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이나 이념을 초월해야 종교의 신비성이 생깁니다. 제가 조계종 종단개혁 당시 현재의 선거제도를 만들었는데 그 선거제도 때문에 불교가 송두리째 망해가고 있습니다. 종교는 수행집단이지 정치집단이 돼서는 안 됩니다.”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사진) 스님은 13일 서울 종로구 한 식당에서 진행한 취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로 생긴 분열을 화합으로 바꿔 대탕평 시대를 열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설정 스님은 “선거제도는 불교와 부처의 가르침에 위배된다”며 “적과 동지가 나뉘어 화합이 깨지고, 장로정신이 깨지며, 수행자 사이의 위계질서가 파괴되고, 사찰재물이 지나치게 소모되며, 무지막지한 권모술수와 모략중상이 판을 치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박근혜 전 대통령도 국민들의 직접 선거로 선출됐지만 파국을 맞지 않았나”라고 반문했다.
설정 스님은 선거제도의 대안으로 토론을 통한 만장일치제를 들었다. 설정 스님은 “정책이나 인물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논의와 토론이 있어야 한다는 것에는 백번 공감한다”면서도 “선거제도는 합의를 도출해내는 과정에서 패거리와 집권·비집권이 나뉘기 때문에 진 쪽에서도 ‘언젠가 집권해 복수하겠다’는 세속적인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어 종교의 의사결정체제로는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이런 갈등을 최소화하고 종단 내 화합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토론과 합의를 통한 만장일치제’라는 설명이다.
설정 스님은 “불교에서 수행자가 금기로 하는 ‘십중대계(十重大戒)’라는 열 가지 교리가 있는데 선거 과정에서 많은 수행자들이 여섯 번째 대계인 ‘사부대중의 허물을 말하지 마라’를 서슴지 않고 깨버린다”며 “이렇게 당선된다 한들 소임을 맡기도 전에 스스로 그 자격을 잃어버리는 셈”이라 비판했다.
설정 스님은 또 “수행자들을 위한 불교를 만들도록 힘쓰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이 자신을 이롭게 한다는 뜻인 ‘자리이타(自利利他)’를 강조했다. 자리이타는 ‘자기 자신을 단련해 자기수행에 증진한다’는 뜻인 자리와 ‘중생을 위해 모든 열정을 다한다’는 의미인 이타를 합한 말이다. 설정 스님은 “적어도 사찰의 행정은 수행을 근본으로 한 행정이 돼야 한다”며 “수행 없이 일만 하는 승려는 일꾼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설정 스님은 1942년 충남 예산에서 출생했으며 종단개혁 법제위원장, 중앙종회 의장, 수덕사 방장을 거쳐 지난 10월 12일 치러진 제35대 총무원장 선거에서 임기 4년의 총무원장에 당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