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5일 국회 4차산업혁명특별위원회 업무보고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파괴적 혁신을 창출하는 기업이 살아남는다”고 말했다. 격변하는 기술과 환경 속에서 기존에 익숙했던 관행들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새로운 도전을 시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인터넷 회사 구글이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고 유통업체 알리바바가 로봇·인공지능(AI) 사업에 열을 올리는 세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조세 제도부터가 파괴적 혁신을 가로막는다는 지적이 많다. 가령 아버지가 힘들게 일군 회사를 물려받은 중소기업 경영자가 새로운 업종을 시도하면 막대한 상속세 폭탄을 피할 수 없다. 지나치게 까다로운 ‘가업상속공제’ 제도 때문이다. 낡은 세제부터 파괴적 혁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가업상속공제는 중소기업의 원활한 상속을 돕기 위해 세금을 깎아주는 제도를 말한다. 한국은 ‘부의 대물림’에 대한 엄격한 사회 인식 탓에 상속세가 세계 최고 수준인데 중소기업이 대를 이어 ‘명문 장수기업’으로 성장하는 것까지 막아서는 안 된다는 인식 아래 도입된 제도다. 하지만 가업상속제도 역시 제한 조건이 많아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규제가 사후관리 요건이다. 한국의 가업상속공제 제도는 사후관리 기간을 10년으로 설정하고 이 기간 각종 조건을 충족시켜야 공제 혜택을 준다. 이 가운데는 10년간 업종을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도 있다. 상속기업의 파괴적 혁신을 제한하는 규제로 꼽힌다.
10년 동안 매년 고용의 80%를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도 제도 이용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거론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AI나 스마트공장 등과 연계된 자동화 기술이 일반화되는데 고용 80% 유지 조건이 있다면 이런 시도는 시작조차 못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의 가업상속공제 사후관리 요건은 세계적으로도 까다로운 편이다. 우리나라처럼 가업 상속이 많은 일본과 독일은 사후관리 기간이 각각 5년과 7년이다. 두 나라 모두 업종 유지 조건은 없다. 고용 유지 조건이 있는 독일도 완화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독일은 고용 대신 급여총액을 일정 기준 이상 유지하도록 한다. 사업승계 이후 7년간 급여총액을 승계 시점의 700% 이상으로 유지하게 한 것이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박사는 “일자리 수가 아닌 급여총액을 유지하도록 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고용 신축성을 가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전 요건 역시 엄격하다. 매출액 3,000억원 미만 중소·중견기업이어야 하고 상속을 받는 2세가 의결권 있는 주식의 50%를 보유해야 한다. 독일은 이 비중이 25%에 불과하고 영국은 주식 보유 조건이 없는 것과 대비된다.
실제 많은 중소기업은 주식 보유 요건과 사후관리 요건을 가업승계를 어렵게 하는 대표적인 규제로 손꼽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2016년 발표한 ‘중소기업 가업승계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45.4%는 가업상속공제에서 제도가 시급한 사항으로 ‘피상속인 최대주주 지분 50% 이상 보유’ 조건을 꼽았다. 피상속인 10년 이상 계속 경영 유지 조건 역시 26.2%가 문제로 지적했다.
기업 상속의 발목을 잡는 제도는 이뿐이 아니다. 최대주주가 주식을 상속·증여할 때 지분율이 50%를 초과하면 할증을 붙이는 제도 역시 선진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제도로 지적된다. 우리나라는 50% 넘는 최대주주에 대해 대기업은 30%, 중소기업은 15%의 할증을 붙인다. 이를 적용하면 대기업 경영자의 상속세는 최대 65%까지 치솟는다.
중소기업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독일이나 일본처럼 명문 장수기업을 많이 만들겠다고 하지만 현행 조세 제도 아래서는 불가능한 목표에 가깝다”고 꼬집었다.
세계적인 추세와 다르게 상속세에 ‘유산세형(상속 총액에 과세)’을 고집하고 있는 점도 문제다. 우리나라는 증여세의 경우 개인이 받은 금액별로 과세하는 유산취득세형이지만 상속세는 유산세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상속세 부담이 더 커지고 ‘사전 증여’ 등 꼼수를 부추기는 역효과도 생기고 있다. 상속세를 부과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22개국 가운데 우리나라처럼 상속세에 유산세형을 적용하는 나라는 6개국에 불과하다.
상속세와 증여세의 차이에서 오는 부작용을 막고 공평과세 원칙을 실현하는 차원에서라도 상속세를 유산취득세형으로 고쳐야 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왔지만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유산취득세형으로 전환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것을 알지만 사회적으로 예민한 문제여서 개선이 여의치 않다”고 전했다.
/세종=서민준·임진혁기자 morando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