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글로벌 기업의 국내 전사들 ¦ 신우성 한국바스프 대표

“한국은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기지

국내 기업과 동반성장 꾀하겠다”

<이 콘텐츠는 FORTUNE KOREA 2018년 8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신우성 한국바스프 대표. 신 대표 뒤로 바스프가 생산한 제품들이 보인다.신우성 한국바스프 대표. 신 대표 뒤로 바스프가 생산한 제품들이 보인다.



▶국내에 진출한 글로벌기업의 한국인 CEO들을 만나보는 기획 시리즈. 이번에는 신우성 한국바스프 대표가 주인공이다. 한국바스프는 독일계 글로벌 종합화학회사 바스프의 자회사다. 한국바스프는 현재 한국 내 대표적인 외국투자기업이자 국내 ‘톱10’ 화학기업으로 성장해있다. 신우성 대표를 만나 한국바스프가 걸어온 길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하제헌 기자 azzuru@hmgp.co.kr 사진 차병산 기자 acha@hmgp.co.kr◀


신우성 한국바스프 대표는 말끔하게 수트를 차려입고 있었다. 수트 상의 깃에 꽂힌 회사 배지와 타이 색깔이 비슷했다. 무척 고운 하늘색 계열이었다. 신우성 대표는 웃으며 말했다. “일부러 맞춘 건 아닌데 타이부터 속옷까지 배지 색상과 ‘컬러 매치’가 되었네요.”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상대방과 편하게 말을 주고받을 만큼 신 대표는 성격이 시원시원했다.

신 대표는 바스프가 회사 로고를 6가지 색상 버전으로 만들어 사용한다고 말했다. 이유가 궁금했다. 신우성 대표는 이렇게 설명했다. “원래는 검정색만 사용했는데 2004년부터 빛의 3원색인 빨강, 파랑, 초록과 함께 주황색, 하늘색, 연두색 버전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입니다.”

글로벌 기업 바스프에겐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반드시 필요할 듯 싶었다. 바스프는 1865년 독일에서 설립된 글로벌 종합화학기업이다. 2016년 매출은 575억 5,000만 유로, 영업이익은 62억 7,500만 유로였다. 전 세계에 퍼져있는 80여개 자회사에서 직원 약 11만 4,00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바스프는 화학 제품 생산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신 대표는 일일이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에도 몇 가지 흥미로운 제품들에 대해선 소개를 해주었다. 우리가 흔히 ‘스티로폴’이라 부르는 단열 제품은 바스프가 만든 것이다. 1951년 바스프는 발포성 폴리스티렌을 만든 뒤 브랜드명을 ‘스티로폴’이라고 지었다. 1929년에는 자동차 엔진용 부동액 ‘글리산틴’을 만들었다. 글리산틴은 현재까지도 유럽에서 가장 잘 팔리는 부동액 제품이다. 이 밖에도 바스프는 기저귀 등에 쓰이는 수분 흡수재, 배터리 소재, 심지어 비타민까지 합성해 판매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바이엘사로부터 종자·제초제 사업을 인수하기도 했다.


바스프 독일 본사 야경.바스프 독일 본사 야경.



바스프가 한국에 첫발을 디딘 건 1954년이었다. 포하그(fohag)라는 독일 무역회사를 통해 비료를 판매했다. 이후 1980년 효성과 손잡고 합작회사 효성바스프를 설립했다. 1998년 한국이 외환위기를 맞자 바스프가 효성 지분을 모두 인수해 한국바스프를 출범시켰다.

신우성 대표는 2011년 한국바스프 수장에 올랐다. 서울대학교 공업화학과를 졸업한 그는 1982년 선경화학(현 SKC)에 입사해 첫 직장 커리어를 시작했다. 신 대표는 짧은 회사 생활이었다며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비효율적인 업무 문화를 제가 참지 못했어요. 할 일이 없는데도 상사가 퇴근하기 전까진 자리를 지켜야 했습니다. 주말에도 공장에 나가 있어야 했고요. 입사 동기와 함께 엄청나게 불평을 해댔죠. 그러다가 1984년 바스프로 이직을 했어요.”

당시 한국바스프는 서울 시내 한 빌딩에 사무실만 차려놓은 작은 회사였다. 신 대표는 기술 영업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30년 이상 한국바스프에서 근무하고 있다. 2003년부터 2006년까지 2년 동안은 독일 본사에서 근무했다. 신 대표는 말한다. “본사에서 글로벌 마케팅 업무를 했어요. 바스프는 중요 보직에서 일할 가능성이 있는 직원들에게 본사 근무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권장을 하고 있거든요. 거기에는 본사 문화를 익히게 하고 다양한 비즈니스 네트워킹을 만들어 주려는 의도가 깔려 있습니다.”


신 대표는 8년째 한국바스프 대표직을 유지하고 있다. 비결은 뭘까? “비즈니스는 운이 많이 좌우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일하는 동안 업황이 좋았나 봐요.” 그로부터 겸손한 대답이 돌아왔다. 2016년 한국바스프는 매출 1조7,609억 원을 기록했다. 신 대표는 취임 후 한국바스프의 제품 포트폴리오를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천연자원이 없고 공장 운영 비용이 비싼 한국은 범용 제품을 생산하기엔 적절치 않은 곳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천연자원을 보유한 말레이시아나 거대 시장을 가진 중국과 경쟁할 수 있는 부문이 바로 고부가가치 제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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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대표는 이를 위해 독일 본사에 투자를 요청했다. “본사에 한국 시장이 중요하다는 점을 설명했죠. 한국에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같은 글로벌 기업이 있기 때문에 특수 고부가가치 제품을 판매할 전방시장이 있다는 걸 알렸습니다.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선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고 설득했어요.”

