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무병장수와 생명연장을 향한 제약사들의 한결같은 꿈은 신약 개발이다. 그만큼 고되고 지루한 연구의 연속이지만 일단 잭팟을 터뜨리기만 하면 과실은 엄청나다. 연 매출이 1,000억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한올바이오파마. 지난 2016년 영업이익이 고작 3억원에 불과했던 중소제약사 한올이 지난해 말 ‘대형 사고’를 제대로 쳤다. 세계 최대 신약개발 전문사인 미국 로이반트사이언스와 자가면역질환 치료 항체신약 ‘HL161BKN(이하 HL161)’에 대해 5억250만달러(약 5,370억원) 규모의 기술이전 계약을 맺은 것이다. 계약금 3,000만달러와 연구비 2,000만달러를 먼저 받고 임상시험과 판매허가 등 개발 단계별로 마일스톤(기술료)을 최대 4억5,250만달러까지 받는 조건이다. 향후 제품화 후 매출에 따라 받게 되는 로열티는 별도다.
2일 서울 삼성동 봉은사로 서울사무소에서 만난 박승국(55) 대표의 입술은 부르터 있었다. 국내 바이오기업이 개발한 신약 후보물질로는 가장 큰 규모의 기술수출을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마음고생이 많았을 터다. 그러나 표정은 밝았다. 성과가 달콤했기 때문이다. 기술수출 덕분에 한올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10배 이상 늘었고 박 대표는 지난달 초 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국내 제약사들이 지금까지 전혀 새로운 타깃을 대상으로 한 바이오 신약 개발에서 성과를 낸 것이 별로 없다”면서 “HL161이 제품화에 성공한다면 한국에서도 ‘퍼스트 인 클래스(First-in-Class)’ 항체신약 제품이 나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약 후보물질은 통상 임상 2·3상 단계에서 기술수출이 이뤄지지만 HL161은 현재 임상 1상이 진행되고 있다. 임상 1상 단계에서 기술을 사갔다는 것은 그만큼 신약개발 가능성이 크고 적용할 수 있는 질환이 다양해 시장성이 높다는 의미다. 임상시험과 판매허가 등 개발을 진행할 로이반트는 2014년 설립한 이래 지금까지 26억달러의 자금을 투자 받았으며 질환 영역별로 6개의 자회사를 설립해 GSK·머크·아스트라제네카·다케다 등 대형 제약사로부터 인수한 10종 이상의 파이프라인을 사업화하고 있는 세계 최대 개발 중심 바이오벤처(NRDO)다. 박 대표는 “로이반트가 HL161을 사업화하기 위해 별도의 자가면역질환 전문 자회사를 추가로 설립하기로 하는 등 우리 제품을 중심에 두고 신속히 개발해나갈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해 파트너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HL161은 희귀성 자가면역질환을 치료하는 항체신약이다. 자가면역질환은 세균과 바이러스 등 외부 침입자로부터 몸을 지켜야 할 항체와 면역세포가 되레 몸을 공격하는 병이다. 류머티즘 관절염이 대표적인 질환이다. 자가항체에 의한 면역질환 치료방법에는 환자의 혈액을 체외로 빼내어 자가항체를 걸러낸 뒤 다시 넣어주는 혈장분리반출술과 대량의 혈액으로부터 모은 항체분자(면역글로불린)을 정맥에 투여해 자가항체를 희석시켜 문제를 일으키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 있다. 2016년 기준으로 미국 시장규모만 75억달러(약 8조원)에 이르고 환자가 꾸준히 늘고 있지만 기존 치료법은 부작용이 심하고 환자에게 많은 고통을 수반할 뿐만 아니라 치료비용도 비싸다.
