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진은숙(57·사진)이 상임 작곡가로 12년 동안 몸담았던 서울시립교향악단을 떠난다. 지난 2015년 정명훈 전 서울시향 예술감독 사퇴에 이어 진은숙 작곡가마저 서울시향을 떠나게 되면서 당분간 시향은 리더십 공백을 피하기 힘들게 됐다.
진은숙은 2일 오전 서울시향 단원들에게 보낸 e메일을 통해 “2006년부터 몸담았던 시향을 떠나게 됐다”며 “여러분께 제때에 소식을 알려드리고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이 예의인 줄은 알지만 여러 가지 사정상 작년 11월 ‘아르스노바’(서울시향의 현대음악 정기공연)와 베를린 필 내한 공연 때 서울을 방문한 것이 마지막이 돼버렸다”고 밝혔다. 이어 “가르쳐왔던 마스터 클래스의 학생들이 눈에 밟힌다”며 “그들에게도 지난 수업이 저와 만나는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알리지 못한 게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진은숙은 당분간 해외에서 창작 활동에 몰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는 “1985년에 유학길에 올라 2006년 다시 한국에서 활동하기까지 2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며 “서울시향을 떠남으로써 국내 활동을 접으면 언제 다시 돌아갈지 알 수 없지만 조속한 시일 내 한국음악계를 위해 일할 수 있게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진은숙의 이 같은 갑작스러운 결정에 대해 공연계 안팎에서는 여러 가지 추측이 흘러 나온다. 공연계의 한 관계자는 “서울시의회는 이전부터 진 작곡가 한 명이 시향의 상임 작곡가로 오랜 기간 활동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해 왔다”라며 “진 작곡가가 2016~2017년 공연기획자문역까지 도맡으면서 시의회의 압박 수위가 더욱 높아지자 작곡가 스스로 부담을 느끼고 시향을 떠나기로 결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지난 2016년 서울시향에 대한 행정 사무감사를 통해 “세계 유수 오케스트라에서 상임작곡가가 보통 3년을 임명받는 것에 비해 진은숙 작곡가는 서울시향에서 엄청난 보수를 지급 받으며 10년 동안 연임되는 특혜를 받고 있다. 서울시향의 방만한 경영과 원칙 없는 규정 적용이 도를 넘어선 상황”이라며 서울시에 특별감사를 요청했다. 이에 서울시는 지난해 2월부터 특별감사에 착수하는 등 진통이 이어졌다. 진은숙은 지난 2004년 음악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그라베마이어상을 받았다. 그 이후로도 살아 있는 작곡가에게 주어지는 최고 권위의 상인 쉰베르크상(2005년), 모나코 피에르 대공 작곡상(2011년)을 잇따라 거머쥐며 현대음악계를 주도하는 예술가로 자리매김했다. 2006년부터는 서울시향의 상임작곡가를 지내며 ‘새로운 예술’을 뜻하는 현대음악 시리즈 ‘아르스노바’로 국내에 동시대 클래식 음악의 경향을 소개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