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한미FTA 개정협상 사실상 타결]트럼프 뜻 수용...車안전기준 완화·픽업트럭 관세 유지 내준듯

철강관세 영구 면제

車부품 원산지 기준 강화 수용 안해

ISDS 개선도 포함 가능성

김현종, 오늘 국무회의에 보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과 무역확장법 232조 철강 관세부과 협상을 마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25일 오후 인천공항 제2터미널로 귀국하고 있다./권욱기자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과 무역확장법 232조 철강 관세부과 협상을 마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25일 오후 인천공항 제2터미널로 귀국하고 있다./권욱기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이 조기에 타결된 것은 보호무역주의의 선봉대가 된 ‘미국’이라는 강팀과의 ‘빅게임’에서 한국이 예상 밖의 선전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25일 입국하면서 언급한 내용 중 가장 눈에 띄는 성과는 한국에서 반발이 큰 농업 분야에서의 추가 개방과 한국산 자동차(부품 포함) 관세 부활을 막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미국산 자동차의 안전·환경기준 완화와 미국산 픽업트럭에 대한 관세철폐 기간 조정 이슈는 미국 측의 요구를 따랐을 것으로 예상된다. 철강에 대한 관세면제를 얻어낸 데 대한 양보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것들을 상당 부분 수용했다는 얘기다.

김 본부장이 이날 “원칙적으로 한미 FTA 개정 협상이 타결됐다”고 밝힘에 따라 협상의 결과는 이르면 이번 주 공식적으로 발표될 것으로 전망된다. 26일 있을 국무회의 이후 미국과 시기가 조율되면 협상 결과 발표도 ‘속전속결’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전망이 현실이 되면 한국은 보호무역주의를 기치로 교역 상대국들과 날을 세웠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상대로 통상 협상을 마무리 짓는 첫 번째 국가가 된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도 “다른 나라들보다 최대한 빠르게 결론을 지으려는 게 정부의 방침”이라며 “김 본부장이 국무회의에 참석하기로 예정돼 있어 협상 결과를 상세히 이야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본부장이 가져온 협상 결과의 성패는 한국 정부가 목표로 내걸었던 ‘이익의 균형’을 달성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먼저 미국의 ‘철강 관세 폭탄’은 영구적으로 피했다. 이와 관련해 김 본부장은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철강 관세 부과국에서 우리나라가 영구 제외됐다”고 밝혔다. 지난 23일 미국 정부가 25%에 달하는 철강 관세 대상국 지정에서 한국을 한 달간 유예하기로 한 데서 더 진전된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그는 “다만 실무 레벨에서는 몇 가지 기술적 이슈가 남아 있지만 이것도 곧 해결될 것으로 믿는다”며 “지금까지 관세가 철폐된 것에 대해 후퇴가 없다”고도 설명했다.

하지만 이를 위해 한국 정부는 미국 측의 자동차 관련 요구를 들어준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그동안 무역적자의 가장 큰 원인으로 자동차 분야를 지목하며 관련 안전·환경규제 완화와 픽업트럭에 대한 관세 철폐 기간 조정 등을 요구해왔다. 김 본부장이 이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한국이 미국 측 요구를 들어줬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자동차 분야에서 양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우리 기업이 가장 두려워했던 한국산 자동차 관세 부활을 막았다는 점에서 큰 성과가 있었다. 한미 FTA에 따라 2016년부터 국내 업체의 수출 물량에 관세가 붙지 않는다. 이는 한미 FTA 발효로 한국 기업들이 누리는 가장 실질적인 이득 중 하나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자동차 및 부품산업이 거둔 대미 흑자는 177억5,000만달러로 대미 무역흑자(178억6,000만달러)의 99%가 넘는 수준이다. 이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이 자동차 수출로 대미 무역흑자를 늘렸다는 점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한국산 자동차 관세 부활을 요구해왔다. 이 같은 요구에는 한국차의 미국 내 생산을 유도하는 의도도 숨겨져 있다. 이에 대해 김 본부장은 “(미국산) 자동차 부품 의무사용, 원산지 규정이 개정안에 반영 안 됐다”고 설명해 한미 FTA 개정 시나리오 중 최악의 상황은 모면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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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는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제도(ISDS) 개선 등을 요구해왔는데 이에 대한 성과가 있었는지도 관심사다. 이와 관련한 한국의 요구사항을 미국이 수용했느냐는 질문에 김 본부장은 “국무회의에서 보고한 후 말하겠다”며 “부분적으로 말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통상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진출할 때 예측 가능성을 확보했다는 사실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종잡을 수 없게 변한 수입규제에 우리 기업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도록 제도적 기반을 어느 정도 확보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정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무역통상본부장은 “한미 FTA 폐기 카드까지 나왔던 협상 초기 단계를 생각해보면 기존의 FTA를 개선해 발전적인 방향으로 양국이 입을 모았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성과”라며 “잠정적으로 유예된 철강 관세 면제가 영구적으로 확정되고, 미국의 수입 규제에 대한 체계적 대응 장치가 마련됐다면 이번 협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사실 이번 협상은 변수가 많아 고차방정식을 푸는 것만큼 어려운 문제였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말 한미 FTA 개정 협상에 돌입하면서 “한미 FTA는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도 이익을 가져가는 윈-윈(Win-win) 협정”이라고 강조하며 협상을 풀어나가려 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FTA와 별개의 이슈인 한국산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 문제를 꺼낸 탓에 한국 정부가 세웠던 당초의 전략은 대폭 수정돼야 했다. 우려가 컸던 상황이었지만 15일 제3차 라운드부터 한미 양측은 한미 FTA 개정 협상이 조기에 타결될 가능성을 내비쳤고 결국 조기 협상 타결이라는 성과를 가져왔다. /세종=강광우기자 인천국제공항=박형윤 pressk@sedaily.com

강광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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