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기이한 외교정책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의 ‘비전통적’ 접근법이 큰 자산이 될 수 있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일일 정보 브리핑 청취에서 국무부 고위직 인선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면에서 그가 표준 운영 절차를 따르지 않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역대 대통령들과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그의 막가파식 언사다.
미국 대통령들은 세계 지도국으로의 신뢰도를 보존하기 위해 너나없이 자신의 발언에 신중을 기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말에는 도무지 무게가 없다. 대선전에서 “여성을 노예로 삼기 원하고 동성애자를 살해하는 국가”라는 비난을 퍼부었던 사우디아라비아를 취임 후 첫 해외 순방지로 선택한 그는 그곳에서 왕국 지배자들을 따듯하게 감싸 안았다.
트럼프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낡은 기구로 평가절하했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르게 대우했다.
중국은 그에 의해 미국을 ‘유린’하는 통화조작국으로 지목됐으나 이 역시 오래가지 않았다.
허술한 수사와 행동의 뒷받침이 없는 나태한 협박은 종종 역작용을 불러온다.
대통령 당선 직후 트럼프는 대만을 독립 국가로 인정함으로써 중국에 은근히 겁을 주려고 했다.
중국 정부는 즉각 그의 으름장을 ‘허풍’으로 깎아내리는 한편 워싱턴과의 관계를 동결시켰다. 결국 트럼프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발언을 번복했다.
그러나 트럼프식 ‘유연성’이 먹히는 상황도 있다.
한때 평양을 향해 ‘화염과 분노’를 쏟아붓겠노라 큰소리치던 그는 지금 북한 최고 지도자와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이런 식의 ‘융통성’이 전통적 접근법으로는 불가능했던 타협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한다.
우리 모두 그렇게 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협박과 포용 사이를 오가는 트럼프 방식의 서커스 같은 분위기로 정작 양보한 쪽은 김정은이 아니라 트럼프 자신이라는 핵심 요점을 놓칠 수 있다.
오랫동안 미국이 고수해온 입장은 북한이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를 하기 전까지 북미 대화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바로 얼마 전까지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의 핵무력 증강에 협상으로 포상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물론 지금은 이런 절차적 이슈에 유연성을 보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김정은이 현명한 전략을 눈부실 정도로 훌륭히 구사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는 핵개발을 속도전으로 밀어붙였고 중국과의 갈등, 심지어 양국 관계의 위험까지 감내해가며 미사일로 세계 어느 곳으로든 핵무기를 쏴 보낼 수 있는 진정한 핵무장을 갖췄다.
핵무력을 실현한 김정은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는 한편 남한에 화해의 손을 내밀고 워싱턴에는 협상을 제안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트럼프가 발휘해야 할 스킬은 과거의 입장을 선뜻 포기하고 새로운 입장을 기꺼이 수용하는 것이다. 미국은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라는 오랜 목표에 다소 못 미치는 합의라도 일궈내야 한다. 아마도 트럼프라면 이런 의지를 관철할 방법을 찾아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북핵 협상보다 훨씬 힘든 종류의 다른 대화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몇 가지 이슈에 대해 한국을 상대로 공세를 펼쳤다. 무역 문제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한국 정부로부터 상당한 양보를 받아냈다는 주장과 함께 슬그머니 협상 타결을 발표했다. 사실 이것은 동맹국인 한국이 트럼프 행정부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내놓은 상징적 양보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한국은 미국 자동차사가 자국에서 판매할 수 있는 차량 대수를 연간 2만5,000대에서 5만대로 늘리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이 정도는 아주 하기 쉬운 양보다. 지난해 한국에서 1만1,000대 이상의 차량을 판매한 미국 자동차사가 단 한 곳도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여전히 슈퍼 파워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고 우방국들은 어쩔 도리 없이 ‘엉클 샘’의 무리한 요구를 수용할 방법을 모색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앞으로도 지나친 요구를 계속할 것이고 미국과의 공공연한 관계 악화를 원하지 않는 우방국들로부터 일부 양보를 받아낼 것이다.
만약 트럼프가 이란과의 핵협상에 변화를 줘야 한다고 말한다면 유럽 국가들은 이미 타결한 합의 자체가 완전히 무너지고 이로 말미암아 서방 전체가 사분오열의 상태로 빠지는 것을 원하지 않기에 새로운 해법을 찾으려고 시도할 것이다.
이는 힘의 신호라기보다 권한 남용 신호에 해당한다.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일부 국가들을 윽박질러 이라크전 지지 의사를 받아냈지만 이 역시 미국의 힘을 보여주는 시그널이 아니라 국력에 스스로 위해를 가하는 자해 행위였다.
이런 스타일은 비단 초강대국인 미국의 대통령에게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미국은 온갖 종류의 특별대우에 익숙해졌다. 예를 들어 뉴욕주는 세계 기축통화라는 달러화의 힘을 이용해 외국 은행들에 벌금을 물리는 식으로 분쟁을 해결한다.
물론 이 방식은 통했지만 중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로부터 빈축을 샀고 급기야 이들은 미국에 지나친 힘을 부여하는 기존의 시스템을 대체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미국은 지난 한 세기에 걸쳐 신뢰성과 함께 정치적 자산을 차곡차곡 쌓아올렸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단기적인 정치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 애써 마련한 신탁기금을 낭비하고 있고 이로 인해 귀중한 정치적 자산은 영구히 고갈될 위험을 맞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