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추진함에 따라 앞으로 펼쳐질 양측의 법리 다툼에 법조계와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엘리엇이 법무부에 중재의향서를 제출한 상태라 아직 소송 이전 단계지만 소송이 시작되면 승패를 예측하기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ISD 진행 과정에 영향을 미칠 변수가 많은 탓이다.
국내 국제중재 전문변호사들은 엘리엇 주식 매각에 대한 해석과 자유무역협정(FTA) 투자보호규정, 국정농단 사건 판결 등이 소송의 주요 쟁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주식 매각은 암묵적 동의?=먼저 엘리엇이 지난 2016년 초 보유 중이던 삼성물산 지분을 삼성물산에 매각했다는 점을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가 어떻게 해석할지를 두고 양측 공방이 예상된다. 엘리엇은 당시 삼성물산과 매수청구권 가격에 합의해 보유 지분을 매각했다. 앞서 ‘매수청구권 가격 합의 실패→조정 신청→법원 기각’ 등을 거쳐 엘리엇은 결국 보유 주식을 삼성에 매각했다. 당시 이를 두고 양측 간 갈등이 봉합됐다는 분석이 나왔던 터라 국내 중재전문가들은 ICSID가 비슷한 해석을 내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매수청구권 가격에 대한 합의가 엘리엇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문제가 없다고 인정하거나 암묵적으로 동의한 대목으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투자보호규정 해석도 관건=엘리엇이 한미 FTA의 보호 규정에서 어떤 항목을 ISD 과정에 적용할지도 관건이다. 한미 FTA에 따르면 분쟁 당사자(또는 기업)나 그가 직간접적으로 소유·지배하고 있는 법인에 대해 피청구국이 의무·투자인가·투자계약을 위반했거나 이로 인해 손실을 입었을 경우 중재를 제기할 수 있다. 또 FTA 1절 의무에서는 ‘양국이 협정 규정 준수·효력 발생을 위해 필요한 조치가 취해지도록 보장한다’고 명시돼 있다. 중재전문가들은 문제가 제기된 부문이 투자인가나 투자계약이 아닌 만큼 엘리엇이 의무 조항에 따른 투자자 보호 위반을 문제 삼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 국제중재 전문변호사는 “한미 FTA 1절의 의무는 투자자 보호 등 포괄적인 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있다”며 “엘리엇이 이 조항을 근거로 정부가 투자자보호 규정을 위반했다고 주장할 수 있으나 ICSID가 어떻게 판단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국정농단 판결에 답 있다=앞서 진행된 국정농단 사건 재판의 판례도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것이 중재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엘리엇은 국내 법원에서 삼성그룹 임원, 전 보건복지부 장관,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 등에 대한 유죄 선고가 내려진 점을 한국 정부가 합병에 개입해 자신들이 불공정한 손해를 봤다는 근거로 들었다. 따라서 국내 재판 결과가 앞으로 ICSID 판단에 주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와 엘리엇이 동시에 판례를 증거로 제시할 수 있고 ICSID도 이를 판단 근거로 꼼꼼히 살펴볼 수 있다는 얘기다.
또 다른 중재 전문변호사는 “ICSID는 판례 해석에 따라 정부가 개입한 사안인지 또는 기업·투자자 간 개별 사안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며 “그만큼 양측 모두 상급심까지 지켜보고 유리한 판결을 근거로 공격이나 방어 논리를 구성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