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회계논란에 발목 잡힌 K바이오]미국식 스탠더드가 만능?...'뿌리 약한' K바이오엔 毒 될수도

완벽한 생태계 갖춘 선진국과 한국 단순비교는 무리

과도한 잣대 들이대면 대기업外 살아남을 벤처 없어

규제 과감히 없애고 천문학적 돈 쏟아붓는 中과 대조

리스크에 베팅해야 하는 경영자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올해 초 외국계 투자은행(IB) 도이체방크는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고 발표한 셀트리온의 주가 목표치를 당시 주가의 3분의1 수준인 8만7,200원으로 제시해 시장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보고서는 “다국적 제약사들의 경우 연구개발(R&D)비를 당해 비용으로 처리한 비중이 평균 81%인 데 반해 셀트리온은 27%에 불과하다”며 회사의 영업이익이 부풀려졌다고 지적했다. 도이체방크의 지적은 글로벌 관점에서 봤을 때 일견 타당하다. 셀트리온은 “바이오시밀러는 일종의 복제약이므로 상업화 가능성이 신약보다 높고 R&D비용을 ‘자산화’하는 것이 문제되지 않는다”고 반박했지만 미국·유럽 제약사들의 경우 바이오시밀러 역시 미국식품의약국(FDA) 등 보건당국의 승인 전까지는 모조리 비용처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처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무조건 옳은 것일까. 국내 바이오 업계는 “현실과 맞지 않는 불가능한 이상론”이라고 토로한다. 이제 막 글로벌을 향해 비상하고 있는 한국 바이오 산업의 현실을 감안할 때 글로벌 스탠더드를 무조건적으로 들이대기보다는 엄청난 리스크에 베팅해야 하는 경영자들의 판단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국내 일부 바이오 기업들의 회계처리 방식이 다소 느슨한 것은 사실이고 변해야 한다”면서도 “연구 인프라부터 자금조달 환경, 상업화까지 모든 단계에 대한 생태계가 완벽하게 갖춰진 바이오 선진국과 이제 태동하기 시작한 한국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정부가 말로는 바이오를 육성하겠다면서 갓 시작된 산업에 글로벌 잣대만을 들이미는 것은 기업을 제대로 운영할 수조차 없게 만드는 모순”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식 글로벌 스탠더드는 ‘사다리 걷어차기’”=바이오 기업의 R&D비 회계처리 문제가 이슈로 떠오른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노바티스·화이자 등 글로벌 제약사들의 방식과는 명백히 다른 회계처리가 여러 차례 의혹을 낳았기 때문이다. 글로벌 제약사의 경우 신약·신기술이 허가 당국의 승인을 받기 전의 투자는 모두 비용처리하는 것은 물론 승인 후로도 시장성 등을 엄격히 따져 자산에 반영한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기업에 따라 개발비의 자산처리 비율이 0%에서 99%까지 제각각이다. 개발비를 비용이 아닌 자산으로 처리할 경우 당기순이익이 높아지고 각종 재무수치가 보기 좋게 바뀐다. 국내 기업들이 이런 ‘꼼수(분식회계)’를 써 투자자들을 기만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 의혹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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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대다수는 “일부 기업들의 회계는 분명히 문제가 있고 그런 기업들이 걸러져야 오히려 발전할 수 있다”고 입을 모으면서도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경우 기업들이 감내해야 할 후폭풍을 걱정하고 있다. 성과를 얻기까지 최소 10년 이상 걸리는 바이오 산업 특성상 살아남는 벤처가 한 줌도 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성장성을 보겠다는 기술특례제도로 주식시장에 입성해도 5년 안에 성과(매출 30억원)를 내지 못하면 퇴출될 수 있다”며 “안정적 자금지원을 받을 수 있는 그룹 계열사나 업력이 오래돼 비즈니스 모델이 확립된 기업들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다른 관계자 역시 “국내 바이오벤처의 초기 자금조달처는 기업공개(IPO)로 수익을 내려는 벤처투자자로 사실상 한정돼 있다”며 “미국처럼 기술이전이나 인수합병(M&A)이 활발하지 않은 상황에서 주식시장의 문턱을 높인다는 것은 창업 초기 기업들로서는 ‘사다리 걷어차기(성장한 국가·기업이 후발 주자를 내치기 위해 규제 등을 강화하는 방법)’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규제 팽개치고 내달리는 중국… K바이오 경쟁력 어쩌나=금융당국의 일방적 회계기준 강화는 궁극적으로 K바이오의 글로벌 경쟁력을 갉아먹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일례로 바이오 분야에서 우리보다 후발 주자로 꼽히는 중국은 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각종 규제들을 모조리 제거하고 전속력을 내는 중이다. 신약 승인을 위한 임상시험 기간을 22개월로 대폭 단축하는 등의 행정적 규제는 물론 연간 5조원(2012년 기준)에 육박하는 정부 R&D예산을 지원해 R&D를 독려하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임상 1상 단계의 파이프라인만 보유한 기업에 대해서도 홍콩증시에 상장할 수 있도록 해 자금조달의 문턱마저 없앴다.

국내 바이오벤처의 한 경영진은 “글로벌 기업들은 첨단과학 기반의 바이오 산업을 선점하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는데 국내의 많은 벤처들은 매출기준을 맞추기 위해 화장품이나 건강기능식품 등 부가사업을 시작하거나 정부 용역사업을 따내기 위해 분주한 상황”이라며 “정부가 바이오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본질(신약 개발)이 아닌 다른 부분에 시간과 노력을 뺏기지 않도록 도와줘야 하는데 오히려 거꾸로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하소연했다.

김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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