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토요워치] 누굴 믿고 기부하나...기부금 상승률 1년새 7분의 1토막

가짜 기부금 영수증 끊어주고 수수료 챙겨

인증받은 공익법인도 속으론 문제투성이

어금니아빠 등 기부 스캔들에 민심 등돌려

투명성 높이고 의무 지출제도 강화해야

# “월세를 한 번밖에 안 내서 쫓겨났어요. 그 사람들 사기꾼이에요.”

한때 회원만 20만명에 달하며 스포츠공익재단으로 유명세를 떨쳤던 한국호돌이문화재단. 지난 2011년 7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 응원단까지 파견할 정도로 세를 키웠지만 국세청이 지난해 말 불성실 공익법인으로 공개했다. 11억원의 기부금에 대해 불법 영수증을 끊어줬다가 적발된데다 2년 전에는 대표가 사기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공익재단이라 2년 전 시세의 절반 수준으로 건물에 들어왔지만 1년 넘게 월세를 내지 않아 사무실에서 쫓겨났다. 같은 건물 입주자는 “호돌이재단 사람을 본 적이 없다”면서 “건물 주인만 2,000만원 넘게 손해를 봤다”고 전했다.




2315A02 국세청이 공개한 불성실 기부 공익법인



지난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공익법인에 대한 신뢰를 뿌리째 뒤흔들었다. 올해는 딸을 이용해 11억원의 후원금을 횡령한 ‘어금니 아빠’, 128억원의 기부금으로 요트 파티를 벌인 ‘새희망씨앗’ 사건 등이 ‘착한 마음’을 나쁜 결과로 만들었다. 연이은 기부 스캔들은 기부자의 마음을 얼려버렸다. 공익법인 평가단체 한국가이드스타에 따르면 2017년 상반기 기준 국세청 공시 대상 공익법인의 평균 기부금 상승률은 1%로 불과 1년 만에 7분의1로 쪼그라들었다. 나눔의 미덕이 줄었다고 세태만 탓할 일은 아니다. 기부자가 요구하는 투명성의 잣대는 높아졌지만 대형 공익법인마저 투명성과는 여전히 담을 쌓고 있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특히 공익법인의 하나인 사회복지법인은 기부금 의존도가 높아 회계 투명성이 강조된다. 그러나 국세청 공익법인 공시를 보면 2016년 말 기준 자산 100억원 이상 사회복지법인 중 회계감사를 받은 곳은 59%에 불과하다. 41%는 아예 회계감사를 받지 않거나 내용을 자의적으로 바꾸고 주석 등을 생략하는 등 불성실한 감사자료를 냈다. 정부가 100억원 이상 공익법인은 외부 회계감사를 받도록 법으로 의무화했지만 제재 규정이 미약하고 공익법인의 회계지침도 최근에야 마련하기 시작하며 공익법인의 회계 투명성은 찾기 힘들다.

지난해 기업으로부터 1,487억원의 기부금을 받은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은 기부금 총수입과 월별 기부금 수입합계가 일치하지 않았다. 삼성그룹 계열사를 중심으로 기업 기부금만 1,154억원을 모은 삼성생명공익재단은 외부 회계감사자료 전문을 국세청 공시자료에 아예 첨부하지도 않았다. 공익법인도 민간 기업처럼 회계장부를 공개해야 하지만 삼성조차 이를 지키지 않은 셈이다.


종교단체의 가짜 기부금 영수증 발급은 흔한 일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올해 불성실 기부금 단체는 55개로 이 중 84%인 46개가 종교단체였다. 나머지는 사회복지단체와 호돌이문화재단 같은 문화단체다. 불성실 종교단체 중에는 이름만 조계종 산하 사찰로 소개될 뿐 실제로는 점집을 운영하며 가짜로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해주고 2~3%의 수수료를 받아 챙긴 사례가 가장 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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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을 줬던 ‘새희망씨앗’은 작정하고 기부금을 유용하기 위해 콜센터까지 운영하기도 했다. 국내 공익법인은 모금과정을 쉬쉬하기 때문에 대부분 자원봉사자가 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용역업체에 돈을 주고 맡긴다. 기부 천국으로 불리는 미국은 모금에 대해 엄격한 규정을 적용한다. 모금은 등록된 전문업체에 맡겨야 하며 모금활동에 들어간 비용을 공개해야 한다. 미국은 기부금을 쌓는 것도 억제한다. 매년 기부금으로 구성된 투자자산의 5% 이상을 의무 지출해야 하고 이를 어긴 법인에는 최대 200%까지 벌금을 부과한다. 국내에도 의무지출 제도는 있지만 이를 어겼다고 받는 페널티는 없다.

투명하게 기부금이 집행된다고 인증받은 공익법인도 뚜껑을 열어보면 문제투성이다. 한국적십자사는 지난해 한국가이드스타가 국세청에 제출한 결산자료를 토대로 가장 투명한 공익법인에 주는 ‘크라운’ 등급을 받았다. 그러나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의 특별감사 결과 2016년 10월 말까지 기부금 집행이 54%로 저조했다. 그해 10월 태풍 차바로 특별재난지역이 된 울산에 대한 집행실적이 38%에 그쳤다. 매년 320억~360억원에 이르던 적십자의 수입이 2016년 291억원으로 급감하면서 기부금 지출에 소극적으로 돌아섰다는 지적이 나왔다. 적십자 측은 기부의 특성상 연말에 기부금이 몰려서 들어오면서 집행은 연말과 다음 해 연초에 집중되며, 실제 울산을 포함한 전국에서 연말까지 기부금 지출을 80~90%까지 높였다고 해명했다. 한국가이드스타 관계자는 “크라운 등급은 2015년 자료를 기준으로 부여한 것”이라면서 “회계장부로는 다 드러나지 않는 문제점을 언론 모니터링 등을 통해 검증할 계획으로 올해 적십자사 등급은 다소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기부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결국 기부자 스스로 나서야 한다. 국세청 홈택스나 국세청이 인정한 검증기관인 한국가이드스타 홈페이지에서는 공익법인의 외부 회계감사 보고서나 국세청 결산자료를 공개하고 있다. 이 가운데 공익법인의 주 활동에 사용하는 고유목적사업비와 고유목적에 쓰기 위해 돈을 버는 행위인 수익사업비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재단법인 아름다운가게는 중고품을 팔아 환경을 지키고 수익금을 빈곤 구제 활동에 사용한다고 밝히고 있다. 2016년 기준 국세청 결산자료를 보면 수익사업으로 256억원을 벌었지만 비용으로 252억원이 지출됐다고 나와 있다. 아름다운 가게측은 비용 252억원 중 45억원은 아름다운도서관 등 국내외 나눔활동에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제외하더라도 수익금의 80%가 비용으로 나간 것이다.

서울의 한 교회는 수익사업으로 40억원의 자산을 갖고 있지만 고유목적사업(선교·교육·불우이웃돕기·장학사업 등)에 쓴 돈은 0원이라고 공시했다. 서울 서초동에 있는 한 대형 교회의 경우 기부활동을 벌이고 교인을 상대로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하지만 국세청 공시 대상 공익법인이 아니어서 일반인은 접근할 수 없다. 공익법인 희망브리지 관계자는 “최근에는 기부자들도 회계 투명성을 요구하는 등 똑똑해지고 있다”면서 “기부금의 적립과 사용에 대해 더 많이 밝힐수록 기부금도 늘어나기 때문에 공익법인들이 더욱 신경을 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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