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꿈에서 깨고 나니 지금은 한겨울이고, 라이더들은 어디론가 사라져서 봄을 기다리는 중이죠. 갑자기 그 흔한 풍경들이 너무도 그리워지는 겁니다. 아무리 달려도 춥지 않고, 바이크 배기음이 울리는 도로들, 방금 처음 봤지만 바이크 하나만으로도 말을 걸고 싶어지는 사람들.
어헝...ㅠㅠㅠ너무너무 그립습니다. 다들 잘 계신 거죠?
오늘은 올해의 마지막 라이딩 이야기입니다. 이미 한 달 전이건만 두유바이크 베트남편(1편 클릭)부터 쓴답시고 한참 늦어졌네요. 이 날의 초대 손님은 그동안 눈독 들였던 할리 883. 포티에잇은 잠깐 연수 겸 타 봤었고(클릭), 그 다음엔 배기량 1,700cc에 무게 300kg이나 나가는 다이나 로우라이더(시승기 클릭)도 즐겁게 탔었죠. 그런데 가장 노리고 있었던 할리 바이크는 883이었습니다. 그냥 이쁘고 맘에 들어서요. 인생 별 거 있나요.
그리하여 11월의 어느날, 할리 강남점에서 883을 데려옵니다. 잠시 안국동의 카페에 들러 멀찌감치 감상해 봅니다. 예쁘네요. 그거면 됐다, 흠흠.
강남에서 강북까지 잠시 달려본 결과 포지션이 생각과는 좀 다르다, 는 느낌이 가장 컸습니다. 팔은 많이 뻗고 다리는 많이 쪼그리게 되더군요. 아니면 제가 팔이 짧고 다리는 긴 것일까요? 제 울프 125하고도, 가와사키 W800과도 한참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주행 느낌은 한마디로 묵직합니다. 1단, 2단, 3단까지 올라가도 계속 묵직합니다…음?! 사실 다이나 로우라이더 같은 경우 3단 이상에선 덩치답잖게 놀랍도록 매끈한 주행감을 안겨줬는데 883은 또 다르더군요. 883이 덜 매력적이란 이야기는 아닙니다. 얄상하게 생긴 겉모습과 달리 역시 아메리칸의 감성이 가득합니다. 빠르게 치고 나가는 바이크를 원하신다면 다른 바이크를 알아보셔겠죠?
하지만 진중한 아메리칸 크루저의 느낌이 좋은데 좀 더 젊은 감각을 원한다 싶으면 883입니다. 좀 더 재력을 갖추셨다면 세컨드 바이크로 들이셔도 좋겠죠(부럽…). 참, 할리 치고 진동은 순한 편입니다.
이번 투어는 여의도에서 시작했습니다. 저는 본업이 증권부 기자고, 금융업계의 라이더 몇 분을 찾아내서 친해져 보려는 참이거든요. 나이대도 성향도 뭣도 다르고 알고 보면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지만(…) 라이더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의기투합해서 모였습니다.
그런데 걱정거리가 하나 있습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 겁니다. 이날 투어 전후로 가을 날씨가 영하의 겨울 날씨로 돌변했고 하필 전날 눈까지 내렸습니다. 일부 도로에 눈이 얼어 있을 가능성을 감안해 이날 투어도 목적지를 충주호에서 가까운 궁평항으로 바꾸긴 했습니다…만, 집에서 여의도까지 달리는 20분 동안 참 추웠습니다. 옷은 이것저것 마구 껴입어서 괜찮았는데 손이 너무나 시럽더군요. 두꺼운 장갑 안에 라텍스장갑까지 꼈는데도요.
그래도 전 아직 젊으니까 괜찮습니다. 오늘 일행들은 저보다 최소 열 살은 더 많으신 분들인데 제가 여기서 어떻게 엄살을 부립니까.
