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1997 환란 그후 20년] 외형·건전성 좋아졌지만 정부 정책에 '실탄' 동원 되풀이

■환란이후 국내 은행 변화는

BIS비율 7.04%→15.37%로 상승

자기자본이익률도 6.68% 달해

규제를 빚탕감에 악용 관행 여전

은행 부실·도덕적해이 초래 우려

외환위기 발생 직전인 지난 1996년 말 30대 그룹의 부채비율은 382%에 달했다. 대기업이 부실화되면 정책당국의 지원을 받아 손실을 메웠고 빚을 내 투자한 뒤 수출로 외형을 확대하는 데만 몰두했다. 당시만 해도 금융은 정부의 ‘지휘’ 하에 대기업 등 제조업을 지원하는 손쉬운 ‘수단’에 불과했다. 당시 은행에 근무했던 전직 뱅커는 “부채비율이 800%를 넘는 기업들도 당국이 구두 사인만 주면 은행들이 대출을 해줬다”며 “정부는 (기업부도 등) 위험관리에 대한 인식조차 없었고 경제를 성장시켜야 한다는 목적 아래 은행들도 ‘묻지마’ 식 기업대출을 했다”고 지적했다.

환란을 겪은 지 20년이 지난 현재 국내 은행의 경쟁력은 어느 정도일까. 은행들의 수익성을 가늠하는 지표인 자기자본이익률(ROE)은 올 3·4분기 6.68%로 전년 동기 대비 1.28%포인트 올라갔다. 국내 은행들의 BIS 자기자본 비율은 1997년 말 7.04%에서 올해 6월 15.37%로 상승했다. 기업대출 연체율도 같은 기간 7.3%에서 0.63%로 크게 안정됐다. 특히 올 3·4분기에만 3조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는 등 20년 전과 비교하면 외형성장과 건전성은 크게 개선됐다는 평가다.


그러나 글로벌 은행들과 비교하면 국내 금융은 여전히 동네 가게 수준이다. ROE는 아시아 주요 은행들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고 국내 은행 평균 총자산순이익률(ROA)은 0.52%에 그친다. ROA는 자산을 가지고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용했는지를 보는 척도인데 지난해 글로벌 100대 은행의 평균 ROA가 0.85%인 것과 비교하면 갈 길이 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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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국내 금융지주들이 각각 자산 규모 300조~400조원 이상으로 덩치는 커졌지만 수익구조가 대부분 은행에 집중돼 있고 이마저 이자수익(예대마진)에 70~80% 의존하는 구조에 머물고 있다. 투자금융(IB) 분야에서는 그만큼 열악하다는 것이다. 특히 주택담보대출 등 손쉬운 영업 관행에만 머물다 보니 1997년 211조원이었던 가계부채를 1,400조원까지 키우는 등 경제에 새로운 뇌관을 방치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글로벌 100위권 은행에서 한국의 은행들이 차지하는 위상만 봐도 현주소를 잘 알 수 있다. 국제금융전문지 ‘더뱅커(The Banker)’가 세계 1,000개 은행 순위를 기초로 세계 100대 은행그룹의 재무현황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100대 은행그룹 중 국내 은행은 5개였다. KB금융이 60위로 가장 높았고 신한금융 68위, 하나금융 80위, 우리은행 88위 등이었다.

더 큰 문제는 핀테크 부상 등 금융환경이 급변하고 있지만 끓고 있는 냄비 속 개구리처럼 위험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조는 사측의 점포축소 등 경영 효율화에 발목을 잡고 있고 은행 경영진은 연임에 골몰하면서 내부 파벌싸움에 정신을 팔고 있다. 그러면서 정부 정책에 호응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스스로 관치를 자초하고 있다는 비난도 없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민간은행의 회장이나 행장 선임을 놓고 낙하산 논란이 끊이지 않아 후진적인 경영승계 과정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바뀌면 손바닥 뒤집히듯이 바뀔 정도로 ‘5년짜리 정책’이 난무하고 정책의 영속성도 없어 금융사들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더구나 규제라는 무기를 든 정부가 금융을 산업적인 관점에서 육성하기보다 정치권 눈치를 살피며 팔을 틀어 빚 탕감 등 구휼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하는 관행도 여전하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시장이나 시스템에 의해 작동하기보다 정부 정책에 맞춰 은행들이 움직이면 나중에 부실 가능성이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현상을 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도 “금융이 정부 규제와 감독을 받고 경제정책의 도구적 역할로 인식되다 보니 불필요한 개입이 만연하다”며 “정권이 바뀌고 새로운 어젠다를 추진하려면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금융을 놓고 싶지 않아 한다”고 분석했다.

황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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