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아인슈타인 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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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 방문길에 오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베를린 주재 미 영사관에서 까다로운 비자 심사 절차를 밟아야 했다. 미국의 한 우익단체에서 그가 무정부주의자이자 공산당과 관련됐다며 입국을 금지해야 한다는 투서를 미 국무부에 보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정치이념이나 성장 과정을 조사하던 미국 측에 항의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어렵사리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프린스턴대에 정착한 아인슈타인은 1940년에야 미국 시민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고통 속에서 힘겹게 싸우고 있는 다른 이들을 생각하면 평안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다”며 동료들의 미국 입국을 지원하는 활동을 펼쳤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국 비자 가운데서도 ‘EB-1 프로그램’은 영주권 발급자 가운데 0.3%만 받는 희귀 비자로 평가받고 있다. 특별한 재능(extraordinary abilities)을 갖춘 유명 학자나 연구자, 다국적 기업 경영진에만 제한적으로 제공돼 일명 ‘아인슈타인 비자’라고도 불린다. 매년 4만명 정도에게 발급되는데 한 국가당 7%를 넘지 않도록 엄격하게 운영된다고 한다. 노벨상 수상자나 올림픽 메달리스트, 오스카상 후보자라면 일단 통과 자격을 갖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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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이탈리아의 엔리코 페르미는 스웨덴에서 상금을 받자마자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했다. 컬럼비아대와 시카고대에서 원자로 설계를 연구한 그는 1944년 미국 시민권을 따냈다. 2013년에는 미국의 노벨상 수상자 9명 가운데 절반을 이민자들이 차지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중국 정부는 이를 본떠 노벨상 수상자나 세계 일류대학의 연구원들에게 10년짜리 장기 비자를 무료로 발급해주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2001년 EB-1 비자를 받은 데 의문점이 많다고 미국 언론들이 전하고 있다. 슬로베니아 출신 모델인 그가 뉴욕 패션가에서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도 특급 비자를 받을 수 있었던 배경이 수상하다는 것이다. ‘이민자의 나라’ 미국에서 벌어지는 또 다른 공정성 시비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주목된다. /정상범 논설위원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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