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양양 구간 고속도로가 개통한 후 이 도로는 단풍철을 맞아 미어터지고 있다. 한국도로공사는 “새로 뚫린 서울~양양 구간 150㎞의 운행시간이 90분”이라고 발표했지만 단풍철이 시작된 지난 10월 한 달간 홍천·양양 등을 세 차례나 찾았던 기자는 3시간 안쪽으로 목적지에 도착한 적이 없다. 그것은 도로공사의 잘못이 아니라 온전히 설악의 단풍 탓이다. 붉고 노란 나뭇잎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았기 때문이다. 도로 위로 넘치는 차량 행렬에 가평휴게소까지 두 시간이 넘게 걸려 이 구간은 주차장이나 다름없었다. 그야말로 단풍 행락철의 위력을 실감하는 시간이었다. 그 고생을 하면서 지난주 찾았던 곳은 양양군의 미천골 자연휴양림. 오대산과 설악산 사이 어중간한 곳에 위치해 이 난리 북새통에도 비교적 인적이 드물었다. 가는 동안은 고생스러웠지만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비교적 한갓진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미천골 자연휴양림을 가려면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대략 30분을 더 들어가야 한다. 미천골에서 객을 처음 맞는 것은 진입로 중간쯤 위치한 폐사지터다. 이 터의 이름은 ‘선림원지’. 9세기 초에 교종 산하의 절로 지어졌지만 9세기 말에 선종의 절로 바뀌면서 중창불사가 이뤄졌다. 이후 선림원은 1,000명이 넘는 승려들이 공부하는 도량으로 맥을 이었다.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로는 1948년 이곳에 움막을 짓고 기도하던 무당이 꿈을 꾼 후 발견한 범종이 유명했다. 하지만 그 종은 이듬해 월정사로 옮겨갔다가 6·25 동란 중 불에 녹아버렸고 잔해는 국립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이 종과 비슷한 연대에 만들어진 에밀레종과 상원사 범종을 본떠 복제품을 만들었는데 이 종은 지금 춘천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다.
그 밖에 선림원지에서 발굴된 보물로는 삼층석탑(보물 제444호), 석등(보물 제445호), 흥각선사탑비(보물 제446호), 부도(보물 제447호) 등이 있다. 이에 더해 지난해에는 금동불상과 옥개석이 발굴됐는데 불상은 신라시대 것으로 아우라까지 잘 보존돼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절터를 지나쳐 차로 5분쯤 올라가면 드디어 미천골 입구가 모습을 드러낸다. 12㎞에 달하는 미천골계곡은 계곡과 폭포가 번갈아 이어지는데 길과 나란히 흐르는 계곡을 따라 아래로는 옥수(玉水)가, 그 위로 단풍이 흐르고 있다.
제1야영장주차장에서 산행을 시작해 약 2.5㎞를 걸으면 상직폭포가 모습을 드러낸다. 상직폭포는 20m 높이의 2단 폭포로 제대로 보려면 계곡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강수량이 적은 탓인지 수량은 많지 않았다.
산의 풍광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해설사 박미경씨는 “제2야영장에서 조봉(1,182m)를 거쳐 미천골정으로 내려오는 ‘조봉 등산로(6.2㎞)’와 임도를 따라 걷는 ‘불바라기약수 산책길(5.7㎞)’이 무난한 코스”라며 “특히 마지막 1㎞ 구간은 경관이 매우 아름답다”고 말했다.
박씨는 “불바라기까지 자동차가 갈 수는 있지만 비포장도로여서 승용차로는 접근이 힘들고 사륜구동차가 있어야 하지만 보통은 업무용 차량만 통행하고 있다”며 “미천골 자연휴양림은 다른 설악산 자락에 비해 일반에 알려지지 않았었는데 서울양양고속도로가 개통된 최근부터 갑자기 관광객들의 숫자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미천골 자연휴양림에는 산림자원도 풍부하다. 계곡 양편에는 박달나무·물푸레·고로쇠·층층나무·피나무·음나무·복자기·서어나무 등 다양한 수종이 분포하고 있다. 울창한 산림과 자연 생태계가 잘 보존된 청정지역으로 일교차가 큰 이맘때 새벽에 찾으면 계곡을 뒤덮는 물안개를 볼 수도 있다.
한편 미천골 자연휴양림은 25개의 객실 외에 3곳의 야영장에 84면의 야영 데크시설(일반 53면·오토캠핑 21면)을 구비, 겨울철을 제외한 연중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숙박예약은 인터넷으로 접수하며 등산이나 트레킹을 할 때는 따로 예약하지 않아도 된다. 대중교통은 불편해서 하루 네 번 양양과 휴양림을 잇는 버스가 있을 뿐이다. 숙박시설 이용시간은 당일 오후3시~익일 정오까지다. 강원도 양양군 서면 미천골길 115. 문의 (033)673-1806
/글·사진(양양)=우현석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