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스르륵, 봄

신준수 作 (1961~)

0715A38 시로여는수욜




오래된 벚나무에 폐비닐 척 걸려 펄럭인다


두 번 감아 길게, 로맨틱한 연출법이다

곧 늙으신 몸 여기저기 뚫고 나오실 주책없는 꽃송이들 어쩌시려고

고목의 봄날을 어찌 감당하시려고

가지에 놀던 곤줄박이 박새들 다 쫓아 보내고

두꺼운 엄동도 다 쫓아 보내고

머플러 척 걸치시고 나온

짧은 봄날의 외출

따뜻한 바람, 여러 겹으로 주름지는데

부쩍 머플러를 탐하시는 어머니


어설프게 둘러 흘러내리고 밟혀 애물 되기 일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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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당도하는 꽃샘추위가 두려우신 게다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것 두려우신 게다

고목을 뚫고 툭툭 튀어나오는 춘심

어찌 바람이 이리 달다냐

다 녹아 혀끝에서만 맴맴 도는 봄날의 끝

바람 불면 머플러처럼 스르륵,

풀릴 봄

‘스르륵’이라는 말, 어쩌면 저리도 봄과 잘 어울리는 의성어인가. 겨우내 꽁꽁 얼었던 계곡물이 스르륵, 봄서리 녹는 흙덩이가 스르륵, 겨울잠에서 깬 누룩뱀이 스르륵, 꽃나무들의 눈비늘이 스르륵, 겨우내 두문불출하던 어머니가 여는 미닫이문이 스르륵! ‘서베리아’라 불리던 지난겨울은 얼마나 혹독했던가. 땅속 벌레들 문 열고 나오는 경칩 즈음이다. 굳었던 우리들 마음에도 스르륵, 봄!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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