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학생들 The Students | 마저리 스톤먼 더글러스 고교 등 다수 학교
에마 곤살레스는 침묵의 힘을 발견했다. 플로리다에 거주하는 18세 이 고교생은 지난 3월 24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우리의 생명을 위한 행진(March for Our Lives)‘에 참석 중이었다. 워싱턴 역사상 최다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녀는 마저리 스톤먼 더글러스 고등학교(Marjory Stoneman Douglas High School) 총기 난사 사건으로 사망한 학생과 교사 17명에 대해 열정적으로 연설했다. 이 친구들과는 이제 영원히 농담을 나누거나, 학교가 끝난 후 작별 인사를 하거나, 같이 놀러 갈 수 없었다. 캐라 러플런 Cara Loughran. 크리스 힉슨 Chris Hixon. 루크 호이어 Luke Hoyer. 곤살레스는 낮은 목소리로 희생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또박또박 불렀다.
곤살레스는 스톤먼 더글러스 총기난사 사건 이후 몇 주 만에 총기규제 학생운동의 상징으로 떠오른 인물이다. 그녀는 모든 희생자의 이름을 부른 후, 떠난 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응답을 했다. 바로 침묵이었다. 관중이 끝없는 박수와 함께 그녀의
이름을 연호했지만, 곤살레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연단에 오른 지 6분 20초가 지나자, 알람이 울렸다. 범인이 AR-15 소총으로 17명을 학살하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그때 곤살레스가 말했다. “다른 누군가가 하기 전에, 자신의 생명을 위해 싸웁시다.” 이 말과 함께 한 용감한 고교생의 강렬한 연설은 끝이 났다.
총기 문제는 미국의 고질병이다. 매일 약 100명이 총기로 인해 목숨을 잃는다. 만약 2018년이 이 문제에 대해 대처를 시작한 원년이 된다면, 그건 선출직 공무원들의 분별력 덕분은 아닐 것이다. 변화는 곤살레스처럼 용기와 집념, 가공할 만한 웅변 능력을 지닌 학생들의 공로로 기억될 것이다. 주역은 바로 캐머런 캐스키 Cameron Kasky 같은 학생들이다. 스톤먼 더글러스 고교 11학년 /*역주: 한국의 고2에 해당한다/인 캐스키는 같은 반 재클린 코린 Jaclyn Corin, 앨릭스 윈드 Alex Wind와 함께 총기규제를 촉구하는 #NeverAgain 운동을 시작했고, 워싱턴에서 열린 ’우리의 생명을 위한 행진‘ 기획에도 참여했다. 이후 전 세계에서 유사한 시위가 계속 열렸다. 주역은 또한 나오미 와들러 Naomi Wadler 같은 11세 청소년들이다. 와들러는 ’우리의 생명을 위한 행진‘에서 수백만 관중에게 잠시도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을 말했다. 총기로 인해 너무나 많은 흑인 젊은이가 사망하고 있으며, 그들의 죽음이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가능성으로 가득한” 활기찬 삶을 앗아갔음을 상기시킨 것이었다. 그 외에도 콜럼비아대 재학생 은자-아리 케프라 Nza-Ari Khepra 같은 21세 청년들이 주역을 담당했다. 케프라는 총기 문제에 대한 인식 제고를 위해 ’오렌지나무 프로젝트(Project Orange Tree)‘와 ’오렌지색 입기 캠페인(Wear Orange Campaign)‘을 공동 기획했다. 이들의 목표는 총기 문제에 대한 청년층의 관심 진작이다(사냥꾼들이 숲에서 총에 맞지 않기 위해 오렌지색을 입는다는 데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총기폭력 예방을 위한 브래디 캠페인(Brady Campaign to Prevent Gun Violence)‘의 크리스틴 브라운 Kristin Brown 공동회장은 “변화의 필요성을 매우 강력하고 열정적인 언어로 표현하면서, 이들은 스톤먼 더글러스 고교를 훌쩍 뛰어넘어 무언가를 촉발시켰다”고 평가했다. “이젠 미국 전역의 청소년들이 (이 대열에) 동참하고 싶어한다. 학생들이 거의 한 세대 차원에서 이 문제에 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 같다. 총기문제 해결이 이들의 대의가 됐다는 건 멋진 일이다.”
