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합니다.’
사과할 때 쓰는 말이다. 길을 걷다가 지나가는 사람과 부딪치거나 크든 작든 상대방에게 잘못을 저질렀을 때 사과를 해야 한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러나 사과에도 경중이 있고 적절한 시기가 있다는 것까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특히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완벽주의자로 커 나가기를 강요받으며 자랐거나, 가족과 같은 친한 관계에서 굳이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는 암묵적인 환경에서 자라났다면 사과에 인색하기가 쉽다.
사과를 하는 상황도 다양하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데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 혹은 지나치게 ‘미안하다’를 남발하는 경우, ‘미안하다’는 사과가 되레 관계를 멀어지게 하는 경우 등 복잡하기만 하다.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진정성이 담겨있느냐가 사과의 출발점이라는 것. ‘미안하다’고 말을 꺼내놓고선 ‘그런데’로 말머리를 돌린다면 제대로 된 사과의 효과를 얻고 상대의 용서를 기대하기 어렵다. 단지 변명 혹은 자기방어 기제가 작동해 관계개선을 시도했다 상대의 화만 돋우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미안하다’는 한차례의 말 한마디로 끝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오래 전 일로 마음에 앙금이 가라않은 사건으로 관계가 멀어졌다면 무턱대고 상대의 용서를 구해서는 안된다. 사과의 기술은 의외로 복잡하다. 그러나 진정어린 사과와 용서 그리고 화해하는 행동 만큼 인간관계를 개선하는 데 바람직한 방법도 없다.
미국의 출신의 인간관계 전문가인 해리엇 러너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데 효과적인 사과의 기술을 다양하게 제시했다. 저자는 심리상담의 사례를 바탕으로 진정성이 담긴 사과는 소원했던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핵심이라는 본질을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 가족, 친구, 회사 동료 등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면서 감정격돌의 경중과 시의성에 맞게 사과하는 법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사과를 하고도 관계가 소원해지는 경우를 사전에 막는 법, 오래된 앙금을 해소하는 단초가 되는 사과법 등 상황에 맞는 적합한 사과의 기술을 알려준다. 특히 지나치게 사과를 남발하는 사례는 여성이 많은데, 상대의 정서에 의존적으로 교육을 받아 자존감이 낮은 경우라고 분석한다. 저자는 여기에 적절한 대처법도 알려준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그동안 어떤 사과의 기술을 구사해왔나’ ‘혹시 진정성 없는 나의 사과로 상처를 받고 멀어진 사람은 없나’를 돌아보게 한다. 부부, 형제, 부모 등 가장 편안하고 친한 관계일수록 사과의 기법은 다채롭고 진정성이 담겨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저자는 말하고 있다.
사족 하나. 한국의 사례 한가지가 눈길을 끈다. 자신의 조카에게 들은 사례 하나로 한국의 문화를 일반화하기 어렵다고 전제한 저자는 사적인 인간관계에서 사과가 인색한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의문을 제기했다. ‘미안하다’는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상대가 알 것이라고 믿는 가족 간의 소통 부재 혹은, ‘이게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일이야’라는 일방적인 부모의 강압적인 제재가 자식과 부모의 거리를 멀어지게 만드는 요인은 아닌지 되물어보게 한다. 게다가 사과를 하는 순간 패배자가 된다는 지나친 경쟁 인식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사과란 공식적으로만 하면 된다고 교육을 하게 된다면, 가장 친한 가족과 이웃 간의 관계에서 큰 상처를 주고 받을 수 밖에 없지 않을까 한다. 가장 친한 사이가 가장 멀어질 수 있다는 점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장선화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