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총수 일가의 필리핀 출신 가사도우미 불법 고용 문제가 불거진 가운데 강남 등 소득이 높은 지역에서는 외국인 도우미를 불법으로 고용하는 사례가 빈번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 가사도우미 소개업체는 “필리핀 도우미는 영어가 가능해서 아이들 있는 집에서 많이 찾는다. 지금은 남은 사람이 없다”면서 “에티오피아, 이집트, 몽골 사람은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비자 문제에 대해서는 “C-3(단기방문비자)다. 숨어서 하는 것”이라며 “말을 잘 못 하니까 집안 얘기 몰랐으면 하는 분들이 많이 찾는다“고 전했다. 다른 소개업체에서도 비자는 여행 비자로 불법으로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할 수 있는 외국인은 재외동포(F-4 비자)나 결혼이민자(F-6) 등 내국인에 준하는 신분을 가진 사람이다. 대다수의 동남아·아프리카 출신 가사도우미들은 관광비자나 단기 비자로 들어와 체류하면서 불법으로 일터에 나간다.
불법임에도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는 이유는 임금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업체들에 따르면 현재 입주형 가사도우미가 우리나라 사람일 경우에는 월 250만원, 중국동포인 경우에는 월 200만원 안팎을 줘야 한다. 그러나 필리핀 가사도우미는 월급이 150만∼180만원 수준으로 비교적 낮다. 소개업체를 거치지 않을 경우에는 수수료를 주지 않아도 되므로 월급이 더 낮아진다.
이처럼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불법으로 일하고 있어서 저임금 등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성폭력·인권침해를 당해도 신고조차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외국인 도우미를 합법화 해 가사노동의 길을 열어주면 부부 맞벌이가 쉬워져 여성 경력단절이 해소되고 출산율도 높아질 거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홍콩에서는 저출산 해소 등을 위해 이미 수년 전 필리핀·인도네시아 국적 가사도우미를 합법화했다. 일본도 지난해 일부 지역에서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시범적으로 합법화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맞벌이 가정이 늘면서 가사도우미 수요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면서 수요는 늘어나는데 불법으로 막혀 있으면 가격이 음지에서 형성돼 수요자들의 부담만 커진다고 설명했다.
인권단체들은 우리나라 이주노동자와 여성 인권을 생각하면 외국인 가사도우미 문호를 개방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한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강혜숙 공동대표는 “남녀 임금 격차가 적어야 가사도우미를 많이 쓰게 되는데 우리나라는 현실상 여성이 일해도 가사소득이 별로 늘어나지 않아서 일부 상류층만 도우미를 쓰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또 강 대표는 “가사노동 영역에 여성 이주노동자가 유입되는 것은 막을 수 없는 흐름”이라면서 이들에 대한 ‘갑질’과 성폭력을 막기 위해 당국이 기초적인 실태 파악부터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유정인턴기자 wkd1326@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