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삼성증권(016360) 배당 사고로 공매도 폐지 여론이 들끓고 있지만 정작 기관투자가와 외국인은 삼성증권에 대한 공매도를 늘리고 있다. ‘유령주식’ 논란까지 번지면서 사태가 심각하다는 판단에 따라 추가 하락을 겨냥한 투자전략이기는 하지만 배당 사고로 피해를 본 개인투자자들이 저가매수에 나섰다가 두 번 울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까 우려된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정부 관계자들이 공매도 유지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제도가 수정되지 않을 경우 개인투자자들의 공매도 히스테리는 더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11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삼성증권은 전일 대비 0.28%(100원) 하락한 3만5,450원에 마감했다. 지난 6일 사상 초유의 배당 사고가 발생한 후 4거래일 연속 하락세를 기록했다. 이날 장 초반에는 개인과 외국인의 저가매수에 주가가 3만6,400원까지 올라 사고 이후 처음 상승 마감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조성됐지만 이후 기관 매도세가 유입되면서 하락 전환했다. 기관은 이날 삼성증권 주식 148억원을 더 팔아치워 6일부터 총 1,545억원을 순매도했다. 외국인의 이틀 연속 매수세에 투자심리가 회복되는 듯했지만 외국인의 순매수는 공매도 물량을 상환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증권 주가의 부진 지속에는 배당 사고 악재도 있지만 공매도도 한몫하고 있다. 배당 사고 발생 전일 1만3,377주에 불과했던 공매도 수량은 사고 당일 58만8,713주로 사상 최대치를 찍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삼성증권 공매도 물량은 줄어들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삼성증권의 공매도 거래량은 9일과 10일 각각 37만1,317주, 22만2,990주를 기록했는데 이는 원래 전체 거래량이 사고 전인 5일까지 올해 일평균인 38만주에 육박한다. 특히 사고 다음 거래일인 9일 공매도 물량은 사고 전일의 26배를 넘는다. 공매도 거래 비중도 대폭 늘었다. 사고 전 일평균 공매도 비중은 2.83%에 불과했지만 9일과 10일에는 각각 6.9%, 6.6%로 늘어났다. 탐욕에 눈먼 직원들의 유령주식 매도로 삼성증권 주가가 급락하며 또 다른 탐욕이 실체를 드러낸 셈이다.
늘어나는 삼성증권 공매도에 애가 타는 것은 개미들이다. 특히 배당 사고로 손해를 본 개미들 입장에서는 두 번 눈물을 흘리게 됐다. 거래소에 따르면 삼성증권 배당 사고일인 6일부터 11일까지 개인투자자들의 매수액은 1,562억원으로 국내 증시에서 삼성증권을 가장 많이 사들였다. 이들 가운데는 배당 사고로 보유한 주식의 가격이 떨어졌지만 회사의 가치를 믿고 저가매수에 올인한 투자자들도 많을 것으로 분석된다. 그런데 이들의 기대를 외국인과 기관의 공매도 포지션이 꺾어버렸다. 현재 삼성증권 사태로 발생한 손실액이 얼마인지 파악조차 되지 않고 배상 정도도 구체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개인들이 두 번 울게 된 것이다.
삼성증권 전에도 악재성 이벤트로 주가가 급락한 종목에 개인이 리스크 베팅을 하고 외국인·기관이 공매도를 하는 상황은 반복돼왔다. 당장 지난해 말 대규모 영업손실과 유상증자 발표로 급락세를 보인 삼성중공업(010140)이 대표적이다. 당시 개인은 주가 하락 초입부터 순매수 종목 1위로 선택하며 저가매수에 나섰고 반대로 외국인과 기관은 공매도로 삼성중공업 주식을 대거 팔아치웠다. 결과적으로 삼성중공업은 올해에도 10일까지 일평균 거래량 대비 공매도 비중이 12.9%에 달하며 기관·외국인의 매도 공세에 시달리고 있고 주가도 11일 종가 기준 7,760원으로 유상증자를 발표한 12월6일 종가인 8,960원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향후 상황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외국인과 기관의 공매도 앞에서는 리스크 베팅 전략이 효과를 거두기 힘들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청와대 청원까지 넣으면서 공매도 폐지에 목소리를 높였던 개인투자자들 입장에서는 관련 정책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점도 우려하는 사항이다. 실제 10일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삼성증권 사고의) 원인을 공매도 제도에 돌리는 것이 합당한 시선이 아니다”라며 “공매도가 가진 여러 효용성이 있어 무조건 폐지하자는 주장은 옳지 않다”고 밝혔다. 여기에 더해 김기식 금융감독원장도 “이번 사건은 존재하지 않는 주식이 발행되고 거래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라며 “공매도를 거론하는 것은 오히려 이 문제의 심각성과 본질을 흐릴 수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이는 공매도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밝힌 김 경제부총리와 같은 입장으로 개인 투자자들의 공매도 폐지 주장과 상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