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대학 동창인 두 청년이 손잡고 독특한 의류 브랜드를 세상에 내놓았다. 외부 투자는 전혀 받지 않았고 직원도 단 둘뿐이었다. 의류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 업체인 세아상역에서 김민수 대표가, 한솔섬유에서 허웅수 대표가 해외영업 업무를 맡아온 경험이 사업 밑천의 전부였다. 김민수(33)·허웅수(33) 그래피커스 대표의 창업은 이렇게 시작됐다.
창업 직후 두 대표는 미국 워너브러더스에 사업 협력을 제안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워너브러더스 측에서 아무런 답이 없었지만 그들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끈질기게 접촉을 시도한 끝에 워너브러더스 한국 지사와의 미팅이 성사됐다.
미팅 후 워너브러더스의 캐릭터 사용에 대한 정식 라이선스를 따내고, 첫 상품인 ‘톰과 제리’ 티셔츠를 출시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해당 티셔츠가 히트 치면서 그래피커스의 인지도는 급속하게 올라갔다.
김 대표는 “우리와 협업해 의류를 만들어 팔면 워너브러더스 캐릭터 사업에도 힘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전달한 것이 성공의 비결이었다”며 “글로벌 시장에 통할 만한 의류 디자인과 판매 전략을 구체적으로 제시했기에 계약이 성사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허 대표도 “당시 육아 예능 방송에 노출된 미키마우스 캐릭터 상품이 인기를 끌었다”며 “톰과 제리 캐릭터로 그 이상의 이슈를 만들어보겠다고 워너브러더스를 설득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래피커스를 창업할 때부터 이들의 타깃은 글로벌 시장이었다. 밤낮 가리지 않고 해외 유명 길거리 패션 트렌드를 관찰하고, 분석하면서 전략을 짰다. 창업 전 각자 회사에서 쌓은 의류 수출 경험도 자연스럽게 사업에 녹아 들어갔다.
상품의 핵심은 의류에 담은 예술적 그래픽이다. 의류 디자인은 허 대표가, 그래픽은 권민아 씨를 비롯한 외부 아티스트들이 맡는 구조다. 권 씨는 세계적 뮤지션 퍼렐 윌리암스, 크리스 브라운 등과의 협업으로 유명한 비쥬얼 아티스트다. 김 대표는 “그래피커스 의류는 아티스트들에게 스케치북이나 마찬가지”라며 “큼지막한 로고나 단순한 문양 위주의 브랜드에 비해 분명한 차별점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온라인 쇼핑몰과 해외 바이어 등을 통해 세계 곳곳에서 고객들의 호평이 전해졌다. 지난 3년간 7개국의 10개 편집샵에 입점했고, 올해 매출은 20억원을 기록했다. 해외 비중은 70%에 달한다.
특히 프랑스 파리의 명소 편집샵 ‘콜레트(Colette)’에 입점했을 때는 바이어들이 오히려 깜짝 놀라며 그래피커스의 디자인 실력을 인정했을 정도다. 홍콩 편집샵 ‘아이티(I.T)’는 그래피커스에 추가 문의를 넣어 맨투맨 티셔츠 재고를 싹쓸이하곤 한다. 온라인에서는 글로벌 전자상거래 플랫폼 카페24를 통해 구축한 쇼핑몰이 고객과의 접점으로 자리 잡았다. 내년 승부처는 길거리 패션의 본고장인 미국이다. 아티스트들의 감성을 살려 K패션의 다양한 스타일 의류로 표현하겠다는 포부다.
기업간거래(B2B) 패션 사업 컨설팅도 사업의 큰 축으로 자리잡았다. 캐릭터나 콘텐츠를 보유했으나 패션에 문외한인 기업을 대상으로 컨설팅을 제공한다. 애니메이션 기업 ‘투바앤’이 자사 캐릭터 ‘라바’를 넣어 의류를 제작할 때 두 대표의 컨설팅을 받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두 대표는 “함께 일해보고 싶은 아티스트와 콘텐츠 기업 등이 아직도 무수히 많다”며 “글로벌 유수의 패션 브랜드들과 경쟁하는 한국산 강자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