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자동차·IT도 경쟁력 정밀 점검] "반도체 빼곤 산업 경쟁력 녹록잖아 숫자에 취할 때 아니다"

"산업 곳곳 워닝벨...체질개선 못하면 도태"

구조조정 방식도 퍼주기 대신 인프라 구축 등 주력

선제대응 위해선 '원샷법' 확대 등 제도개선도 필요

0415A03 새정부구조조정수정


한국은행이 분기성장률 1.5%(잠정치)를 기록했다고 밝힌 지난달 30일 정부의 한 관계자는 “반도체 일부 업종을 제외하고는 우리 산업의 상황이 녹록지 않다”고 진단했다.

“올해는 적어도 3.2%는 성장한다”는 한은의 전망에도 정부의 시선은 내년 이후를 향했다. “숫자에 취할 상황이 아니다”라면서 “시급하게 산업체질을 개선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라고 말했다. 낙관하기에는 여러 지표에서 ‘워닝벨(warning-bell)’이 울리고 있다는 것이다.


먼저 최근의 경기회복세는 허점이 많다. 세계 경제개선 등에 따른 수출 호조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지난 3·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3.6% 가운데 3.4%포인트는 수출이 만들어냈다. 수출의 성장 기여도가 94%에 이른다는 뜻이다. 수출을 다시 뜯어보면 반도체 등 일부 업종에 대한 의존이 심하다. 올해 10월까지 반도체의 수출 기여율은 40.1%에 이른다. 내년 우리나라 수출은 반도체를 제외하면 1.8% 감소할 것이라는 산업연구원 분석도 있다. 생산에 있어서도 이런 경향은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전 산업 생산은 2·4분기 -0.3%, 3·4분기 1.3% 성장했는데 반도체·전자부품을 제외하면 각각 -1.9%, -0.4%에 그친다.

한국 산업의 대들보 역할을 하는 자동차와 정보기술(IT) 역시 상황이 녹록지만은 않다. 이지만 전 자동차산업학회장(연세대 교수)은 “자동차 산업은 중국 사드 사태 여파와 원화 강세·엔화 약세 등 영향으로 해외 판매량이 급감하고 있다”며 “전기·자율차 등 첨단 기술 수준도 경쟁사들에 비해 낮고 노동비용이 높아 가격 경쟁력에 악영향을 주는 등 구조적인 문제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올해 상반기 국내 자동차 생산량은 201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IT 산업 역시 반도체 호황의 수혜를 누리는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매출·영업이익이 부진해 부실 징후 기업이 급증하고 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영업이익으로 이자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IT 기업은 39.8%로 제조업 전체(26.5%)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았다. 특히 소프트웨어·보안 분야의 부진은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자동차·IT 등을 아우르는 전방위 구조조정을 준비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산업 전반의 체질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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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제적 사업 재편을 통한 체질개선은 사실 과거에도 수없이 강조된 것이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거북이걸음’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포브스 글로벌 500에 속한 8개 한국 제조업체 중 2011~2016년 새로 생기거나 철수한 사업 부문은 4개에 불과했다. 미국은 21개사에서 29개 사업 부문, 일본 20개사에서 43개 부문이 재편된 것과 비교하면 매우 저조하다. 정부는 이런 점을 감안해 우리나라 주요 업종의 업황과 기술 흐름 등을 분석해 바람직한 사업 재편, 혁신 방안을 제시하고 이를 가로막는 애로 사항을 해결해줄 계획이다. 특히 주요 업종이라 할 수 있는 곳은 업황이 비교적 양호한 곳까지 경쟁력을 점검해 진정한 의미의 선제적 구조조정을 유도하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구조조정 방식은 과거의 무분별한 퍼주기식 지원은 멈춘다. 조선업 등에 대한 대규모 혈세 지원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는 반성에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구조조정 하면 흔히 국책은행의 대규모 금융 지원을 떠올리는데 이런 관행도 과감히 바꿔야 한다”며 “정부 지원은 제도 개선, 인프라 구축 등에 주력하고 부실기업도 최대한 시장 자율로 처리하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런 구조조정 정책 방향을 이달 초 산업관계장관회의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선제적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 이른바 ‘원샷법’의 확대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원샷법은 선제적 구조조정을 위해 맞춤형으로 만든 제도로 적용 기업에는 각종 세제·금융지원 혜택과 인수합병(M&A) 등 규제완화가 지원된다. 하지만 ‘과잉 공급’으로 인정된 업종에 한해 구조 변경과 사업 혁신을 동시에 수행해야만 지원한다는 까다로운 조건 등 때문에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올해 원샷법 지원을 받은 기업은 11월 현재 34곳에 그쳤다. 최대한 보수적으로 잡은 올해 목표 50곳도 채우지 못할 지경이다.

정부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지만 지난 정권 때는 반대했던 정책이었다는 이유 등으로 제도 개선을 미적거리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원샷법이 부실 전 기업의 선제적 사업 재편을 돕는다는 취지임에도 지원 대상을 과잉 공급 업종으로 제한한 것은 모순된 측면이 있기는 하다”면서도 “제도 개선은 좀 더 시행해보고 내년 하반기 이후에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종호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 우리 경제 상황과 4차 산업혁명의 빠른 진행 등을 고려하면 과거 반대했던 법이라는 이유로 제도 개선을 망설이는 것은 너무 안이한 생각”이라고 꼬집었다.

서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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