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경찰팀24/7]성범죄 징계 흐지부지...'#Me Too' 파헤쳐야 할 경찰도 '미투 몸살'

최근 5년간 내부 비위 133건

파면 등 중징계는 84건 그쳐

'원스트라이크아웃' 유명무실

폐쇄적 특성 탓 신고도 어려워

"환부 제대로 도려낼 대책 필요"

임희경  김해서부경찰서 경위가 지난 1월 경찰서 앞에서 경찰 조직 내 성비위 척결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경남경찰청임희경 김해서부경찰서 경위가 지난 1월 경찰서 앞에서 경찰 조직 내 성비위 척결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경남경찰청






“저는 지금 제 경찰 인생을 걸고 대한민국 경찰 전체에 맞서 1인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경찰이 진정한 민주조직으로 바뀌기를 바랍니다.”

지난 4일 34회 서울 종로구 한국여성대회 무대에 오른 임희경 김해 서부경찰서 경위의 고백이다.


20년 차 경력의 임 경위는 지난해 4월 후배 여경의 성추행 피해를 알게 된 후 가해 순경을 고발했다가 조직 내에서 ‘왕따’가 됐다고 털어놓았다. 임씨는 “후배에게 경찰서 감찰부서에 신고하는 법 등을 알려줘 지구대 내 성 문제를 해결했지만 정작 지구대장은 ‘너 때문에 성과점수 꼴찌를 받게 됐다’고 질책했다”며 “가해자 본인도 내 신상정보를 경찰조직 전체에 유포하거나 나를 ‘꽃뱀 여경’으로 몰아 결국 보직을 이동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미투(MeToo)’ 열풍을 타고 수사인력 915명을 피해자 상담·심리치료·법률지원 등을 지원하는 ‘미투 피해자 보호관’으로 지정했지만 아직 경찰조직 내 성 인권의식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 비위를 수사해야 할 경찰조직 내에서 성범죄가 종종 일어나고 대처도 안이하다는 것이다.

경찰은 2015년 “성폭행이나 성추행 등 성범죄를 저지른 경찰관은 자체 감찰 단계에서 즉각 파면 또는 해임하고 성희롱도 정직 이상의 중징계를 내리겠다”며 ‘경찰 성 비위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선포했다. 하지만 서울경제신문이 입수한 ‘최근 5년 내 경찰 내부 성 비위 징계 현황’에 따르면 동료 경찰을 성희롱한 경찰 107명 중 정직 이상의 중징계를 받은 이는 84명에 불과했다. 23건은 감봉·견책의 경징계를 받았다. 감봉이나 견책을 받으면 보수가 깎이고 승진이 제한되지만 중징계와 달리 직무를 계속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경징계만 받고 피해자가 근무하던 곳으로 되돌아오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전체 경찰 중 여성 경찰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은 소수이다 보니 각종 성폭력에 노출되고 제대로 된 사후 대응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지난해 기준 경찰조직 전체에서 여경의 비율은 10% 내외다. 최근 5년 내 발생한 경찰 내 성폭행·성추행·성희롱 가해 현황을 보면 133건 중 130건의 가해자가 남성이었고 피해자는 여성이었다. 나머지 2건은 동성 간 성 비위, 1건은 여성이 가해자고 남성이 피해자였다. 전체 피해자의 97%가 여성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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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경들은 “경찰 내에서 가벼운 농담을 가장한 성희롱은 예사”라고 입을 모은다. 3년 차 여경 A씨는 “동복에서 하복으로 옷을 갈아입으면 ‘몸매 좋은데’ 하며 몸을 쓱 훑어내리는 경우가 잦다”며 “문제 만들기 싫어서 그냥 웃어넘기지만 사실 불쾌하다”고 전했다. 여경 B씨는 “잘 웃고 다니는 동료 여경과 비교하며 ‘너도 저렇게 좀 웃어라. 저 여경이 오면 지구대에 꽃이 피는데 네가 오면 칙칙하다’는 말을 들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여경 C씨는 “워낙 충성심과 서열이 중요한 조직인데다 내부 인식이 바뀌지 않으니 아무리 외적인 제재를 강화해도 ‘사소한 문제로 동료에게 등 돌릴 거냐’는 시선이 많아 망설여진다”고 전했다.

이쯤 되면 경찰 내부의 ‘미투’가 나올 만하지만 폐쇄적인 조직 특성상 신고도 쉽지 않다. 경찰청은 2013년 6월 경찰 간부가 여경을 성희롱한 사건이 발생하자 감사관실 산하에 성희롱상담신고센터를 설치했다. 그러나 이달 7일 경찰청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이재정 의원실(더불어민주당)에 제출한 최근 5년 내 성희롱상담신고센터 현황에 따르면 센터에 신고 접수된 성폭력 가해자는 본지가 입수한 133명보다 53명이 적은 70명에 불과했다. 이 중 44건은 상담으로만 종결됐고 2건만이 직무고발로까지 연결돼 수사가 진행됐다.

경찰 내 게시판인 ‘현장활력소’도 경찰청이 직접 관리하는데다 실명 공개가 원칙이라 폭로를 시도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서울 시내 경찰서에 근무하는 한 경찰관은 “예전에 현장활력소에 민원성 글을 썼는데 누군가가 계속 경찰조직을 옹호하는 댓글을 달았다”며 “까딱하면 신원도 조회당할 것 같아 곧바로 지웠다”고 말했다. 현직 경찰이 운영하는 내부 커뮤니티 ‘폴네티앙’은 좀 더 자율적이지만 역시 실명 공개가 원칙이어서 같은 경찰 동료를 고발하는 피해자 입장에서는 여전히 부담이 있다.

전문가들은 경찰 내 성폭력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고 교육과 엄정 처벌을 통해 조직 내 경계감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배복주 경찰개혁위원회 위원은 “폐쇄적이고 여성 수가 적은 조직일수록 드러나지 않은 성범죄가 훨씬 더 많고 그만큼 개인이 변화를 시도하기가 어렵다”며 “경찰은 내부 성 비위가 발견될 때마다 이를 은폐·축소할 것이 아니라 조직의 환부로 보고 해결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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