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부터 ‘원라인’까지, 강렬했던 악역을 연기했던 박병은을 기억한다면 ‘귀엽다’라는 말은 어쩌면 낯설 수 있는 수식어일 수 있지만 tvN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서’ 속 마상구로 분한 박병은을 본다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식어이기도 했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집 있는 달팽이가 세상 제일 부러운 ‘홈리스’ 윤지호(정소민 분)와 현관만 내 집인 ‘하우스푸어’ 집주인 남세희(이민기 분)가 한 집에 살면서 펼쳐지는 과정을 그리면서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박병은이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서 연기한 마상구는 어딘지 모르게 허당기가 엿보이는 매력부터 극중 우수지(이솜 분)의 마음을 사로잡는 부드러우면서 자상한 반전매력까지 선보이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마상구를 연기하면서 ‘마블리 마대표’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귀여워진 박병은은 실제로도 유쾌하면서도 흥이 많고 실제로도 극중 마상구가 보여주었던 ‘귀여움’을 가지고 있는 배우였다. 덕분에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웃음이 떠날 새가 없었다.
Q. ‘이번 생은 처음이라’ 촬영을 하면서 마음이 많이 편해진 것 같다. 얼굴이 무척 좋아졌다.
‘이번 생은 처음이야’ 촬영을 하면서 처음으로 ‘연기하는 것이 자유롭다’ ‘편하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배우로서 연기를 잘 해야겠다는 부담이 늘 있었다. 그런데 일단 ‘이번 생은 처음이라’의 현장분위기가 정말 좋았고, 함께 연기했던 배우는 물론이고 박준화 PD님과 스태프들 너나 할 것 없이 정말 친하게 지냈다. 좋은 분위기 속에서 연기를 하면서 깨달은 것이 ‘나도 릴렉스하게 연기를 할 수 있구나’였다. 그리고 더 좋은 것은 이러한 감정을 또 다른 현장에서 다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제 인생에 있어 정말 큰 깨달음이자 얻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생은 처음이라’를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Q.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 대해 ‘큰 얻음’이라고 말했다. 이를 ‘연기의 터닝포인트’가 됐다고 봐도 무방한 것인가.
20~30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이 정도 연기를 했으니 잘 안다’라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번 생은 처음이라’를 하면서 스스로의 부족함을 알게 됐다. 제가 현재 영화 ‘안시성’ 촬영 중에 있는데, 요즘 많이 느끼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카메라 앞에서 더 자유로워졌다는 것이다. 저는 지금까지 제가 카메라를 잘 알고, 자신의 연기를 잘 아는 배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번 생은 처음이라’를 촬영한 이후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의식하는 나를 알게 된 것이다. 이를 알게 된 것 만으로도 이번 드라마에서 배운 점이 크다. 덕분에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것이 더 편해지고 자유로워졌다.
Q. ‘이번 생은 처음이라’의 현장이 정말 좋았나보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재미있게 작업을 했다. 이전까지 제가 주로 맡았던 역들이 어둡고 강렬한 악역이지 않았느냐. 하지만 마상구는 아니었다. 마상구를 연기하면서 밝고 쾌활하고 장난스러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고, 보여주지 못했던 면들을 카메라 앞에서 다 쏟아내다 보니 개인적으로 시원한 것이 많았다. 그리고 사실 그게 진짜 제 모습과 가깝다.(웃음) 좋은 것이 많다 보니‘끝남이 마냥 섭섭하더라. 보통 한 작품이 끝나면 시원섭섭하다고 하지 않는가. 보통은 섭섭한 것보다 시원한 것이 많았는데 이 작품은 거꾸로 섭섭함이 크다.
Q. 박병은이 보는 ‘마상구’는 어떤 인물이었나.
극중 마상구는 성공한 회사의 대표이자, 마초남이지 않았는가. 여자를 잘 알고 연애를 아주 많이 하고, 여자들을 속속들이 아는 것처럼 행동하고 말을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사실 그런 사람들이 순수하고 허당기도 있다. 원석(김민석 분)이에게 빗나가는 조언을 하는 것만 봐도 잘 드러나지 않았는가.(웃음) 다른 사람들처럼 저도 마상구가 귀여웠다. 기본적으로 나이가 있어도 순수하고 귀여운 사람이 있지 않은가. 마상구가 딱 그랬다. 대본으로 볼 때부터 귀여웠다. 만약 마상구가 귀엽지 않으면 이질감이 들 것 같다고 생각을 했고, 그렇기 때문에 ‘귀엽다’라는 감정을 계속 가지고 가기 위해 노력을 했다. 만약 제가 귀여워 보였다면, 귀여운 척을 한 것이 아닌 마상구를 표현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라고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웃음)
