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4선 성공을 축하한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장클로드 융커 집행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러시아와의 관계가 냉각된 영국과 미국, EU에서 비판에 휩싸였다.
20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융커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서방 정상들의 금기를 깨고 푸틴 대통령의 재선 성공을 환영하는 듯한 축하 인사를 건네 비판을 받고 있다. 영국 보수당 의원이자 유럽의회 의원인 애슐리 폭스는 융커 위원장이 푸틴 대통령에 보낸 축하 서한을 “치욕적”(disgraceful)이라고 표현했다. 유럽의회를 대표해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협상에 참여 중인 기 베르호프스타트 의원은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지금은 축하할 때가 아니다”라고 융커 위원장에 대한 비판에 가세했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에 재선 성공을 축하하면서 선택한 용어가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 통화를 하고 이후 이와 관련해 “우리는 매우 좋은 통화를 했다”며 “그의 선거 승리를 축하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존 매케인(애리조나) 미 공화당 상원의원은 이날 성명을 내고 트럼프 대통령의 축하 인사는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에서 한 표를 행사할 권리를 거부당한 러시아 국민 개개인에 대한 모욕”이라고 비판했다. 매케인 의원은 “미국 대통령은 엉터리 선거에서 승리한 독재자들을 축하함으로써 자유세계를 이끄는 게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제프 플레이크 공화당 상원 의원도 트럼프 대통령의 전화에 대해 “이상하다”(odd)며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을 내놨고,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대통령은 누구와도 전화할 수 있지만 내 경우라면 (푸틴과의 통화는) 통화 리스트에서 높은 순위에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 등 미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에게 축하 전화를 한 것 자체도 문제지만 통화 내용 면에서도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이나 최근 논란이 된 스파이 독살 사건 등에 대한 언급은 일체 없었다고 꼬집었다. 미국과 유럽 등 서방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림 반도 병합 이후 러시아에 대해 제재를 가하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러시아의 대선 개입 의혹까지 더해져 정가를 뒤흔들고 있다.
물론 서방 정상 중 트럼프 대통령과 융커 위원장만이 푸틴에 재선 승리에 관한 메시지를 전한 것은 아니다. 앞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각각 푸틴에 서한을 보냈다. 그러나 두 정상은 명시적으로 “축하”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대신 푸틴의 임기에 “성공을 기원한다”는 에두른 표현으로 축하인사를 대신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영국과 러시아는 최근 러시아 ‘이중 스파이’ 암살 시도 이후 영국 정부가 자국 내 러시아 외교관 23명을 추방하는 강경 대응에 나서면서 관계가 급랭해 이들에 대한 비판은 특히 영국에서 거세다.
이에 EU 외교이사회는 전날 영국에 전폭적인 연대를 밝히면서 러시아를 비난하는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그러나 이튿날 융커 위원장이 푸틴 대통령에 축하 서한을 보내는 대조되는 행보를 보인 탓에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융커 위원장은 축하 서한에서 “나는 늘 EU와 러시아의 긍정적인 관계가 유럽대륙의 안보에 중요하다고 주장해왔다”면서 “우리의 공동 목적은 유럽 전체의 협력적 안보 질서를 재구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나는 푸틴 대통령이 4번째 임기를 이런 목표를 추구하는 데 사용하기를 바란다. 나는 이런 노력의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폭스 의원은 “블라디미르 푸틴의 대선 승리를 축하하면서 명백한 선거조작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우리 선거구의 무고한 이들을 상대로 군사용 신경가스 공격을 가한 러시아의 책임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구역질이 난다”고 비판했다. 영국 보수당 세라 울러스턴 의원도 융커 위원장의 서한에 대해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수치스럽다”(shameful)고 적었다. /김주환 인턴기자 juju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