당시 글로벌 경제위기 여파가 지속되고 있던 상황에서도 신 대표가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이유는 ‘어려울 때 과감히 투자에 나서야 경제가 회복됐을 때 그 결실을 볼 수 있다’는 지론 때문이었다. 신 대표는 “시장이 어려워 경쟁사들이 움츠러드는 시기가 바로 투자 적기”라고 단언했다.

신 대표의 투자 유치 노력은 큰 결실을 맺었다. 2014년 전남 여수시에 ‘울트라손 폴리아릴설폰(고내열 플라스틱)’ 공장을 지었다. 이듬해엔 충남 예산에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컴파운딩 공장을 세웠다. 현재는 코오롱플라스틱과 합작해 경북 김천시에 ‘폴리옥시메틸렌(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생산공장뿐만이 아니다. 2014년엔 성균관대학교 자연과학 캠퍼스에 바스프 아시아태평양지역 전자소재 R&D 센터를 열었다. 2013년엔 홍콩에 있던 바스프 아시아태평양지역 전자소재 사업부 본사를 서울로 옮겨오기도 했다.


성균관대학교 자연과학 캠퍼스 안에 있는 바스프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자소재 R&D 센터.성균관대학교 자연과학 캠퍼스 안에 있는 바스프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자소재 R&D 센터.



한국바스프의 이 같은 행보는 국내 산업의 성장에도 도움이 됐다. 신 대표는 “바스프의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한국을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기지로 만들었다”며 “바스프 제품을 통해 국내 자동차, 전자, 화학산업도 함께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바스프는 고객사가 요구하기 전 미리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맞춤형 솔루션’도 제공하고 있다. 신 대표는 “세계 1위 화학기업 바스프는 지금까지 생산 능력은 우수했지만, 솔루션을 제공하는 데에는 취약한 점이 있었다”며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이듯, 이젠 R&D 센터를 중심으로 고객사와 함께 연구개발을 진행해 솔루션부터 재료 공급까지 한 번에 이뤄낼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2016년 현대자동차는 바스프가 생산한 제품을 적용한 콘셉트카 ‘RN30’을 선보였다. 바스프의 화학 솔루션팀은 특화된 제품 포트폴리오와 자동차 관련 지식을 바탕으로 현대자동차가 대담한 디자인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가 바스프 자동차 소재 관련 전문가들을 모아 ‘테크페어’를 열기도 했다. 어떤 화학 소재를 어디에 사용하느냐에 따라 차량 성능부터 디자인까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바스프가 여수 공장에서 생산하는 고내열 플라스틱 ‘울트라손 폴리아릴설폰’은 LG화학 등 국내 화학업계가 미래 산업으로 적극 육성하고 있는 해수담수화용 멤브레인 필터의 핵심 소재이기도 하다.

그는 한국바스프의 기업 문화를 바꾸는 데에도 힘을 쏟았다. 한국바스프 서울사무소는 정해진 근무시간이 없다. 신 대표는 말한다. “제가 대표로 취임하자마자 영업사원들 근무시간을 없앴습니다. 아무 때나 사무실에 나와서 근무를 하면 돼요. 집에서 근무해도 괜찮습니다. 제가 독일 본사에 근무할 때 체험한 ‘트러스트 워킹 타임’을 한국에서 시도한 거죠. 처음엔 직원들을 어떻게 통제하느냐고 관리자들이 걱정을 많이 했어요. 저는 그들에게 ‘왜 통제를 하려 드느냐’고 화를 냈죠. 일은 서로 믿고 하는 거라고요. 해보고 나서 안되면 그만두자고 했습니다. 한국바스프에선 이젠 내근 직원들도 트러스트 워킹 타임을 하고 있습니다.”


바스프 키즈랩 프로그램 진행 모습.바스프 키즈랩 프로그램 진행 모습.



한국바스프는 외국계 기업 중 국내에 가장 잘 정착한 기업으로 손꼽힌다. 그만큼 사회공헌도 많이 한다. 지난해엔 ‘바스프 온라인 키즈랩’을 론칭했다. 어린이들이 언제 어디서든 쉽고 재미있게 화학의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도록 마련한 참여형 과학 실험 교실 프로그램이다. 바스프 온라인 키즈랩은 어린이들이 직접 참여해 과학의 원리를 배울 수 있는 다양한 실험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신 대표 사무실 창으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신 대표는 창이 서쪽으로 나 있어 오후가 되면 덥다고 멋쩍게 웃었다. 마침 인터뷰를 마칠 시간도 거의 된 때였다. 신우성 대표는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했다. “바스프는 지난 60여 년간 한국에서 지속적으로 투자를 늘려왔습니다. 한국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데도 일조해 시장의 신뢰를 얻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새로운 사업 기회를 한국에서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한국은 재미있는 시장이니까요.”



하제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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