일행들의 바이크는 BWM 1200GS 두 대,
그리고 좀처럼 보기 힘든 인디언 한 대입니다. 모델명이 로드마스터였던 것 같은데, 어쨌든 무게가 400㎏이나 나가는 초헤비급 바이크입니다. 인디언 오너분도 아직 경력(?)이 길지 않으시다 보니 올해도 몇 번 제꿍하셨다고. 그런데 역시 한국인의 정이 끝내주는 게, 넘어졌을 때마다 누군가 나타나서 같이 일으켜 주셨다고 하더군요. 척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바이크를 같이 세워보겠단 마음이 쉽게 들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죠. 한쿡인들 아직은 훈훈한 부분이구요. 전 그동안 여자라서(부..불쌍해 보여서?) 다들 도와주는 건가…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출발! 해서 대부도 방향으로 일단 달립니다. 달리다가 깨달았습니다. 서울 시내에선 그래도 달릴 만 했었다는 걸요. 시화방조제 중간의 티라이트 휴게소까지 그렇게 멀게 느껴질 줄은 몰랐습니다. 춥고 시리다 못해 손이 따끔따끔하다가 다시 감각이 없어질 때쯤엔 머릿속으로 열심히 손가락 동상의 가능성과 향후 전망을 검토해봐야 했습니다. 동상 걸리면 타자 못 치겠지? 그럼 일도 못하는 것인가? 잘됐…?
인디언 오너분께서 저를 불쌍히 여기시어 티라이트 휴게소에서 면장갑을 하나 사주셨습니다. 그래서 라텍스-면장갑-바이크 장갑까지 세 겹이 되었습니다. 좀 더 나아지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손가락은 따끔따끔했습니다. 가장 연장자인 분께선 헬멧 벗을 때마다 눈물을 흘리시는 것 같기도 했어요. 정말이지 추웠습니다. 그래도 다른 분들은 열선 장갑, 열선 시트, 뭐 이런 것들을 갖추고 계셔서 저보다 훨씬 괜찮아 보였습니다.
티라이트를 지나 궁평항 도착. 점심은 새우구이입니다.
새우구이도 맛있었지만 밥 먹으면서 나누는 대화가 메인입니다. 이 분들과는 여의도에서 초큼 포멀한 복장으로 만나서 최근 금융투자 시장의 동향을 묻고 답하던 사이인데 이렇게 라이더 대 라이더로 만나보니 심히 편하고 즐겁습니다. 각자 바이크 입문한 썰, 용품 이야기, 좋은 투어 코스 등을 풀어놓습니다. 사회적 지위와 체면과 나이는 진작 잊었습니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가는 길. 역시 춥습니다. 여름에는 지옥같이 뜨겁던 엔진 쪽으로 손을 뻗어봐도 여전히 손이 시려워서 혼났습니다. 나중엔 손에 감각이 사라지면서 클러치&브레이크 레버 조작이 힘들어질 정도였으니까요.
그리하여 저는 라이더를 위한 방한 장비의 중요성을 다시금 되새기게 됩니다. 열선 장갑, 열선 조끼 이런 것들요. 시거잭만 꽂으면 따뜻하게 달릴 수 있다고 합니다.
가격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세일할 때를 노리시길 추천해 봅니다. 저는 열선 장갑이 한 50만~60만원 정도는 하는 줄 알았는데 세일하면 20만원대 정도더군요. 훨씬 저렴한 중국산도 많지만 아직까지 못 미덥다는 평가입니다.
스쿠터 라이더라면 이런 워머도 있습니다. 하체는 따뜻할 테고, 스크린까지 커다란 걸로 달면 상당히 괜찮을 것 같습니다. 스크린이 바람 막아주는 효과가 정말 엄청납니다.
좀 웃긴 버전들도 있긴 합니다.
핫팩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아랫배에 붙이면 어지간한 추위는 견딜 만합니다. 이 날도 몸통은 전혀 안 추웠으니까요.
이렇게 적어놓고 저는 정작 11월 접어들면 바이크 봉인해버리는 사람이라죠. 비 오거나 추우면 안 탄다는 게 제 신조…인데, 참 세상 일이 맘같지 않더군요. 추위와 싸우며 드디어 오후 다섯 시께 할리 강남점에 도착했습니다. 저번 베트남 투어도 그렇고, 올해는 투어 종료가 눈물나도록 반가운 날들이 많았네요.
시승 바이크 반납 후엔 지하철이 기다려주고 있습니다. 다소 뻘쭘한 복장이지만 저만 당당하면 됩니다. 그래서 지하철 타기 전에 백화점도 잠시 들러서 반찬거리도 사들고 가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자취인의 일상이란 훗.
그렇게 고양이들이 기다리는 따뜻한 집으로 무사히 귀환했습니다. 어찌나 행복하던지. 이 날을 마지막으로 다음 라이딩은 일러야 내년 3월 말쯤에나 개시하겠지만요. 라이딩은 못 해도, 두유바이크는 계속됩니다. 다음 회에서 다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