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방송·연예

‘다큐공감’ 인제 천리길에서 만난 두 사람이 쓰는 20년간의 귀향일기

‘다큐공감’ 인제 천리길에서 만난 두 사람이 써가는 20년간의 귀향일기




24일 방송되는 KBS1 ‘다큐공감’에서는 ‘다시 고향에서, 길을 찾다’ 편이 전파를 탄다.


인제의 잊혀진 옛길에서 만난 두 사람, 그들이 삶으로 써내려가는 20년간의 귀향일기.

작년 봄부터 인제의 깊은 산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다. 초등학생부터 노년의 참가자까지 인제지역과 서울, 경기 지역에서 온 스무여 명의 참가자들은 매주 최소 10여 킬로나 되는 구간을 함께 걷고 있다. 이 길의 이름은 인제천리길. 그 옛날 소금장수나 보부상들이 목숨 걸고 오르내렸던 결코 만만치 않은 인제의 옛길로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강원도의 험산준령들, 점봉산, 대암산, 방태산, 설악산을 연결하는 약 430킬로의 코스다.

▲ 고향을 살리겠다는 꿈을 품고 돌아왔으나 단절과 좌절과 상처로 무너지고...

2년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사람들을 이 길로 안내한 이는 김호진씨. 인제의 부잣집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로 유학해서 대학을 마치고 사업을 하다가 귀향했다. 그리고 고향의 농업을 살리기 위해 토종산삼 종 복원 사업에 모든 것을 걸었다. 하지만 남다른 능력과 불타는 의욕을 갖고도 오히려 큰 실망과 한계와 단절을 경험했고, 그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결국 뇌출혈과 암으로 이어졌다.

김호진씨와 천리길을 함께 하고 있는 박수홍씨도 초등학교 때 고향을 떠나 일본 유학을 마친 뒤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다. 고향친구들조차도 농사를 전혀 모르는 그가 시골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곧 다시 도시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농사를 짓는 대신 마을을 변화시켰다. 월급 한 푼 없는 마을 총무, 이장 일을 10년간 열정적으로 해내며 노인들만 사는 침체된 산골마을을 여행자와 젊은이들이 북적대는 활기찬 체험마을로 변모시켰다. 그 결과 그의 고향은 전국 최고의 생태마을로 떠올랐고 고향을 떠났던 토박이들이 줄지어 돌아왔다. 그런데 그 즈음 아내가 말기암 진단을 받았다. 10년간 남편이 땅을 팔아서 갖다 주는 생활비로 두 아들의 교육은 물론 손님 접대에 마을 일까지 챙기느라 아내는 아파도 병원을 갈 여유가 없었다. 그는 뒤늦게 얻은 직장도 그만두고 아내의 곁을 지켰지만 아내는 9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 하지만 그들은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 잊혀진 고향의 옛길을 함께 걸으며 다시, 꿈을 향해 나아가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인생 트래킹!


박수홍씨가 다시 직장에 나가기 시작한 건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 2년 뒤. 그 즈음, 김호진씨를 만났다. 인제의 소문난 부잣집 장남으로 일찍부터 청출어람으로 모든 이들의 부러움을 사던 김호진씨는, 몸의 오른쪽을 전혀 통제할 수 없는 장애인에 언제 다시 재발할지 모르는 암병력의 환자가 되어 나타났다. 그 몸으로도 여전히 고향을 위해 꿈을 꾸고 있었다. 이번에는 인제의 빼어난 자연을 알리기 위해 천리길 장정에 나서자는 김호진씨의 열정이 박수홍씨를 감동시켰고, 그렇게 두 사람은 의기투합했다.

관련기사



작년 봄부터 시작된 천리길 장정엔 갈수록 사람들이 늘고 있다. 두 사람이 기대했던 것보다 더 빠르게 지역 주민은 물론 외부에서 찾아오는 여행자들에게 힐링 트래킹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 천리길 위에서 김호진씨와 박수홍씨도 이전에는 미처 몰랐던 소중한 삶의 가치들을 발견해가고 있다.

어느 덧 환갑을 바라보는 김호진씨. 사실 그는 지금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 매주 전국에서 몰려드는 사람들을 끌고 산행을 하는 데에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일주일에 두 번씩 서울을 오가며 재활훈련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데다가 너무 무리를 하면 면역력이 떨어져 암이 재발할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생애 그 어느 때보다 더 건강하고 여전히 의욕이 왕성하며 살면서 가장 많은 사람과 소통하며 살고 있다. 고향의 자연 속에서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천천히 느리게 살아가는 기쁨’을 공유하고 싶다는 그다.

박수홍씨는 최근 마을 사람들과 협동조합을 만들고 블루베리 농사를 시작했다. 면적당소득이 쌀보다 4.5배나 되는 블루베리 농사를 시작한 데에는 농업후계자인 큰 아들의 도움이 컸다. 큰 아들 선현씨는 아버지와 같은 지역지도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안고 농촌 후계자의 길을 걷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살며 가정과 고향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지난 1월, 박수홍씨와 냇강마을 사람들은 지속가능한 체험농촌의 모범사례도 또 한 번 큰 상을 받아 사기충천이다. 자연과 사람이 하나가 되고, 이웃과 이웃이 가족이 되는 고향,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며 기쁨과 아픔도 함께 하는 고향. 비록 아내와 함께 할 수는 없지만, 꿈꾸었던 고향의 모습을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는 박수홍씨다.

‘다시 고향에서, 길을 찾다’ 편에서는 중년의 두 주인공이 귀향과 함께 닥쳐온 실패와 상처를 극복하며, 고향을 위해 따뜻하고 소박한 삶을 일궈가는 인생 트래킹을 영상화했다.

[사진=KBS 제공]

/서경스타 전종선기자 jjs7377@sedaily.com

전종선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