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산업 수출은 늘어나는 반면 방산업체의 전망은 어두운 엇박자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방위사업청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방산 수출액은 31억9,000만달러(약 3조4,000억원). 지난 2014년 기록한 사상최고치(36억1,000만달러)보다는 적지만 전년 대비로는 25%나 늘어났다. 문재인 대통령의 관심도 각별하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성남에서 열린 국제무기박람회(ADEX)를 찾아 “방산을 수출형 글로벌 산업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관심을 표명한 후 국방부와 방사청은 수출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방사청이 수출실적을 다시 공개하기로 방침을 바꾼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문제는 기대와 달리 전망이 밝지 않다는 점이다. 수출이 되려면 우선 국내에서 인정받고 최소한의 내수를 확보해야 하는데 국산무기는 내수시장에서 홀대받는 형편이다. 기본적으로 방산물자의 국내 조달이 원칙이며 법 제도까지 마련해놓았지만 구조적으로 국내 물량을 따내기도 어려운 처지다. 군의 기본 수요가 거의 충족돼 대량 주문이 끊기는 수요절벽에 봉착하는 날도 머지않았다. 대안을 찾지 않는 한 연간 12조원 규모의 방위력 개선비가 외국산 장비 구입에 대거 투입될 가능성도 높다. 결국 국내 방산업체는 수요를 잃어버린 채 들러리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세계에서 자주포를 가장 많이 생산한 회사는=질문 하나. 최근 4반세기 동안 세계에서 자주포를 가장 많이 생산한 회사는 어디일까. 답은 한화지상방산이다. 삼성그룹 소속이던 1987년 미국의 M-109A2 자주포를 K-55라는 한국 제식명으로 면허 생산한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육군(해병대 보유분 포함)에 납품한 자주포만도 2,176문. 여기에 탄약운반 차량과 지휘소 차량 등 파생형까지 합치면 수출물량을 빼고도 누적생산량이 2,450여량에 이른다.
한화지상방산의 이 기록은 독보적이다. 같은 기간 이만한 물량을 신규 생산한 회사가 없다. 다른 나라들의 자주포 생산은 이 기간 중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옛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사회주의가 무너지며 동서 긴장의 강도가 약해져 각국이 전력감축에 나섰기 때문이다. 한국 육군의 자주포 세력이 세계 1위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세계적인 감군 추세에서도 적극적으로 포병전력을 강화했으니까. 서방 진영에서는 구경 155㎜, 옛동구권에서는 구경 152㎜급 이상의 대구경 자주포를 기준으로 삼으면 한국은 세계 1위 자주포 운용 국가다.
◇지금은 좋지만…=한화지상방산의 경우 당장의 경영여건은 좋은 편이다. 11차 양산물량이 연말까지 남아 있고 수출도 활발하다. 특히 핀란드와 노르웨이에서 연달아 차기 주력 자주포로 선정된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한 성과다. 국민 1인당 평균소득이 가장 높은 지역인 북유럽에서도 통하는 장비라는 실적은 향후 세일즈에서도 뒷배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양산작업이 종료되는 올해 말 이후 상황은 전망하기가 쉽지 않다. 지금까지 K-9 구매국들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던 ‘아직도 생산라인이 살아 있는 자주포’라는 메리트를 대신할 마케팅 포인트는 찾기가 쉽지 않다. 내수 기반 없는 수출은 힘들다는 얘기다.
