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정부 독려로 양만 앞세운 청년창업...4곳 중 3곳 5년내 문닫아

[이젠 미래를 이야기하자-젊음 잃은 청년 창업]

<7·끝> 속빈강정 전락한 창업정책

정책 자금 매년 2조 이상 투입 창업 100만개 넘었지만

기술창업보다 생존율 낮은 통신판매·거피숍 등에 쏠려

시니어 숙련 창업 늘리고 혁신벤처 막는 규제도 개선을

지난해 9월 경기도 안산 청년창업사관학교 내에 위치한 개방형 사무실에서 입소한 학생들이 제품 개발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중소기업진흥공단지난해 9월 경기도 안산 청년창업사관학교 내에 위치한 개방형 사무실에서 입소한 학생들이 제품 개발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중소기업진흥공단






# 서울 A대학에 재학 중인 신현민(24·가명)씨는 2년 전 학내 창업보육센터에서 창업했다가 최근 폐업을 결정하고 취업자리를 찾고 있다. 신씨는 “창업동아리에서 활동하다 학교 측의 권유로 창업에 나섰던 동료 30명 가운데 90%는 1~2년 만에 모두 그만뒀다”면서 “폐업률과 상관없이 창업 실적에 기록됐다”고 토로했다. 그는 “그 사이에 나이는 차고 스펙을 갖추지 못해 취업도 쉽지 않다”며 “학내 창업경진대회에서 수상한 뒤 치밀한 준비 없이 창업했던 것이 후회된다”고 말했다.

# 지난 2013년 조명화환사업을 시작했던 최경환(27·가명)씨도 사정이 비슷하다. 열정과 의지는 많았는데 생태계를 잘 몰랐고 기술도 부족했다. 최씨는 “노하우 없이 생계형으로 창업했다가 현재 빚만 6억원에 달한다”며 “창업 실적이 늘었다고 하는데 과연 정말 의미 있는 창업인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며 빚을 갚아나가고 있다.

정부의 각종 지원에 힘입어 청년 창업의 숫자는 급증했지만 기술 창업의 비중은 줄고 생계형 창업이 늘어나며 ‘속 빈 강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세청의 ‘국세 통계로 보는 청년 창업활동’에 따르면 2015년 청년(15~34세)들이 가장 많이 창업에 뛰어든 업종은 통신판매업(3만7,059개)이었다. 한식음식점이 1만7,752개로 2위를 차지했고 상품중개업(4,608개), 커피숍(4,587개) 등이 뒤를 이었다. 대부분 소비재를 취급하는 유통업이나 소비자를 직접 상대하는 서비스업으로 ‘레드오션’에 속한다. 2011년 창업해 2016년 말까지 사업을 지속하는 비율을 보면 통신판매업은 13.8%에 불과했다. 청년 10명이 온라인 쇼핑몰을 열었다면 5년 안에 이 중 9명이 문을 닫는다는 얘기다. 한식음식점도 사업 지속률이 15.8%에 머물렀다. 전체 청년 창업의 5년 생존율은 23.45%로 청년 창업 네 곳 중 세 곳 이상은 5년 안에 문을 닫는다.



벤처캐피털(VC) 업체들은 투자할 스타트업을 찾지 못해 난감해하고 있다. 창업 붐에 힘입어 스타트업 숫자는 부쩍 늘었지만 기술이나 사업 아이템의 수준이 떨어지고 있는 탓이다. 벤처캐피털 관계자는 “수많은 스타트업이 등장하고 있지만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창의적이고 새로운 영역보다는 접근하기 쉬운 유통·서비스 등이 압도적으로 많아 오히려 투자할 곳이 없다”며 “배달·숙박 등 O2O 애플리케이션과 기능성 화장품 제조 등으로 국내 창업 분야가 치중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상현실(VR)이나 드론, 자율주행차, 인공지능(AI) 분야의 스타트업은 투자를 하고 싶어도 찾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올해 중소기업에 공급할 정책자금 3조7,350억원 중 창업 지원에 쓰이는 돈은 절반인 1조8,660억원에 달한다. 다른 부처에 흩어져 있는 창업 지원 예산까지 더하면 매년 2조원 이상의 정부 자금이 창업 시장에 흘러들어온다. 정책 공급 측면에서 우리나라 창업 시장은 일정 궤도에 오른 것처럼 보인다. 창업 기업(연간)은 이미 100만개(2015년 기준)를 돌파했다. 하지만 이 같은 양적인 성장 중심의 창업 정책으로 인해 기술 없는 청년 창업이 양산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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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부 관계자는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신설 법인 증가와 규제 개선 등으로 지난해 우리나라의 창업 환경 순위가 처음으로 10위권 안에 들어오는 등 창업 환경은 많이 개선됐다”면서 “하지만 창업의 질적인 수준을 따져볼 때는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먼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미국 피터슨연구소 통계에 따르면 세계 215개 유니콘 기업 중 국내 기업은 2개에 불과하다. 혁신 창업을 통한 자수성가형 부자의 비중은 18.5%로 미국의 32.1%, 일본의 63.0%에 비해 현격히 낮은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기술 창업 비중을 높이고 창업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대안으로 시니어의 숙련 창업이 전략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 업종에서 자신만의 주특기를 쌓은 숙련 퇴직자들은 기술력과 인적 네트워크, 위기대응능력에서 탁월한 강점이 있다. 최근에는 숙련 퇴직자들의 노하우와 경험, 젊은이들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신기술이 결합된 세대융합 창업이 새로운 창업 모델로 제시되고 있다. 창업진흥원의 한 관계자는 “시니어들의 기술력과 젊은 창업가의 도전 정신이 결합된 세대융합 창업은 각자의 장점을 극대화한다는 점에서 사업의 성공 확률을 높여준다”고 말했다.

혁신 창업을 가로막는 규제도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수정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문재인 정부가 최우선으로 추진하는 일자리 창출 및 4차 산업의 혁신 주체는 벤처·창업기업을 포함하는 중소기업인 만큼 중소기업의 규제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신사업을 추진하는 벤처·창업기업들이 사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규제 적용 여부 및 범위를 정확히 확인하는 규제확인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민우·백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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