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이재용 부회장 항소심 결심] 이재용 "누구의 도움을 빌리려 하지도, 빌리지도 않았다"

JY "사흘만에 다시 만난 사람에

오랜만이라고 하나…내가 0차 독대

까먹었다면 치매" 조목조목 따져

변호인 "대통령 적극적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한 피해자일 뿐"

2815A06 이재용











이재용(위부터) 삼성전자 부회장, 최지성 전 삼성미래전략실장, 장충기 전 삼성미래전략실 차장이 27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이재용(위부터) 삼성전자 부회장, 최지성 전 삼성미래전략실장, 장충기 전 삼성미래전략실 차장이 27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1심 재판 때보다 수척해지고 피부색도 까맣게 변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외양은 올해 2월부터 10개월을 서울구치소에서 보낸 티가 역력했다. 뒷줄에 앉은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은 염색을 못해 머리가 하얗게 셌다. 하지만 긴장감은 상당히 줄었다. 1심에서 줄곧 경직된 채 앉아 있던 이 부회장은 27일 재판 직전 변호인단 사이를 오가며 활발히 대화를 나누고 변론을 준비했다.

서울고법 형사13부(정형식 부장판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이 부회장의 항소심 결심 공판을 이날 열었다. 박영수 특별검사가 징역 12년을 구형한 이 부회장은 최후진술을 통해 경영인으로서의 꿈을 밝히며 그 꿈을 이루는 과정에 청탁은 필요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재벌 3세로 태어났지만 실력과 노력으로 더 단단하고 강하고 가치 있게 삼성을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제 자신이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의 리더로 인정받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 부회장은 “이 꿈은 전적으로 제 자신에게 달려 있는 일이고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 할아버지가 도와줘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다른 누구의 도움을 빌리려 하지 않았고 빌리지도 않았다”고 이 부회장은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또 “이병철 손자나 이건희 아들이 아닌 선대 못지않은 기업인으로 인정받고 싶었다”며 “아버지(이건희 회장)처럼 셋째 아들도 아닌 외아들이고 다른 기업과 달리 후계자 자리를 놓고 경쟁하지도 않았다. 이런 제가 왜 뇌물을 주고 청탁을 하겠냐”고 반문했다.


그는 다만 “원해서 대통령과의 독대에 간 것이 아니고 오라고 해서 간 것뿐이지만 모든 법적 책임과 도덕적 비난은 제가 다 져야 엉클어진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할 것 같다”며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 등 구속 수감된 다른 피고인들에 대한 선처를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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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특검은 이 부회장이 당초 알려진 박 전 대통령과의 세 차례 독대 외에 이른바 ‘영(0)차 독대’를 했는지를 집중 추궁했다. 앞서 특검은 2심 진행 과정에서 “2014년 9월12일 추가 독대가 있었다”는 안봉근 전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의 증언을 확보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절대 없었다”고 답했다.

이 부회장은 오히려 카메라 같은 기억력을 들이대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안 전 비서관하고는 2014년 9월15일 1차 독대 때 만나 ‘오랜만에 뵌다’고 인사하고 박 전 대통령을 모시게 된 계기 등을 물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흘 전 청와대에서 독대하며 안 전 비서관과 만났다면 ‘요즘 자주 뵙는다’고 하지 생뚱맞게 ‘대통령 모신 지 오래됐느냐’고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1차 독대 당시 처음 대통령과 일대일로 보는 거라 약간 긴장감을 느낀 게 사실”이라며 “이걸로 거짓말할 필요도 없고 그걸 기억 못 하면 내가 치매”라고 거듭 강조했다.

특검은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가 9월29일 박 전 대통령 재판에서 터뜨린 깜짝 증언도 내세웠다. 증언에 따르면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은 2015년 12월께 박 전 전무에게 “(삼성의 승마 지원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 대통령은 탄핵감”이라며 “입조심하고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 전 사장은 이에 대해 “삼성전자 임원이 현직 대통령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도대체 말이 안 된다. 비즈니스맨이 조폭도 아니고 그런 언사를 쓰겠느냐”면서 완강히 부인했다.

특검은 9월28일 항소심 첫 공판준비 기일부터 결심에 이르기까지 이 부회장의 구체적인 청탁 사실 입증에 매달려왔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는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세 차례 독대에서 승계를 포함한 구체적인 현안을 논의하지는 않았지만 ‘묵시적 청탁’을 했다”며 89억원대의 뇌물공여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묵시적 청탁은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공모 관계, 박 전 대통령의 삼성 승계 사전 인식 등 여러 전제가 모두 성립해야 인정될 수 있는 아슬아슬한 논리다. 특검 관계자는 “1심에서 실형 선고를 이끌어냈지만 불안한 것은 사실”이라며 “2심 판결문에 ‘구체적 현안 청탁을 했음이 인정된다’는 내용이 담기는 게 우리 목표”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이번 구형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특검이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은 형량을 구형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던 만큼 어느 정도 예상은 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특검이 왜곡된 시각과 잣대로 사안을 재단하고 있다는 불만이 감지된다. 특히 이 부회장이 2014년 9월 박 전 대통령과의 독대가 없었음을 소명했음에도 특검은 마이동풍이었다는 것이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특검이 삼성 평택공장에 대한 15조원 투자와 관련해서도 정권의 특혜 운운하는 것을 보고 너무 나간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이 부회장의 변호대로 지역 고용창출 등을 고려하면 기업이 청탁하는 게 아니라 받을 입장 아니냐”고 꼬집었다.

이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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