학생들은 입법적인 측면에서 이미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뉴저지, 버몬트, 그리고 참사가 발생한 플로리다 주에서 총기 문제 해결을 위한 여러 개혁안이 통과됐다. 1990년부터 국가적인 신원조회, 공격무기 제한 등 관련 운동에 참가해 온 브라운은 변곡점이 다가왔다고 느끼고 있다. 그녀는 “이 운동 덕분에 그 동안의 우리 목표보다도 훨씬 많은 주에서, 어느 때보다도 많은 법안이 등장했다”며 “진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Clifton Leaf
02 빌 게이츠와 멀린다 게이츠 Bill and Melinda Gates | 게이츠 재단 공동창업자
말라리아는 그 동안 과학의 힘으로 퇴치됐다고 생각될 때마다 다시 기세를 높이곤 했다. 다행히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이 이 병에 끈질기게 맞서 싸우고 있다. 최근 전 세계 말라리아 감염률이 다시 상승하자, 게이츠 부부는 살충제 개선연구 전문 민관 합작기관인 ‘혁신적 병원체매개체 통제 컨소시엄(Innovative Vector Control Consortium · IVCC)’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들 부부는 성평등 지지 활동에도 점점 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왔다. 게이츠 재단은 기술업계의 성평등을 목표로 하는 애스펙트 벤처스 Aspect Ventures 펀드의 주요 파트너로도 활동하고 있다.
03 미투운동 The #MeToo Movement
’미투‘는 지난 2006년, 성범죄가 얼마나 만연한지 표현하기 위해 여성운동가 태라나 버크 Tarana Burke(사진 중앙)가 처음 쓴 용어다. 현재의 미투 운동에는 단일한 상징이나 지도자가 없다. 직장 내 성추행이 얼마나 만연한지 어느 때보다도 많은 이들이 알게 된 것이 주된 이유다. 여성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하면서 하비 와인스틴 Harvey Weinstein, 스티브 윈 Steve Wynn, 마이클 페로 Michael Ferro 같은 유명 경영인들이 축출됐다(’신뢰의 침해‘ 기사를 참조하라). 이런 움직임 덕분에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물론, 모든 업계 리더들의 사고방식이 바뀌고 있다.
04 문재인 | 대한민국 대통령
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부패 혐의로 탄핵된 전임자의 뒤를 이어 대통령에 취임했다. 취임 당시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딛고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 인상, 건강보험 보장범위 확대, 재벌의 영향력 축소 등 경제정의 실현을 위한 개혁에 발 빠르게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간 회담 조율 과정에서도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북미회담은 향후 남북간 화해의 포석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05 케네스 프레이저 Kenneth Frazier | 머크 Merck, CEO
지금은 잊혀졌을 법한 일이 있었다. 지난해 8월,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샬러츠빌 폭력 시위가 벌어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당시 기업들도 즉각 반발하지 않았다. 프레이저는 백악관의 경제 자문 중 처음으로 대통령에게 이의를 제기하고 사퇴를 선택했다. 그가 위험을 감수하고 행동에 나서자, 다른 경영인들도 그의 뒤를 따랐다. 그 뿐만이 아니다. 프레이저가 머크에서 거둔 성과도 그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준다. 2011년 CEO 취임 이래, 회사는 여러 종의 암 치료제 신약개발에 성공했다. 회사 주가도 S&P 500 평균을 뛰어넘었다.
06 스콧 고틀리브 Scott Gottlieb | FDA 국장
미 식품의약국(Food and Drug Administration)은 연방정부의 어떤 기관보다 더 미국인의 일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FDA는 화장품과 아침에 먹는 약 등 개인의 약장 속 모든 내용물을 담당한다. 부엌 찬장도 FDA의 영역이다. 생수 등 우리가 매일 섭취하는 것 대부분의 안전성을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반려동물 사료, 전자레인지, 백신, 심박동기, 환자용 요강 등 수많은 항목을 관할한다. 스콧 고틀리브는 FDA 국장에 취임하면서 이 모든 분야에 직접 관여하기 시작했다. 의사 자격증을 가진 벤처기업가 출신인 그는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FDA 부국장으로 재임했다. 그는 (가끔은 중독 수준을 보일 만큼) 열성 트위터 사용자이기도 하다. 날선 논쟁이 잦은 업계에서, 고틀리브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그는 (복제약의 시장 진출 조건을 완화하는 등) 치솟는 약값을 잡기 위해 창의적인 방안을 내놓았고, 규제 지침을 정비해 디지털 의료기술 개발을 촉진했다. 또한 임상시험의 설계 효율화를 수용하고, 공격적인 금연 유도책을 시행했으며, 예리한 정책적 움직임으로 마약성 진통제 오남용 위기의 악화도 막았다. 고틀리브는 FDA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모습, 민간을 괴롭힐 수 있는 권한을 강압적이지 않게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 높은 점수를 받았다.
