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작가로 산다는 것, 물론 힘들어요. 하지만 단군 이래 소설가가 지금처럼 많은 돈을 번 적이 없었다는 것 또한 진실입니다. ‘작가가 되면 생계 유지도 힘들 거야’라는 공포에 압도당해서 꿈을 포기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지난 9일 오후 광화문 교보생명 빌딩 23층 컨벤셜홀. 한국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소설가 중 한 명인 장강명(42·사진)이 이날 ‘교보 인문학 석강(夕講)’의 강연자로 나서 작가 지망생들의 귀를 쫑긋 세울 만한 조언들을 아낌없이 들려줬다. 교보문고·대산문화재단 공동주최로 열린 이번 행사는 ‘소설가의 자화상-2017년의 그림’이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저녁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350석이 마련된 강연장에는 220명이 넘는 청중이 꽉 들어차 작가의 대중적 인기를 실감케 했다.
“작가라는 직업의 밝은 면에 대해 주로 얘기를 하고 싶다”고 말문을 연 장강명은 소설가 지망생들이 용기를 품어도 될 만한 든든한 배경으로 한국의 방대한 영화·드라마 산업을 지목했다. 그는 “자국 영화 점유율이 50%를 넘는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 5개국에 불과하다”며 “현재 한국의 영화시장 규모는 세계 7위 수준인데 수년 안에 3위로 도약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고 소개했다. “서사를 바탕으로 하는 문화·콘텐츠 산업이 워낙 커지다 보니 영화·드라마 제작사들도 좋은 소설 판권을 사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어요. ‘빛의 호위’, ‘종료되었습니다’, ‘로기완을 만났다’처럼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지 못한 소설들도 판권이 다 팔렸을 정도니까요.”
장강명은 “한국 소설이 문화·콘텐츠 산업의 원류(源流)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라며 “저만 해도 8권의 소설 중 절반은 판권이 팔렸다. 아마 다른 나라 작가들은 이런 환경을 가진 한국 소설가들을 부러워할지도 모른다”고 짐작했다.
이때 한 청중이 손을 들고 “영화화를 노리고 너무 자극적이고 상업적인 스토리를 추구하게 되는 것 아니냐”고 날카롭게 질문했다. 그러자 장강명은 빙긋 미소를 짓더니 “최근 한 제작사로부터 드라마 작업에 참여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돈’이 보이는 길이었지만 내가 쓰고 싶은 건 소설이라 제안을 거절했다”며 “전설의 영화감독인 히치콕처럼 돈도 벌고 의미도 있는 작품을 쓰는 것이 목표”라고 재치 있게 응수했다.
지난 2006년 장편소설 ‘표백’으로 등단한 장강명은 쉼 없는 다작(多作) 속에서도 골고루 우수한 작품을 선보이며 한국 문단의 확실한 희망으로 자리매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