Q. ‘이번 생은 처음이라’를 통해 이솜과 러브라인을 그렸다. 호흡이 어땠는가.
정말 좋았다. 그리고 좋았던 것이 화면에 잘 나온 것 같다. 사실 처음 솜이가 낯을 가리는 성격이다. 대본리딩때나 회식을 할 때 솜이는 조용한 성격이었다. 그런 그녀가 카메라 앞에 서니 카리스마가 넘치는 우수지로 변신하는 것 아닌가. 자신 있게 자기 연기를 펼치는데, 거게 참 멋있어 보였다. 솜이는 정말 좋은 배우인 것 같다. 드라마가 처음이었는데도 영화와 다른 호흡을 가지고 연기를 잘 이끌고 나가더라. 그래서 좋은 배우라는 생각을 했다. 좋은 느낌을 받으니 저도 마음이 열렸고, 그래서 연기도, 마음도 잘 맞았던 것 같다
Q. ‘이번 생은 처음이라’촬영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는가.
우수지와 그녀의 어머니의 뒷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는 장면이 생각이 난다. 제가 연기를 하면서 그런 감정, 그런 연기, 그런 표정이 나올 줄 몰랐다. 그 장면이 나오기 전 마상구는 우수지의 메시지 내용을 우연히 보고 난 뒤 ‘혹시 다른 남자가 있는 거 아냐?’라고 의심하지 않았는가. 혹시 몰라 우수지를 따라 아파트 계단에 올라갔는데, 알고 보니 우수지의 엄마였다. 두 눈으로 절뚝거리는 배우와 솜이가 같이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는데, 이상한 감정이 치솟아 오르더라. 사실 내가 뭘 어떻게 연기를 했는지 기억이 안 났다. 최대한 감정을 자제했다. 방송을 통해 ‘내가 저런 표정을 했구나’ 싶었다. 그때 했던 감정 연기가 저에게 배우로서 짜릿했던 것 같다. 되게 솔직한 감정을 드러냈고, 그래서 기억에 많이 남는다.
Q. 마상구와 박병은 본인은 얼마나 비슷한가.
마상구처럼 돌려 이야기하지 않지만, 할 이야기를 하지만 상대방 기분 나쁘지 않게 하는 재주가 있다.(웃음) 유머와 개그도 좋아한다. 사람에 대한 연민, 그런 것들도 있다. 덕분에 다채로운 감정들이 뒤섞여 있었던 마상구를 잘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박병은이라는 배우가 조금 더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됐고, 한뼘 더 커진 것 같다.(웃음)
Q. ‘이번 생은 처음이라서’가 결혼적령기 남녀의 결혼관에 대해 다루지 않았는가. 실제 결혼관이 어떻게 되는가.
실제로 배우들끼리 그런(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왔다. 특히 결혼에 대해 가장 이야기를 많이 한 배우가 이민기였다. 아무래도 나이가 제일 비슷하지 않은가. 민기와 제가 내렸던 결론은 ‘너무 좋으면 결혼을 할 수 있지’였다. 대부분 20대인 다른 배우들과 달리 우리의 나이가 더 많지 않은가. 결혼은 현실적인 문제다. 저는 개인적으로 비혼주의자는 아니다. 결혼이 아무리 제도권에 있는 제도지만, 그 제도 안에서 행복할 수 있고 아이가 갖고 싶을 수 있을 것 같다. 결혼은 시작이지 종지부나 끝이 아니라고 본다.
Q. 2017년 여러 편의 영화와 드라마를 촬영을 하지 않았는가. 조금은 쉬고 싶을 법도 한데, 피곤하지 않은가.
일을 하지 않는 것에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 현장에서 좋은 사람들과 촬영을 하는 것이 도리어 스트레스가 해소에 도움이 된다.
Q. 말을 재미있게 잘 한다.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도 좋을 것 같다.
제가 캐릭터로 웃기고 싶은 거지 ‘박병은’ 자체가 나가서 재밌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조금 아닌 것 같다. 제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나 감정을 연기에 쏟기 에도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에너지 리스크를 줄이고 싶다. 즐거운 캐릭터를 해도 감정이 소비될 때가 있다보니, 제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압축해서 연기에 풀어야 하는데, 감정들이 다른 곳(예능프로르램)으로 새어나가면 ‘제대로 표현 못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 있다. 길게 말했지만 예능 보다는 연기에 집중하고 싶다.
Q. 2017년은 박병은에게 있어서 어떤 한해였는가.
알차게 보낸 한 해였다. 좋은 드라마도 두 편 했고, 영화도 찍으면서 저 개인적으로 바쁘고 가열 차게 보낸 것 같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를 통해 ‘주어진 작품에 최선을 다 하고 몰입해서 표현하면서 상대 배우와 잘 융합되면서 조합되는 게 좋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연말에 좋은 드라마를 선물로 받게 돼서,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Q. 새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 2018년도 계획은 없는가.
큰 계획은 없다. 굳이 이루고 싶은 것도 없다. 개인적인 바람은 제가 현장에서 작품에 최선 다 하고 좋은 작품 많이 했으면 좋겠고, 더 좋은 작품을 많이 연기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개인적인 소망이 있다면 남자들끼리의 끈끈한 우정을 그리는 연기를 해보고 싶고, 개인적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사랑도 해보고 싶다. 물론 작품으로서.(웃음)
/서경스타 금빛나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