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국회 '이익집단 눈치보기' 벗어나 법안 만들땐 국민 권익부터 따져야

법조인·의사·약사 등 대거 포진

세무사법 개정안 10년만에 통과

"전문직, 직업 소명 고민도 필요"

1815A02 생존권_c


“세무사법 일부 개정법률안 대안에 대한 수정안이 가결됐음을 선포합니다.”

지난 8일 변호사가 되면 자동으로 세무사 자격을 갖는 조항을 삭제한 세무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지리멸렬한 공방이 이어진 지 10여년 만이다. 세무사법 개정안과 같은 내용을 담은 법안은 16대 국회였던 지난 2003년 이후 매번 발의됐다. 하지만 그때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관문을 넘지 못했다. 변호사·검사 출신 의원이 대거 포진한 법사위가 개정안을 탐탁지 않게 여겼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주를 이룬다.

이번에도 개정안은 ‘법사위 장벽’을 뛰어넘지 못할 뻔했다. 해당 안건에 대해 법사위에서는 지난 2월 단 한 차례 심의한 뒤 아무런 결론을 내지 않아서다. 급기야 ‘국회선진화법’이 등장했다. 법사위가 120일 내 심사를 마치지 않으면 국회의장이 원내대표와 합의해 본회의로 법안을 올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세무사법 개정안을 직접 상정시켰고 해당 법은 통과됐다. 국회 방어막에 안주하던 변호사들이 거리로 나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다수 약자의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상황에서 변호사들의 철통 같은 방어선이 무너지자 의사와 약사도 위기감을 갖게 됐다.


직능 간 갈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직능단체는 회원이나 동종 업계 종사자들의 이익을 내세우고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해묵은 공방에 그 피해를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아야 했다. 특히 국민 정서와 합의를 거쳐 국회로 넘어간 사안이 종종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도돌이표’로 머물기도 했다. 정치권이 마르고 닳도록 ‘국민’을 외치지만 정작 국회 안에서는 ‘민의의 정치’가 아닌 이익 집단의 눈치를 보는 모습이 종종 빚어졌던 것이다.

관련기사



국회에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대변하기 위해 각종 직능대표들이 관련 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법사위에는 변호사·검사 등 법조인 출신이 다수를 자리한다. 실제로 현재 17명의 법사위원 중 12명이 법조인 출신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법조인의 이해관계와 충돌하는 법안이 법사위 문턱을 넘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세무사에 앞서 변리사도 변호사의 자동 자격 조항을 삭제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번번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현재 변호사만 할 수 있는 특허침해소송을 변리사도 대리하도록 하는 변리사법 개정안이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이 밖에도 노무사, 공인중개사 등 변호사와 ‘영토전쟁’을 벌이는 분야도 많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교수는 “모든 법안들이 법사위를 거쳐야만 하는 입법 환경에서 이해단체의 눈치를 보고 ‘그들만의 리그’에 안주하지 않도록 국회는 ‘국민’을 우선에 둔 법안 만들기에 골몰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의사·약사·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로서의 직업적 ‘소명’에 대해 고민해봐야 할 때라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의 거리 행진은 국가나 국민의 이익에 부합할 때만 절대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만큼 자신의 밥그릇에 더 많은 밥을 담을 생각으로 거리로 나서기보다는 직업에 대한 고민과 소명의식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민정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