튜브의 버퍼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외 지역에 콘텐츠 캐시서버를 전진 배치하는 ‘구글글로벌캐시(GGC)’ 정책을 시행하면서 해당 국가 망사업자(ISP)에 무료로 서버를 설치해주는 대신 망 사용료를 내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 동영상 트래픽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유튜브는 망 사용료 부담 없이 초고화질 동영상 서비스를 제공하는 반면 국내 동영상 업체들은 망 사용료 부담 때문에 여전히 초고화질 동영상 서비스 제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음란물 등 불법정보에 대한 내용 규제에서도 역차별이 일어나고 있다. 기존 법에서는 해외 사업자들의 서비스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권고 이상의 명령이나 과태료를 강제하기 힘들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부가통신사업자로 신고조차 돼 있지 않고 구글은 신고는 돼 있으나 유튜브나 구글플레이 서버가 국외에서 운영되고 있다고 주장할 경우 국내법으로 규제할 명분이 없다. 대시보드 공간에 사진이나 글을 게시하고 공유하는 소셜 네트워크 플랫폼인 텀블러를 통해 유통되는 음란물이 최근 문제가 됐으나 국내에서는 제재가 불가능하다. 국내 인터넷방송사업자 등 부가통신사업자는 음란정보가 유통되는 것을 명백히 인식한 경우 지체 없이 삭제, 접속 차단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하는 등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국서 조(兆) 단위 매출 올리고도 세금 한 푼 안 내=준조세를 포함한 세금 문제도 국내 기업들의 발목은 잡고 해외 사업자들에는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구글은 게임 등 애플리케이션 마켓인 구글플레이로 앱을 유통하고 30%에 달하는 수수료를 챙긴다. 이를 통해 지난해에만 국내에서 4조5,000억원가량의 매출(거래액 기준)을 올렸으나 법인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된다. 인터넷을 이용한 디지털 거래에서는 물리적인 고정사업장 유무로 법인세를 부과하는데 구글의 경우 싱가포르에 서버를 둬 과세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앱스토어를 운영하는 애플도 마찬가지다. 앱스토어의 지난해 매출은 2조원, 애플이 챙겨간 수수료는 6,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외국 업체들은 매출 규모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과세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면서 “이들이 한국에서 벌어들인 막대한 수입이 재투자의 종잣돈이 돼 경쟁력을 키우는 데 사용된다면 너무 불공정한 게임”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국내 기업들은 법인세와 부가가치세를 꼬박꼬박 내면서 준조세 성격의 각종 기금 출연까지 강요받는다. 최근에는 방송·통신사에 부과되는 방송통신발전기금을 인터넷 포털 업체도 내도록 하는 법률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법률안이 통과되면 포털 업체는 광고 매출의 5~6%를 기금으로 내놓아야 한다. 포털 업체의 규모가 성장한 만큼 대중매체로서의 공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취지이지만 주파수와 같은 희소 자원을 할당받아 사업을 영위하는 방송·통신사와 달리 포털 사업자에 기금 출연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과잉금지 원칙과 평등 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같은 역차별 문제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 들어 ‘가계 통신비 절감’을 이유로 통신 관련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것도 국내 ICT 업체들로서는 큰 부담이다. 민간사업자의 요금을 정부가 직접적으로 통제하는 보편요금제가 대표적이다. 보편요금제는 음성과 문자를 무제한 제공하되 월정액 데이터를 기본으로 제공하면서 가격은 현행과 비슷한 조건의 요금제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뜨리도록 의무화하는 제도다. 통신비 절감 명분은 이해하지만 사업자의 요금 설정권을 사실상 박탈하는 극단적인 규제라는 지적이 많다. ICT 업계 관계자는 “인공지능이나 사물인터넷·빅데이터 등의 분야에서 인재 영입과 기술 개발에 돈을 쏟아부어도 글로벌 기업과 경쟁이 벅찬 상황에서 역차별은 개선되지 않고 규제만 강화되고 있어 우려스럽다”면서 “국내 기업들이 해외 사업자들과 평평한 운동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하면서 신성장동력을 빨리 확보할 수 있도록 규제나 법·제도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