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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분석] 절제한 트럼프...한국, 안도할 때 아니다

서정명 정치부장 vicsjm@sedaily.com

서정명 정치부장-트럼프 방한 25시간이 남긴 것

국회서 말폭탄 대신 신중 메시지

FTA 재협상 단어조차 안 꺼내

양국 이견 제대로 조율 못하면

한국에 밀린 청구서 들이밀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연설을 마친 뒤 의원들과 악수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 중 북핵 위협과 관련해 “힘을 통해 평화를 유지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호재기자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연설을 마친 뒤 의원들과 악수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 중 북핵 위협과 관련해 “힘을 통해 평화를 유지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호재기자




악수를 건네는 손은 정다웠고 서로의 만면에 미소가 그윽했다. 지난 7일 한국을 국빈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에서 보낸 25시간 동안 문재인 대통령과 굳건한 한미동맹 행보를 보였다. 일각의 우려와 달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정 압박수위도 크게 낮췄다.


양국 정상이 한국 국민과 국제사회에 보여준 한미관계는 한마디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 오전 국회 연설에서 “양국 동맹은 전쟁의 시련 속에서 싹텄고 역사 시험 속에서 강해졌다”며 혈맹을 강조했다. 도발 기회를 엿보고 있는 북한 김정은 위원장에게는 “우리를 과소평가하거나 시험하지 말라”며 경고했다. 미치광이 전략을 구사하며 거친 언행을 보였던 옛날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는 직접 연설문을 다듬으며 세련된 단어와 절제된 표현을 구사했다. 지난 유엔총회 때 쓴 ‘완전한 파괴’와 같은 말폭탄을 투하하지도 않았고 김정은 위원장을 로켓맨이라고 비꼬지도 않았다. 서울경제 펠로(자문단)인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발언에 수위조절을 했다”고 평가했다.

차기 주한 미국대사로 유력한 빅터 차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도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행보에 대해 “두 정상은 매우 좋은 회담을 했다”며 “양국 정상은 같은 대북 전략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3·4면

실제 그랬다. 이날 국회 연단에 오른 트럼프 대통령은 “힘을 통해 평화를 유지하고자 한다”며 “북한의 목표는 한국을 자신들 밑에 두는 것이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날 최대 해외 미군기지인 캠프 험프리스에서 맺은 ‘평택 결의(結義)’의 연장선이었다. 짙은 안개 때문에 무산되기는 했지만 양국 정상은 비무장지대(DMZ)까지 가려고 의견을 나눴다.

하지만 달콤한 사과 속에 벌레가 숨어 있는 법이다. 한미 양국이 이번 회담을 윈윈한 위대한 만남이라고 자평하지만 앞으로 외교·안보와 경제 부문에서 의견충돌과 마찰이 빚어질 가능성이 상존한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지만 앞으로 전작권 전환, 한미 FTA 등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좋은 성적표를 받아들었다고 해서 환호성을 지를 것이 아니라 더 어려운 다음 테스트를 준비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거래의 달인’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추가 도발을 감행할 경우 문 대통령에게 평택 결의를 이행하라고 압박할 것이고 한미 FTA 개정협상의 속도를 높이라고 목청을 돋울 게 분명하다. 미국 국민들에게 선언했던 ‘아메리카 우선주의’의 본질을 선보이면서 한국에는 밀린 청구서를 들이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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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문재인 정부로서는 3불(不) 원칙의 덫에 빠져서는 안 된다. 기계적인 한중 균형외교를 고집하다가는 한미동맹 균열을 자초하게 된다. 북한 도발 빈도와 수위에 따라서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를 추가 배치할 수 있고 미국과 미사일방어체계(MD) 협력에 나설 수 있다는 점도 분명히 해야 한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전술핵 재배치, 전략자산 상시배치 등 미국의 핵우산 강화에 대한 언급이 없어 아쉬웠다”고 말했다. 힘에 기초한 대북 압박을 위해서는 핵우산을 통한 강력한 확장억지 전략도 정교하게 짜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방문을 통해 벌써 7조원을 챙겼다.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수십억달러 규모의 무기를 한국이 구매해줘서 고맙다고 밝혔는데 최종 계약이 성사됐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강제이행을 압박하는 거래다.

앞으로 전작권 전환 조건과 시기, 방위비 분담금 협상, 핵잠수함 등 전략자산 배치 등을 놓고 한미 양국이 이견을 노출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코리아 스키핑(skipping)은 없다”고 확언했지만 제대로 조율하지 못할 경우 동맹에 금가는 소리가 들릴 수 있다.

한미 간 통상 분야도 위장된 성과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통상압력을 극도로 자제하는 분위기를 연출했고 국회 연설에서는 한미 FTA 단어를 아예 꺼내지도 않았다. 양국 간 FTA에 대해 ‘끔찍하다’고 발언했던 이전과는 대조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시아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면 통상 계산기를 두드릴 것이고 앞으로 예정된 한미 FTA 개정협상에 대한 압박 강도도 높일 게 뻔하다.

정상회담 파티는 끝났다. 문 대통령 책상 위에는 전략자산 배치를 통한 한미동맹을 굳건히 하면서도 한미 FTA 개정협상에 따른 손실을 최소화하는 난제가 놓여 있다. 트럼프 방한 25시간이 남긴 숙제다.

서정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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