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범정부 차원의 컨트럴타워 구축에 나선다. 중기부, 산업부, 공정위, 특허청, 경찰청, 대검찰청 등 6개 유관부처가 참여하는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하고, ‘중소기업 기술보호위원회’를 신설한다. 위원장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맡는다. 기업간 기술자료 요구 금지 원칙을 재정립하고 기술탈취 예방과 사후 구제를 위한 법적, 물적 지원을 강화하는 등 제반 제도도 대폭 개선한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12일 오전 당정 협의를 갖고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당정은 기술탈취 문제가 ‘기술에 대한 대가 지불’이라는 인식 부족과 대·중소기업 간 종속구조에 기인하는 것에 공감하고 △기업간 기술자료 요구금지 원칙의 재정립, 입증책임 전환 및 징벌적 손해배상 강화 등 제도 개선 △검·경, 공정위, 특허청 등 행정부처의 조사·수사 권한을 최대한 활용 △기술탈취 예방과 사후구제를 위한 법적·물적 지원 강화 △기술보호를 위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 및 대·중소기업간 상생노력 전개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기술 비밀자료를 거래할 때 비밀유지협약서(NDA)를 의무적으로 체결하고 이를 어기면 벌칙을 부과하는 내용의 ‘상생협력법’ 개정이 하반기 중 추진된다. 하도급 거래에서 예외적으로 기술자료 요구를 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를 최소화하는 한편 요구서면 기재사항에 반환 및 폐기 일자 반드시 명시하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할 방침이다.
기술임치제도 활성화를 위해 창업·벤처기업 등의 임치수수료를 줄여주는 한편 표준하도급 계약서의 기술임치제도 활용 규정을 확대한다. 임치수수료는 신규 30만원(연간)에서 20만원으로, 갱신은 15만원에서 10만원으로 낮춰주기로 했다.
또한 대기업과의 기술자료 거래내역, 자료를 요구한 대기업 담당자, 부당하다고 느낀 정황, 불합리한 상황 등을 기록해 향후 분쟁 발생시 유력한 입증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자료 거래기록 등록 시스템’을 도입한다. 서비스에 가입한 후 거래 내역 등을 스토리지에 등록하면 이를 공증해 분쟁이나 수사 시 참고 자료로 활용하게 된다. 이는 그동안 중소기업계가 요구해 왔던 기술탈취 소송에서의 애로 사항인 입증책임 전환 및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마련된 개선안이다.
가해 혐의 대기업에 대해서도 입증책임을 부여하는 제도를 ‘특허법’, ‘부정경쟁방지법’, ‘상생협력법’, ‘산업기술보호법’에 도입키로 했다. 침해혐의 당사자가 자사의 기술이 피해당한 기업의 기술과 무관함을 해명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기술탈취 관련 5개 법률의 손해배상액을 손해액의 최대 10배까지 상향 조정하는 등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획기적으로 강화한 점도 눈길을 끈다.
이 같은 제반 제도 개선과 함께 행정부처가 조사 및 수사 권한을 활용해 기술탈취 근절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기로 했다. 기술탈취 사건이 발생하면, 검·경 등 수사기관 및 중기부, 공정위, 특허청 등 관련부처가 협력하여 피해사건 신속 해결에 나선다. 중기부와 특허청은 조사 및 시정권고 등 행정조치 권한을 보강해 중소기업의 입장에서 문제 해결에 나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또한 중기부, 산업부, 공정위, 특허청, 경찰청, 대검찰청 등 6개 유관부처가 참여하는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하고, ‘중소기업 기술보호위원회’를 신설한다. 위원장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맡는다.
중소기업에 대한 법률적 조력과 물적 지원도 강화한다. 변호사협회와 협력하여 중소기업 기술보호 주치의로서 대기업의 자료 요구 대응부터 소송까지 1:1로 전담 자문하는 ‘공익법무단’을 운영하며, 특허심판에 ‘국선대리인’ 제도를 도입하고, 국선대리인 수행사건에 대해 심판 수수료를 감면함으로써 중소기업의 심판 부담을 줄여준다. 특허공제, 소송보험, 정책자금, 판로 등 다양한 정책수단을 활용하여 기술탈취 피해기업의 경영정상화를 지원한다.
특히 기술 보호를 위한 상생노력과 사회적 공감대 형성에 힘을 기울인다. 대·중소기업 간 활발한 기술거래 환경을 조성하고, 대기업 등의 기술보호·기술나눔을 장려하고, 기술보호교육 및 기술탈취 문제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제고한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당정협의에서 “기술탈취는 금전피해를 넘어 혁신성장 견인차인 중소기업의 기술개발 의지를 약화시키고 성장 사다리를 끊는 주범”이라며 “이를 계속 방치할 경우 대기업 중심 독과점 구조가 공고해지고 산업 전체 경쟁력과 활력이 떨어지는 산업고령화 시대에 접어들게 될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대한민국의 새로운 경제엔진이라 할 공정성장과 혁신성장 불씨를 이어가기 위해서도 중소기업에 대한 기술탈취는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며 “범정부적 대책을 마련해 창의와 혁신이 국가 경제를 선도하는 산업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일자리와 경제의 미래는 중소기업이 혁신성장과 소득주도성장 중심이 되도록 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며 “당정 협의를 거쳐 마련된 이번 대책이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점검, 보완해 기술탈취가 근절될 때까지 지속적인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이번 대책에 대해 중소기업계에는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발표가 나온 후 논평을 통해 “중소기업계는 정부가 발표한 ‘범정부 기술탈취 근절 대책’을 환영하며, 이번 대책이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기술탈취 행위를 근절하고 중소기업의 혁신성장을 유도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중기중앙회는 “그동안 중소기업계는 대기업의 기술탈취 행위가 중소기업 혁신의 결실을 가로채고, 창업 중소기업의 사업 기회를 박탈하는 반사회적 행위로 중소기업의 자생력을 잠식하는 중대한 불공정행위임을 지적해 왔지만 소관부처와 제도가 혼재해 있어 기술탈취 근절을 위한 범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요구해왔다”며 “이번 범정부 차원의 대책으로 기술탈취 피해기업의 가장 큰 애로였던 피해사실 입증과 소송의 장기화에 따른 부담을 경감시키고, 조사 및 수사 권한의 효율적 활용이 가능해 피해기업의 사후구제 가능성을 높이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강화를 통해 기술탈취 행위에 대한 경각심도 크게 제고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