◇수요절벽·종산(終産) 단계 눈앞=현대로템 역시 지난 30년간 전차를 가장 많이 제작한 회사 중 하나로 손꼽힌다. 1986년 미국 크라이슬러사의 설계와 기술 판매로 ‘88전차’라는 이름의 K-1 전차를 생산한 뒤 지금까지 내놓은 K-1, K-1A1, K-2 전차는 모두 1,618량. 파생전차인 구난전차와 교량전차까지 합치면 총 생산량은 1,831량에 이른다. 3차 양산분까지 예정된 200대를 더 생산하고 나면 신규 전차 주문은 없다는 얘기다. 터키에 K-2 전차 기술을 수출하던 당시도 한국군의 주력 전차로 채택될 것이라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국내 수요 없는 수출은 ‘신기루’=한국산 무기에 대한 다른 나라들의 인식이 높지 못한 상태에서 그나마 군의 수요가 끊기면 방산업체의 영업환경은 급격히 나빠질 수 있다. 병사들이 사용하는 소총을 제작하는 S&T모티브는 최근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군 특수부대에 외국산 소총이 채택될 것이라는 소식의 진위를 묻는 해외 바이어들이 많아졌다. 바이어들이 한국군에 대한 납품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수리 부속 또는 후속지원의 가격이 비싸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갈수록 심해지는 외산 선호=방위산업체들의 딱한 사정과 반대로 당국의 외국산 무기 선호는 갈수록 정도가 심해지는 분위기다. 국방부는 개발이 완료됐거나 완료 단계인 국산 무기체계 도입을 백지화하거나 수량을 축소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내 방공망의 핵심인 철매-2(M-SAM)를 포기하려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뜻을 접었으나 생산물량은 여전히 유동적이다. 일각에서는 국산 철매-2 미사일 대신 미국산 무기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는 의혹을 갖고 있다. 계약이 파기된 고정형 장거리 레이더 역시 외국산 구매로 방향을 틀어 쌓아놓은 레이더 기술이 사장될 가능성이 높다. 방사청은 지난해 말 특수부대용 각종 장비를 구매하면서 모두 해외 도입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미국·일본은 가격 비싸도 국내 업체 우선=방산업체의 한 관계자는 “정부 당국자들이 국산무기가 있는데도 외국산을 들여오면서 ‘기술부족을 이유로 든다’”며 “애써 기술을 개발해 외국산과 동등한 제품을 제시할 때는 ‘가격이 비싸다’는 핑계를 댄다”고 말했다. 결국 국내 방산업체는 갈수록 배제되는 분위기다. 특수부대용 장비에서 광학장비들은 ‘기술 수준이 떨어져서’, 굴절총은 ‘가격이 비싸서’라는 이유로 각각 해외 도입이 결정됐다. 일본의 경우 국산이 비싸더라도 200%까지는 국산 우선을 고집하고 있다. 미국도 150%는 ‘미국산 먼저’ 정책이 적용된다.
◇국산 무기 외면 →수출 잠재력 약화 악순환 우려=익명을 요구한 군사전문가 S씨는 “수출이 다소 살아나고 있다지만 국산 홀대 현상은 수출 잠재력 약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초래할 것”이라며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안으로 세 가지를 손꼽았다. 선행연구 단계부터 가격과 기술 문제를 들어 해외 도입을 결정짓는 행태와 짧은 전력화 시기, 국산에 대해 유독 과도한 작전요구성능(ROC) 등이 선결과제라는 것이다. 김학용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수입 변속기는 중한 결함만 없으면 검사를 통과하고 국산 변속기는 경한 결함이 있어도 검사를 통과하지 못한다”며 시정을 요구한 적도 있다.
◇법 정비, 진화적 개발이 대안=한반도의 특수상황도 무기 의존도 심화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북한이라는 변수로 긴급소요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긴급으로 처리되는 사안은 가격이 비싸더라도 성능이 검증됐거나 이름이 알려진 외국산 구매가 대부분이다. 전차나 장갑차·자주포 등 군의 기본 수요를 채우고 보다 복잡하고 정밀한 무기들이 필요하다는 점도 구조적인 해외 도입 선호를 부추긴다. 김종하 한림대 정치안보국방학과 교수는 “내수가 없는 수출은 모순이자 환상”이라며 “과도한 수준인 군의 작전요구성능을 낮추거나 일정 부분 충족하면 일단 구매하고 운용하면서 완성도를 높이는 진화적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진화적 개발의 모범사례로는 이스라엘의 ‘아이온돔’이 손꼽힌다. 로켓탄 요격미사일 시스템인 아이언돔은 이슬람 국가 중에서도 중심국인 사우디아라비아마저 관심을 가질 정도의 명품 방어 무기지만 애초부터 완성 단계로 이스라엘 군에 채택되지는 않았다. 이스라엘군은 ROC의 70% 개발 단계에서 아이언돔 배치를 시작해 부족한 부분은 실전배치와 운용단계에서 채웠다. 선행연구 단계에서 사실상 구매 대상국을 정하는 월권도 법령으로 제한할 구태로 지목됐다. /권홍우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