한올은 자가항체를 몸속에 축적시키는 ‘FcRn’이라는 수용체를 억제해 자가항체가 제거되는 새로운 방식으로 HL161을 개발했다. 기존 치료법에 비해 약효와 안전성이 높고 가격은 절반가량 저렴할 것으로 기대된다는 게 박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동물실험에서 대조군 대비 자가항체를 20~30% 선까지 줄이는 효과가 나타났고 약효지속 기간도 긴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일단 2~3개의 적응증을 준비 중이지만 중증 근무력증이나 천포창, 루푸스신염, 만성 혈소판감소증, 시신경척수염 등 다양한 질환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약 개발이 대개 그러하듯 HL161 개발 과정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박 대표가 자가면역질환 항체신약 개발에 착수한 것은 연구소장으로 재직하던 2010년부터다. 회사 내부에서도 성공 가능성을 낮게 보고 반대가 심했다. 겨우 설득해서 개발 착수 2년여 만에 결과물을 얻었지만 실험을 추가로 진행하기 힘들었다. 회사 매출의 4분의1을 차지하던 박스터사의 수액제품 판매권을 잃은데다 약가 인하로 회사의 매출이 급전직하하고 영업이익도 적자 전환하는 등 경영 상태가 악화일로였다. 박 대표는 “당시 회사는 외형이 작아도 매년 매출의 10% 이상을 신약 개발에 투자할 정도로 연구개발(R&D)에 신경을 많이 썼지만 경영이 어려운 상황에서 개발비를 추가로 투입하기는 힘들었다”면서 “당시로서는 신약 후보물질의 약효도 약한 단계여서 개발을 중단하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그럼에도 박 대표는 포기하지 않았다. 범부처 전주기신약개발사업단을 찾아가 지원을 요청했다. 당시 평가위원들의 반응도 심드렁했다. 작용기전이 약하고 물질이 나와도 제품화되기 힘들 것이라는 의견이 다수였다. 박 대표는 “(제품화는) 안 해봤으니 모른다. 한국에서도 새로운 타깃에 도전하는 혁신신약을 만들어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읍소했다. 다행히 8억원을 지원받아 연구를 지속했고 2년 뒤 동물효력 평가를 완료하고 후보항체를 확정했다. 가능성을 본 범부처 사업단은 2015년 24억원을 추가로 지원했다. HL161 개발에는 지금까지 100억원 이상이 들어갔다. 박 대표는 “신약 개발을 위해 제약사가 좀 더 적극적으로 R&D를 해야 하지만 범부처 사업단처럼 유연하면서도 모험적인 투자가 있다면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HL161은 임상시험과 제품 허가 등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이르면 2022년, 늦어도 2023년에는 상업화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때가 되면 타깃으로 하는 고용량 면역글로불린(IVIG) 시장 규모가 150억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로이반트는 HL161이 제품화되면 최소 연간 20억달러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통상 매출의 10%가량의 로열티를 받는다고 가정하면 한올은 HL161로만 2,000억원 안팎의 수익이 매년 발생한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로이반트는 북미와 중남미·유럽연합(EU)·영국·스위스 등에 대한 판권을 가져갔다. 일본과 러시아·오세아니아 일대 판권은 아직 남아 있다. 박 대표는 “지난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JP모건 콘퍼런스에서 일본 업체 두 곳과 판권 관련한 미팅을 가졌다”면서 “우리 입장에서는 급할 것이 없고 임상결과가 나오면 가치가 더 올라가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고 계약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올은 지난해 842억원의 매출과 3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1.6% 늘어나는 데 그쳤지만 영업이익은 1,136% 급증했다. 아직 영업이익 규모가 크지 않지만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올해 목표는 매출 1,000억원 돌파다. 박 대표는 “HL161의 기술료 수입으로 이미 확정된 매출만 60억원”이라며 “지난해 이뤄진 영업조직 효율화가 효과를 낸다면 내수 판매도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자신했다.
사진=송은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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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서울대 생화학과, KAIST 분자생물학 석·박사, KAIST 경영학 석사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박사후과정 △1992년 대웅제약 입사 △대웅제약 생명공학연구소 책임연구원·팀장·연구소장 △2007년 한올바이오파마 바이오연구소장 △2013년 한올바이오파마 대표이사 △다케다제약 바이오기술연구소 위촉연구원 △한국생물공학회 이사 △지식경제부 산업융합원천기술개발사업 기획위원장 △2018년 한올바이오파마 대표이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