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대학-기업 일자리동맹, 유럽서 길 찾다] 채용경쟁률 300대 1 자랑하는 초콜릿 제조기업 '마너'

<4> 대기업 취업 쏠림 없는 오스트리아

직원 생활자금 무상지원 '마너기금' 조성 등 신뢰 구축

노동시간 저축제·육아휴직 2년 보장 등 복지도 돋보여

오스트리아 中企, 다양한 형태 근무방식 개발 등 노력

경제활동 인구 비중 70% 차지...실업률 낮추는데 한몫

오스트리아 빈 와트가세 트램정류장에 내린 후 3분 정도 걸어 윌헬미넨 골목으로 들어가자 초콜릿 제조기업 ‘마너(manner)’의 공장과 기기들이 눈에 띈다./빈=백주연 기자오스트리아 빈 와트가세 트램정류장에 내린 후 3분 정도 걸어 윌헬미넨 골목으로 들어가자 초콜릿 제조기업 ‘마너(manner)’의 공장과 기기들이 눈에 띈다./빈=백주연 기자




오스트리아 빈의 중심가인 시청 근처 슈타디옹가쎄 정류장에서 트램을 타고 서쪽으로 15분쯤 이동하니 진한 초콜릿 향이 코를 찔렀다. 곧 초콜릿 제조기업 ‘마너(manner)’의 본사에 도착한다는 신호였다.


마너의 초콜릿은 유럽에서 핼로윈 데이와 크리스마스 시즌의 필수품으로 통한다. 유럽 내 제과업계에서 독보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마너는 단일 품목으로 초콜릿 과자만을 팔아 매년 약 2억 유로(약 2,600억원)의 매출을 올린다. 직원 수는 720명에 달한다. 안정적인 매출과 높은 인지도뿐만 아니라 가족적인 기업 문화로도 유명한 마너에는 유럽 전역으로부터 우수한 인재들이 몰려든다. 올 초 실시한 신입사원 채용 경쟁률이 300대1을 기록했을 정도다.

에바 힙핑거(오른쪽) 인사총괄과 카린 슈타인하르트 마케팅팀장이 본사 1층 회의실에서 가족 같은 기업문화와 노동시간저축제, 직원휴게실 등 마너의 노동친화적 기업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빈=백주연 기자에바 힙핑거(오른쪽) 인사총괄과 카린 슈타인하르트 마케팅팀장이 본사 1층 회의실에서 가족 같은 기업문화와 노동시간저축제, 직원휴게실 등 마너의 노동친화적 기업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빈=백주연 기자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국내 기업과 달리 사람이 몰려와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이 회사의 비결은 무엇일까. 지난 15일(현지시간) 마너 본사에서 만난 에바 힙핑거(50) 인사총괄은 “직원들과 회사는 운명공동체라는 창업주의 철학이 마너의 기업문화를 만들었고 덕분에 청년들의 입사 지원이 높은 편”이라며 “직원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보장하는 마너 기금(manner fund)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지난 15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의 마너 본사에서 만난 직원들이 회사의 다양한 복지제도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빈=백주연기자지난 15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의 마너 본사에서 만난 직원들이 회사의 다양한 복지제도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빈=백주연기자


마너 기금은 1년에 5,000유로(약 642만원) 한도 내에서 직원들이 신청하면 무상으로 지원금을 제공하는 기금이다. 힙핑거 인사총괄은 “갑자기 이혼을 하면서 생활이 어려워지거나 개인 사정으로 집세를 지불하지 못하는 경우 등 문제가 생긴 직원을 돕기 위한 목적”이라며 “큰 금액은 아니지만 회사가 직원의 상황을 모른척하지 않고 가족처럼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깊은 신뢰 관계가 쌓인다”고 말했다. 회사의 작은 배려는 직원들의 애사심으로 이어진다. 현재 마너에는 근속연수 20년 이상인 직원의 비율이 30%에 달하고 이 가운데 4명은 40년 넘게 근무하고 있다.




