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벚나무에 폐비닐 척 걸려 펄럭인다
두 번 감아 길게, 로맨틱한 연출법이다
곧 늙으신 몸 여기저기 뚫고 나오실 주책없는 꽃송이들 어쩌시려고
고목의 봄날을 어찌 감당하시려고
가지에 놀던 곤줄박이 박새들 다 쫓아 보내고
두꺼운 엄동도 다 쫓아 보내고
머플러 척 걸치시고 나온
짧은 봄날의 외출
따뜻한 바람, 여러 겹으로 주름지는데
부쩍 머플러를 탐하시는 어머니
어설프게 둘러 흘러내리고 밟혀 애물 되기 일쑤지만
새로 당도하는 꽃샘추위가 두려우신 게다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것 두려우신 게다
고목을 뚫고 툭툭 튀어나오는 춘심
어찌 바람이 이리 달다냐
다 녹아 혀끝에서만 맴맴 도는 봄날의 끝
바람 불면 머플러처럼 스르륵,
풀릴 봄
‘스르륵’이라는 말, 어쩌면 저리도 봄과 잘 어울리는 의성어인가. 겨우내 꽁꽁 얼었던 계곡물이 스르륵, 봄서리 녹는 흙덩이가 스르륵, 겨울잠에서 깬 누룩뱀이 스르륵, 꽃나무들의 눈비늘이 스르륵, 겨우내 두문불출하던 어머니가 여는 미닫이문이 스르륵! ‘서베리아’라 불리던 지난겨울은 얼마나 혹독했던가. 땅속 벌레들 문 열고 나오는 경칩 즈음이다. 굳었던 우리들 마음에도 스르륵, 봄!
<시인 반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