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가 통제 여파로 수억원의 시세 차익이 예상되는 ‘로또 청약’이 양산되자 2013년 이후 폐지된 채권입찰제 재도입 가능성이 불거지고 있다. 채권입찰제는 분양가와 주변 아파트 시세 간 격차가 클 경우 분양받는 사람에게 국채 등 채권을 사들이게 하고, 채권 매입액을 국고로 환수하는 제도다. 정부 당국은 “채권입찰제 재도입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지금껏 온갖 규제책을 동원해 온 행보를 감안하면 로또 아파트 분양이 이어질 경우 이 카드도 검토되지 않겠냐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디에이치자이 개포’등 분양가가 인근 단지보다 저렴해 수억원의 시세 차익이 예상되는 로또 단지를 중심으로 청약 광풍 조짐이 일자 채권입찰제 재도입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심교언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채권입찰제를 도입하면 분양가 이외에 추가로 비용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청약 과열경쟁 현상이 줄어들게 된다”며 “또 국고로 환수된 채권 매입액을 정부가 서민 주거복지 등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현재 청약 시장의 경우 국가가 직접 나서 로또 분위기를 만들고 여기에 참여하라고 부추기는 꼴이 돼 버렸다 ”며 “채권 입찰제가 도입되면 적어도 지금처럼 국민들을 투기 광풍에 몰아 넣지는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채권입찰제는 1990년대 서울시 동시분양 등에 적용됐다가 없어진 후 2006년 참여정부 시절 분양가 상한제가 도입되면서 85㎡ 초과 주택을 대상으로 다시 실시됐다. 시세의 90%(2007년 8월 이후 80%) 이하에서 채권매입액을 많이 써낸 사람을 당첨자로 뽑는 방식이다. 경기 성남 판교신도시 공공택지에서 분양됐던 아파트와 고양 일산2지구 ‘휴먼시아’ 아파트에 적용됐다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후 유명무실해진 후 2013년 5월 폐지됐다.
채권입찰제 재도입이 거론되는 것은 HUG의 분양가 통제로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로또 아파트’가 양산되자 실수요자 이외에 시세 차익을 노린 현금 부자들까지 청약에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허윤경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 정부가 분양가 통제에 나서는 것은 낮은 가격에 주택을 공급해 가격 안정화를 도모하기 위함인데 지금은 이러한 목표와 달리 시세 차익을 만들어주는 아파트를 양산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며 “로또 아파트로 투기 수요가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채권입찰제를 큰 틀에서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부정적 의견도 나온다. 강남구 개포동 L 공인중개사 대표는 “어차피 현금 부자들은 입지가 좋고 수억원의 시세 차익이 기대되는 강남 단지에는 추가 비용을 내서라도 청약에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도 “참여정부 시절에는 매년 전국 집값이 두 자릿수씩 상승하는 등 과열 현상이 확연히 나타났지만 지금은 서울 강남 지역에서만 과열 조짐이 보이고 있고 오히려 서울과 수도권 전세값은 떨어지고 지방에서는 미분양이 속출하는 상황”이라며 “지금 채권입찰제를 도입할 시기인지는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대출 옥죄기로 가뜩이나 무주택 서민들의 강남 주택 청약이 어려워졌는데 채권 매입 자금까지 마련하려면 부담이 더 가중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토부에서는 아직까지 채권입찰제 재도입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채권입찰제를 도입할 경우 그만큼 분양가가 올라가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현재 강남권 등 일부 지역의 청약과열이 해당 지역에 국한된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속적으로 합리적인 분양가에 주택이 공급되는 게 중요하다”며 “그런 기대가 수요자들 사이에서 형성되면 단기적인 청약 과열현상도 완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동훈 ·이혜진기자 hoon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