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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인터뷰①] '모든 삶은, 작고 크다'…루시드폴의 '농부'와 '가수' 사이

‘모든 삶은, 작고 크다’

참 루시드 폴다운 제목이다. 느리고 소박하지만 그 안에 깊은 울림을 전하는 싱어송라이터 루시드 폴이 지난 2년간의 삶을 그대로 담아낸 새 앨범을 발표했다. 특이한 점은 그 형태가 수필과 에세이를 결합한 ‘에세이뮤직’이라는 새로운 시도라는 것이다. 물론, 자신이 직접 기른 귤과 앨범을 홈쇼핑을 통해 팔았던 지난 앨범에 비하면 비교적 평범(?)한 행보지만.




/사진=안테나/사진=안테나


“사실 요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씨디를 통해서 음악을 들으려 하시지 않는 시대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에서 음반을 구입하시고 그것을 찬찬히 들어주시려 하는 분들도 계실 거라 생각해요. 그런 분들에게는 무언가를 더 드려야죠. 그게 바로 지난번에는 귤이었고, 이번에는 에세이가 됐어요”

“음반 전체의 얼개를 꾸리면서 ‘작게 산다는 건 뭘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부제처럼 떠올랐던 문장이 ‘모든 삶은 작고 크다’였어요. 앨범 제목으로는 안 맞을 수도 있고, 제가 뭐라고 삶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도 웃기지만요. 직접 농사를 짓다보니 우리가 알 수 없는 너무 많은 생태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뭐든 쉽게 할 수가 없게 되더라고요. 벌레든 사람이든 생명은 하나라는 건 똑같잖아요. 이 안에 굉장히 큰 우주가 있다는 생각을 매일 피부로 느껴요”

루시드폴이 육필로 원고지에 직접 쓴 첫 에세이 ‘모든 삶은, 작고 크다’에는 제주에서 무농약 감귤 과수원을 가꾸는 농부로서 살아가는 동안 마주친 작지만 큰 삶의 기록들이 담담하게 담겨있다. 함께 수록된 사진 역시 루시드폴이 꾸준히 필름 카메라로 기록해 온 일상의 기록들이다.

“처음에 글 작업과 노래 작업은 완전히 별개였어요. 그런데 오두막을 지은 이야기, 매일 마주치는 새들, 생일날 어머니가 보내준 도시락을 보면서 어릴 때 살던 바닷가, 제가 아내와 만난 이야기 등의 이야기들을 써내려 가다보니 나중에 노래 하나하나와 맞닿는 지점들이 있더라고요. 멜로디로만 들으시는 분들은 그 분들 나름대로의 흐름대로, 음반과 글을 함께 읽으시는 분들은 또 다른 흐름대로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타이틀곡 ‘안녕’은 루시드폴이 직접 작사, 작곡하고 일렉 기타에는 친구 이상순이, 피아노에는 이진아가 참여해 특별함을 더했다. 60년대의 세미 할로우 베이스, 70 년대의 드럼, 80 년대의 업라이트 피아노 소리가 2017년 그의 목소리와 합쳐져 투박하지만 아름다운 사운드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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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안테나/사진=안테나


이와 함께 ‘안녕, 그동안 잘 지냈나요’라는 나지막한 목소리를 배경으로 하는 뮤직비디오는 그가 사는 제주의 자연 속에서 마주한 생명들, 그가 직접 일구는 감귤 과수원에 귤꽃이 만발하는 계절부터 수확의 시기까지의 모습 등이 담겨있다. 이는 루시드폴과 그의 아내가 슈퍼 8mm 무비 카메라로 꾸준하게 기록해 온 영상들을 한 데 모아 제작한 것으로, 실제 촬영 기간 역시 무려 2년에 달한다.

“이 곡은 원래 인트로로 쓰려고 했던 곡이에요. 그래서 처음에는 피아노 하나만 사용하려고 했죠. 그냥 안부를 묻고 편지를 쓰는 기분으로 쓴 곡이어서 사실은 일반적인 가수들이라면 타이틀로 선택하지는 않을 곡이에요. 그런데 글과 노래, 사진과 모두 어우러지면서도 앨범을 설명할 수 있는 노래는 ‘안녕’ 밖에 없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뮤직비디오도 제가 찍어온 것들을 잘 편집해서 나오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이걸 통해서 앨범을 완결했다는 느낌도 들어요”

루시드폴은 이번 앨범을 만들면서 자신만의 소박한 작업 공간을 마련했다. 그는 자신의 과수원 인근에 1층 4평, 2층 8평 규모의 창고 겸 작업실로 사용할 작은 오두막을 지어 이 곳에서 이번 앨범의 작사, 작곡, 편곡, 녹음, 믹싱까지 직접 해냈다. 루시드폴은 소리를 차단하는 일반적인 스튜디오와는 달리 오히려 소리의 울림을 담아낼 수 있도록 작업실 자재 선정에도 각별하게 신경을 썼다.

“전문가가 아니다보니 제대로 된 스튜디오 디자인을 할 수는 없었지만, 제가 매일 생활하고 농사일을 하고 있는 공간의 울림은 전해졌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내장재를 모두 나무로 선택했어요. 공간이 완성된 이후에 이곳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러봤는데 정말 좋더라고요”

시간이 갈수록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이 많은 농사와 음악의 공통점을 찾는 루시드폴. 특히, 직접 오두막 스튜디오를 짓고, 여기에서 작사부터 프로듀싱까지 모든 과정을 마친 이번 앨범은 그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선사했다. 다른 사람의 밭을 빌려 농사를 처음 시작하던 순간부터 무농약 인증을 받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농부로 성장해온 것처럼, 이번 기회를 통해 루시드폴은 가수로서도 한 뼘 성장했다.

“많은 사람들이 앨범을 이 정도 냈으니 음반에 대해서는 빠삭하게 알겠다고 생각하시지만, 저 역시 직접 해보지 않아서 모르는 것들이 많았어요. 이제는 내 목소리가 어떤지, 소리는 어떻게 다듬어야 하는지를 느껴보고 싶었어요. 직접 뼈대를 세우고 문고리 하나하나 달면서 집을 지은 것처럼, 음악 역시 직접 해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됐죠”

/서경스타 이하나기자 sestar@sedaily.com

이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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