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화 한국자수박물관 관장과 부인 박영숙씨가 평생에 걸쳐 수집한 소장 유물들을 서울시에 기증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한국자수박물관을 운영하는 허동화·박영숙씨 부부가 수집한 자수병풍·보자기를 비롯해 각종 직물공예품과 장신구 등 5,129점을 무상으로 기증받아 현재 건립되고 있는 서울공예박물관에 전시할 예정이라고 17일 밝혔다.
기증받는 유물에는 국가지정 보물 제653호인 4폭 병풍 ‘자수 사계분경도’와 국가민속문화재 3건도 포함됐다.
‘자수 사계분경도’는 꽃·나비·분재 등을 수놓은 병풍으로 기법, 구도, 바탕직물 제작 시대, 실 직조 방법 등으로 미뤄 고려 말기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터키 대사 부인이 선점해 외국으로 반출될 상황에 놓인 것을 허 관장 부부가 인사동 고미술상을 설득한 끝에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 후기 왕실 내인이 제작한 것으로 전해지는 국가민속문화재 제41호 ‘운봉수 향낭’, 제42호 ‘일월수 다라니주머니’, 제43호 ‘오조룡 왕비 보’도 가치가 높은 유물로 평가받는다.
기증된 유물은 옛 풍문여고 자리에 건립되고 있는 서울공예박물관으로 옮겨져 오는 2020년 5월부터 상설 또는 특별 전시로 공개될 예정이다.
1926년생으로 육군 소령 출신인 허 관장은 한국 민화 연구자이자 민중박물관 건립운동을 주도한 조자룡 선생의 조언을 듣고 자수병풍과 보자기를 수집했다.
1932년생인 박씨는 서울대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지난 1955년 허 관장과 결혼한 후 치과를 개원해 경제적 뒷받침을 하며 남편의 자수 유물 수집을 도왔다. 박씨는 다듬잇돌 등 침선용구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해 1997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기도 했다.
허 관장은 그동안 11개국을 돌면서 소장 유물을 전시해 우리나라의 자수공예 문화를 알렸다. 1만명이 관람한 1979년 일본 도쿄 전시 후 최근까지 해외 전시만 55차례 진행했다. 국내 전시까지 포함하면 100차례가 넘는 전시회를 열었다. 1978년 6월부터 8월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박영숙 수집 전통자수 오백년’ 전시에는 15만여명이 다녀가는 성황을 이뤘다. 개인 소장가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한 전시는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이 수집한 청자에 이어 두 번째였다.
노환으로 병상에 있는 허 관장은 “우리 자수가 외국에서 특히 주목받은 것은 어머니 같은 여성이 꿈과 염원을 담아 수놓은 유물의 미감이 세계인의 보편적 감수성에 닿아 있기 때문”이라며 “이 유물들이 세계적으로 각광 받아 행복했는데 건립 중인 서울공예박물관의 중요 콘텐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번 자수 유물 기증은 우리나라 박물관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사례”라며 “우리나라 자수공예의 역사를 심층적으로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