07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Margarethe Vestager | EU 경쟁담당 집행위원
베스타게르에겐 선견지명이 있었다.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 Cambridge Analytica 사의 페이스북 개인정보 불법수집 사건이 터지고 ‘가짜 뉴스’가 사회 이슈로 떠오르기 훨씬 전부터, 그녀는 아마존, 구글 등 초대형 IT기업을 신중하고 성실하게 규제했다. 이들 기업은 기존 질서의 파괴를 넘어 세상을 바꿀지도 모를 존재들이다. 그러나 아이폰 사용자이며 트위터 활동에 적극적인 덴마크 출신 베스타게르는 이들 기업에도 예외 없이 동일한 원칙을 적용한다. 2016년에는 애플이 아일랜드에서 받은 세제혜택을 불법으로 규정한 뒤, 세금 145억 달러를 추징했다(당시 분개한 팀 쿡 CEO는 “정치적 의도가 담긴 헛소리”라고 반응했다). 2017년에는 반독점법 위반을 이유로 구글 모기업 알파벳에 벌금 27억 달러를 부과하기도 했다. 이젠 인도·브라질·미국 등 전 세계 정치인과 규제 당국이 베스타게르의 선례를 따르고 있다.
08 래리 핑크 Larry Fink | 블랙록 BlackRock CEO
6조 2,800억 달러를 운용하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수장인 핑크는 자신의 말을 실천할 줄 아는 인물이다. 지난 1월 CEO들에게 보낸 연례 서한에서, 블랙록의 이 공동창업자는 각 기업이 탄탄한 재무 실적을 올리는 것은 물론 “사회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핑크의 발언은 블랙록의 최근 전략을 관통하는 철학과 맥을 같이한다. 기업이 현재의 광범위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 눈을 감는 행위는 장기적으로 주주에게 손해라는 믿음이다. 한편, 세제개혁을 오랫동안 지지해왔던 핑크는 감세 혜택을 활용해 “장기 가치를 형성”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행동주의 투자자에게 주도권을 뺏기기 전에 고민을 해야 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블랙록의 원칙 실천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난 때는 지난 2월, 플로리다 주 파크랜드 Parkland의 고교 총기난사 사건 이후인 듯하다. 블랙록은 자사가 지분을 보유한 총기 제조·판매업체들에게 예방 조치 마련을 촉구했다(이후 여러 업체가 내부 방침을 바꿨다). 그에 더해, 4월에는 관련기업 주식을 제외한 새 펀드를 출시했다. 연례 서한에서 적었듯이, “사회는 공기업과 사기업 모두에게 사회적 목적을 추구할 것을 요구한다”는 생각이 드러난 것이다.
09 조지프 던퍼드 Joseph Dunford | 미 합동참모회의 의장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안보 담당 관료들은 유달리 이직률이 높다. 던퍼드 장군의 합참의장 유임이 더욱 특별한 이유다. 해병대 출신인 그는 아프가니스탄 주둔군 사령관을 역임했다. 해외 문제에 군사적으로 과도하게 엮이지 않으면서도 미국의 힘을 보여주고 싶은 트럼프 대통령에겐 소중한 인적 자원이다. 던퍼드는 최근 백악관이 실용주의로 정책방향을 급선회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멕시코 국경 수비에서 군의 역할을 강화한다는 명령을 주방위군(National Guard) /*역주: 시간제로 근무하는 예비군의 일종/의 전략적 배치로 변경한 게 좋은 사례이다.
10 류허 Liu He | 중국 부총리
현재 시진핑 주석 앞에는 두 개의 막중한 경제적 과제가 놓여 있다. 산업경제에서 소비경제로의 전환, 그리고 미국과의 통상전쟁 방지다. 시 주석의 오랜 친구이자, 그의 약점인 국제금융계 인맥이 풍부한 한 류허 부총리의 어깨가 무거워질 전망이다. 중국은 최근 미국과의 관세분쟁에서 교묘하게 타협적인 어조를 보이고 있다. 이 대목에서 외교관 및 통상 관계자들은 이미 류 부총리의 영향력을 읽고 있다.