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25일(현지시간) 남극 세종과학기지에서 남동쪽으로 세찬 비바람을 맞으며 1시간을 걸어 도착한 나레브스키 포인트. 매년 11월이면 이곳은 ‘펭귄 마을’이 된다. 바닷속에 살던 젠투펭귄 2,000쌍과 턱끈펭귄 3,000쌍이 알을 낳고 새끼를 치기 위해 이곳으로 모이기 때문이다. 이곳의 공식 명칭은 ‘남극특별보호구역 171번(ASPA No.171 Narebski Point)’이다. 한국이 이 일대에 서식하는 펭귄과 더불어 남방큰풀마갈매기·알락풀마갈매기·갈색도둑갈매기 등 다양한 조류, 지의류 51종, 이끼류 29종 등의 생장을 인간이 방해해서는 안 된다며 국제사회에 제안해 2009년 지정된 후 명명됐다. 한국이 남극 생태 보호를 위한 관리자가 됐다는 데 의미가 크다.
‘ASPA N0.171’라고 써진 파란색 안내판을 지나자 펭귄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에서만 보던 거대한 ‘펭귄 미끄럼틀’이 나타났다. 해안가에서 크릴새우를 잔뜩 먹고 온 어미 젠투펭귄들이 짧은 날개를 뒤로 펼치고 쫑쫑쫑 미끄럼틀의 오르막을 올랐다. 젠투펭귄들을 따라 오르막에 올라서니 새우 과자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아무래도 이곳 펭귄들의 먹이가 크릴새우다 보니 그 배설물 냄새가 새우 과자 냄새와 비슷했다.
마을을 이룬 펭귄들의 생태 현장은 경이롭고 감동적이었다. 수천 마리의 젠투펭귄들이 옹기종기 모여 8~9m/s로 부는 빙원의 바람을 서로 막아주는 모습이 짠하면서 기특했다. 짝이 없는 펭귄들은 바람 방향으로 머리를 두고 누워 있었다. 털이 난 방향과 바람의 방향을 맞춰야 그나마 덜 춥기 때문이란다.
젠투펭귄과 턱끈펭귄들이 해안가 위의 바람이 많이 부는 고지대에서 번식을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동행한 홍순규 남극 세종과학기지 대장은 “바람이 강하게 불어야 눈이 쓸려나가고 그래야 둥지에 물기가 없어 알이 잘 부화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알을 품고 있을 때는 바람의 방향과 반대로 누워 있더라도 새끼를 지키기 위해 극한의 추위를 견디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펭귄 마을의 안쪽으로 들어가자 불과 몇 주 전 알에서 부화한 새끼 펭귄들이 어미의 목을 쪼아 먹이를 받아먹는 장면도 포착됐다. 새끼가 어미의 목을 쪼아야 어미가 먹었던 크릴새우를 토해낼 수 있다고 한다.
한 편에는 새끼 펭귄들이 수영 연습을 하는 ‘펭귄 유치원’도 자리 잡고 있다. 아직 솜털이 빠지지 않아 바다로는 나갈 수 없는 새끼 펭귄들은 자그마한 물웅덩이에 모여 수영하고 그 모습을 서로 지켜봤다. 이따금 펭귄들의 천적인 남극도둑갈매기가 주위를 돌다 새끼들 곁에 내려앉았다. 보통 펭귄들의 알을 쪼아 먹는 남극도둑갈매기는 이미 다 부화한 새끼들과 거리를 두며 멋쩍어했다. 펭귄들도 경계는 하면서도 큰 움직임은 없었다.
해안가가 보이는 절벽 끝에 도착하자 수천 마리의 턱끈펭귄들이 군집을 이루며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해안가에서 돌아오는 어미를 기다리는 듯했다. 어미 펭귄들은 새끼 펭귄들을 돌보며 ‘끼룩끼룩’ 울었다.
세종과학기지 연구팀들은 이곳에서 펭귄들의 행동을 연구한다. 위성추적장치(GPS) 등을 활용해 펭귄의 이동 경로와 취식 행동을 모니터링한다. 2015년에는 해양생산성이 높은 브랜스필드 해협의 해저산맥 인근 지역을 턱끈펭귄이 주요 취식 장소로 이용한다는 사실을 보고했고 2016년에는 턱끈펭귄의 번식 단계에 따라 취식지 영역과 잠수 깊이에 변화가 생긴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펭귄들은 다시 2월 말이 되면 이곳을 거의 떠나 다시 바다로 간다. 어디로 가는지는 아직 모른다. 홍 대장은 “펭귄들이 겨울이 되면 어디로 가는 지 자신 있게 답변하는 연구자들을 못 봤다”며 “앞으로 더 연구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펭귄들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기지로 돌아가는 길에는 큰풀마갈매기가 알을 품고 있는 모습도 포착됐다. 그 옆을 조심스럽게 지나가는데큰풀마갈매기는 고개를 사방으로 돌리며 경계할 뿐 알 곁을 떠나지 않았다. 기지에 거의 도착하자 웨델해표 한 마리가 누워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취재·연구진의 눈 밟는 소리에 놀랐는지 고개를 빼꼼히 내밀며 허리를 곧추세우더니 이내 다시 낮잠을 청했다.
/남극 세종과학기지=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