성공적으로 안착한 ‘노동시간저축제도’ 역시 이 회사가 자랑하는 복지제도다. 이는 근로자가 회사와 계약한 근로 시간을 초과해 일한 만큼 자신의 계좌에 저축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쓰는 제도다. 가령 일주일 38.5시간의 정규 근무시간 외에 하루에 10시간씩 주 50시간을 일했다면 초과된 근무시간인 12.5시간을 나중에 휴가를 쓰거나 현재의 근로 시간을 단축하는 등 원하는 대로 쓸 수 있다. 독일에서는 전체 기업의 44%가 이 제도를 적용하고 있으며, 오스트리아 산업계에도 점차 확산되는 추세다. 카린 슈타인하르트(38) 마너 마케팅팀장은 “올해 매주 7~8시간씩 초과 근무해 모아놓은 시간으로 내년 초에 2주간 3살 짜리 아들과 프랑스로 여행 갈 계획”이라며 미소 지었다.

관련기사



힙핑거 인사총괄은 “어쩔 수 없이 추가 근무를 하게 돼도 나중에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인식 덕분에 직원들은 초과 시간조차 기분 좋게 일한다”며 “회사 역시 경기 변동에 따라 생산성을 줄이거나 늘리는 등 유연성이 확보돼 양측이 윈윈할 수 있는 제도”라고 소개했다.

카린 슈타인하르트 마케팅팀장이 피라미드를 가리키며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를 설명하고 있다. 앞면에 쓰인 ‘externe orientierung’은 외부에 종속된다는 뜻으로 고객의 니즈(needs) 충족을 뜻한다. 왼쪽 옆면에 쓰인 ‘verantwortung’은 사회적 책임을 의미한다./빈=백주연 기자카린 슈타인하르트 마케팅팀장이 피라미드를 가리키며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를 설명하고 있다. 앞면에 쓰인 ‘externe orientierung’은 외부에 종속된다는 뜻으로 고객의 니즈(needs) 충족을 뜻한다. 왼쪽 옆면에 쓰인 ‘verantwortung’은 사회적 책임을 의미한다./빈=백주연 기자


육아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것도 마너의 강점이다. 오스트리아 법에 따라 마너는 2년간의 육아휴직을 사규로도 보장한다. 이에 더해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원하는 직원은 누구든지 파트타임으로 근무할 수 있다. 아이를 키우는 직원들을 배려한 마너의 이 같은 정책은 정부가 법에 규정하기도 전인 1970년대부터 시행됐다. 당장 생산량을 줄이더라도 직원과 함께 가는 방향이 옳다는 경영진의 확신 덕분이다. 슈타인하르트 팀장은 회사 한쪽 켠에 비치된 피라미드를 가리키며 “초콜릿의 주 고객층이 어린이들인 만큼 회사에서 육아를 지원해야 한다는 사회적 책임(verantwortung)에 대한 인식이 깔려 있다”며 “눈앞의 이익에 급급했다면 지금의 마너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경영진의 확고한 신념”이라고 강조했다.

힙핑거 총괄이 본사 5층에 마련된 직원 휴게공간을 소개하고 있다. 마너의 직원들은 이곳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거나 쉴 수 있다. 커피와 쿠키, 샌드위치, 요거트 등이 제공된다./빈=백주연 기자힙핑거 총괄이 본사 5층에 마련된 직원 휴게공간을 소개하고 있다. 마너의 직원들은 이곳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거나 쉴 수 있다. 커피와 쿠키, 샌드위치, 요거트 등이 제공된다./빈=백주연 기자


오스트리아에는 마너와 같은 강소기업이 갈수록 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중소기업을 선택하는 청년 역시 증가하는 추세다. 오스트리아 중소기업연구소에 따르면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약 70%(2017년 기준)가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며, 직원들의 만족도 역시 85%로 높은 편이다.

현지에서 만난 중소기업 전문가들은 “오스트리아의 실업률이 5~6%대로 낮은 것은 정부의 정책을 비롯해 중소기업들의 자구 노력이 더해진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기업 차원에서 다양한 형태의 근무 방식을 개발하는 등 직원의 입장을 배려하는 문화가 기업과 근로자가 윈윈(win-win)할 수 있는 근간이 됐다는 설명이다. 카우프만 피터 오스트리아 중소기업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탄력근무제와 노동시간저축제 시행 등 오스트리아 중소기업들이 직원 친화적으로 바뀌면서 실업률도 감소하는 추세”라며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기업과 직원, 정부가 힘을 모아 우리 사회에 적합한 경제모델을 만들 때 실업이나 구인난 등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빈=백주연기자 nice89@sedaily.com

백주연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